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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0일 10시 24분 등록
 

사소한 것에 목숨 걸기


  “야. 빽!”

  나는 버스에서 내리는 승진이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 홍!”

  승진이의 꼭 다문 입술이 나를 발견하면서 옆으로 살짝 찢어졌다. 이 녀석은 입술을 다물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너무 다르다. 입술을 다문 모습을 보면 말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그런데 입술을 옆으로 살짝 찢어 웃으면 징그러울 정도로 살갑다. 2주일의 공백이었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승진이와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시간이었다. 녀석은 공사판에서 일해서인지 얼굴이 좀 그을렸다.


  “가자.”

  “어딜.”

  “밥 먹으러. 배고프지. 오늘 떡라면 곱빼기로 쏜다.”

  “야. 근데 왜 너 혼자냐. 애들 꽤 많이 왔었잖아.”

  “어. 그거....... 그랬었지.”

  “그랬었지 라니. 그건 또 뭔 말이야. 그럼 지금은 없단 얘기냐.”

  이 녀석 성질이 왜 이리 급할까. 나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노가다 할 만 하냐."

  "할 만 하면 지금 내가 여기 있겠냐."

  "작은 아버지가 잘 안 해주셔."

  "야. 말마라. 한 일주일 모래와 자갈을 땅에서 건물로 짊어지고 옮기는데 죽는 줄 알었다.  그래도 함 버텨 보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다가 허리를 삐끗했지 뭐냐. 그거 만만히 볼게 아니더라. 거기 아저씨가  '자네 그러다가 몸 망거져. 거시기 뭐냐. 안적 새파란 나인디 더 다치기 전에 싸게 올라가. 여긴 니가 있을 곳이 아녀야.' 하시더라구. 막걸리를 따라주면서 자기한테도 나 같은 아들이 있다나."

  "그래서 그 길로 올라 온 거냐."

  "그럼 어떡 하냐. 허리를 다쳐서 일도 못하고 그냥 있자니 심심하고, 니들 생각도 나고. 나 혼자 객지에서 뭐하나 싶더라고."

  "차라리 내려가지 말지 그게 뭐냐. 칼을 빼들었으면 고구마라도 잘라야지."

  "내말이 그 말이다. 쪽팔려 죽것다. 어디 가서 말도 못하겠고."

  "뭐 그렇다고 쪽 팔릴 것 까지 있겠냐. 어쩔 수 없었잖아."

  "그렇지 족 팔릴 것 까지는 없는 거지. 홍. 너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니까 시원하다. 넌 얘기를 잘 들어줘서 좋아. 좋은 놈여."

  우린 식당에 서로 앉아 주문하는 것도 잊은 채 말을 이어갔다. 식당 아주머니가 바쁜 점심시간에 들어와 앉아 이야기만 하고 있는 우릴 째려보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학생. 뭐로 할래."

  "그거 주세요. 그리고 거기에 떡하고 만두도 넣어주세요. 곱빼기로요."

  "어째 맨 날 라면야. 그리고 라면은 곱빼기 없어."

  아 이 아줌마 정말 눈치라고는 돋보기로 들여 다 봐도 찾을 수 없다. 이럴 땐 그냥 '오늘은 특별한 친구가 왔나봐. 떡에 만두까지 시키는 걸 보면.' 하면서 거들어 주면 여기서 상황 종료시킬 수 있는 건데. 하긴 뭐 식당이 음식 맛있고 친절하면 되지. 그래도 아쉽다.


  "넵. 아줌마. 주시는 데로 먹겠습니다. 배고퍼 죽것으니까요. 얼릉 주세요."

  "홍. 여기 단골이냐."

  "아니. 오늘이 세 번째야."

  "웬만하면 식당 바꿔라. 여기 손님도 없는 거 보니까. 어째 알만하겠다."

  "그래도 조용하잖아. 난 실끌벅쩍 한데 별로더라."

  "야. 그래도 식당이 좀 사람도 많고 그래야지. 사람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맛있으니까 그런 거지."

  "알았어. 알았어. 이런 이야기는 식당 나가서하자."


  "야. 히한하다. 여기 라면 맛 끝내주네. 근데 왜 손님이 없을까?"

  "그러게 말야. 나도 그게 참 이상하더라."

  "잘 먹었다. 홍. 니네 사무실은 어디냐. 구경좀 할 수 있냐."

  이쯤 되면 떡라면에 만두까지 겹쳐서 먹인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거기다 승진인 고맙게도 사무실이 어디냐며 내가 일하는 곳에 관심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오늘 이야기 잘 풀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흰색 건물 3층을 물그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 흰색건물 보이지. 저 건물 3층이야."

  "와 번듯하니 좋아 보이네."

  "실내는 더 좋아. 바닥을 카페트로 깔았어. 원래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은 다 그런가봐."

  "뭐. 카페트....... 너 지금 뻥 치는 거지. 여기가 호텔도 아닌데 카페트가 깔렸단 말여."

  "야. 네가 만두까지 얹은 떡라면 잘 먹고 헛소리 하겠냐. 내기할레."

  승진인 내기에 약하다. 내기하면 언제나 내가 이긴다. 그건 승진이가 자신이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아는 종족이다. 의심이 많다기 보다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미리 판단을 내린다. 이건 될 일이다 싶으면 해보지 않았어도 그걸 한다. 될 것 같은 느낌이면 충분하다. 다음 길은 하면서 찾으면 된다.


  "좋아. 내기하자."

  "오케이. 좋아. 뭐 내기 할래."

  "종목은 니가 정해라. 어떻게 저런 조그만 회사에서 바닥에 카페트를 깔아놓고 일을 하냐."

  "알았어. 그럼 말야. 이기는 쪽 소원 하나 들어주기다."

IP *.153.2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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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10 11:43:52 *.247.80.52
홍, 친구를 낚는 법을 제대로 쓰고 있고만.
홍이 어째 겁나 나쁜놈 같아. 힘들 일에 친구 끌어들잉께.히히히.
뒷이야기가 궁금해져부러.

산책하면서 고민하면 .... 글이 이렇게 군더더기가 없어지는지 궁금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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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0 12:00:19 *.153.241.98
난 나쁜넘 맞고. 산책하면 고민만 더 늘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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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02:45:36 *.180.129.160
고민이 늘어야 발전이 늘 것이고, 재밌어. 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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