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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8일 22시 17분 등록


보험회사는 세일즈맨들의 성과를 높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동기부여 프로모션(promotion)을 진행한다. 회사마다 형태와 시기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프로모션은 1년을 기간으로 하는 컨벤션(Convention)이다.  회사의기준을 달성한 사람은 해외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컨벤션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컨벤션은 단순한 여행프로그램이 아니다.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세일즈맨 자신에게는 최고의 명예이고, 기쁨이다. 또한 그 동안 바쁜 업무로 인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미안함을 일부 대신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컨벤션 참석에 대한 기회를 획득했다 하더라도 성과에 따라 대우는 명확히 차별된다. 전체 챔피언을 달성한 주인공은 항공기에서부터 First Class가 주어지며, 공항에 도착하면 전용리무진이 항상 동행한다. 호텔에서도 가장 전망 좋은 스위트룸을 배정받게 된다. 순위에 따라 비행기 항공 좌석도 다르게 배정받는다. 호텔에서도 성과가 좋은 사람은 드넓은 해변가가 보이는 방이 배정된다. 시상식은 화려한 조명과 눈부신 대규모 무대에서 펼쳐진다. 수 천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만큼 크기와 규모는 웬만한 영화 시상식에 버금간다.

지금도 처음 참석한 2001년 컨벤션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해외여행이 일상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리 일반적이지 않았다. 공황에 도착하자마자 접하게 되는 이국적인 풍경, 최고급 호텔 전체를 빌려서 진행하는 파격성, 턱시도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는 고급 파티, 이 모든 것들은 시골 촌놈에게 신선한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야외 풀장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모든 일상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밤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야 처음 알았다. 그만큼 세일즈맨들에게 컨벤션 행사는 가장 큰 동기부여 프로모션이다.

컨벤션 프로모션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달이 12월이다. 그만큼 가장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3년 여의 컨설턴트 생활 중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운 좋게 전체에서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한 달을 잘 마무리 하고 싶었다. 내년부터는 매니저로 Job Change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계약들이 하나 둘 연기되는 것이 아닌가. 관리해오던 가망고객들을 찾아가 몇 번에 걸쳐 계약 종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계약에 대한 기대만큼 고객들은 순순히 사인을 하지 않았다. 초조함이 밀려왔다. 그런 와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잘 지냈습니까? OOO원장입니다. 이제 병원도 안정이 되었고, 연말이 다가오니 그 동안 미뤄두었던 결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한 번 병원에 들를 수 있겠습니까?”

초조함 속에 고민하던 와중에 ‘낭보’가 날아 온 것이다. 1년 전에 상담했던 피부과 원장이었다. 당시 막 병원을 개원해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으니, 병원이 조금 안정된 후 계약을 하자던 사람이었다.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오던 가망고객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화색을 띠며 전화를 받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네~ 감사 드립니다. 이렇게 잊지 않고 전화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간은 언제 괜찮으시겠습니까?”

약속한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은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로 붐볐다. 병원을 개원한지 1년 만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였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대기실로 향했다. 간호사는 커피를 내왔다. 헤이즐럿 커피의 향기가 입가에 번졌다. 계약을 위한 기다림은 세일즈맨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리라. 기다림의 시간이 행복했다. 원장은 길게 진료를 하였다. 한참만에 원장실에서 나오는 사람과 마주쳤다. 그런데 환자가 아니었다. 짙은 정장과 반듯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검은색 OO7가방. 순간적으로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세일즈맨이 틀림없었다. 당황할 겨를도 없이 원장실에 들어갔다.

그는 4개 회사의 세일즈맨에게 각기 견적을 받아보려 했다. 원장은 다른 회사에서 제시했던 계약조건을 내게도 제시했다. 보장내용과 보험료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요소를 검토한 후에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크게 실망했다. 바로 계약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망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원장이 제시한 조건 속에서 최적의 플랜을 설계해야 했다.

최종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다른 보험회사의 직원들은 담당 매니저와 함께 동행방문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원장의 계약이 중요함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대기한 순서대로 한 명씩 자신이 준비한 제안서를 설명하기 위해 원장실에 들어갔다. 내 순서는 마지막이었다. 차례가 와서 원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원장은 부인과 함께 동석하고 있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부인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직감적으로 이 계약의 최종 결정권자가 부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준비해온 제안서는 부인이 얻게 될 이익과 혜택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1시간 정도의 설명이 끝났다. 그들은 계약할 사람에게 내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긴장의 시간이 끝났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선택은 내 몫이 아니었다. 아날로그 시계바늘은 느리게 흘러갔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시계바늘에 가 있었다. 시간은 정오를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지만,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 실패했구나!’
초조함이 실망감으로 변했다. 원장과의 계약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번 계약만 성사된다면, 상위 1%로 컨설턴트 생활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늦은 오후, 내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전화번호를 바로 확인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원장의 전화번호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OOO원장의 부인됩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어제 바깥 분하고 한참을 논의했습니다. 최종적으로 OOO씨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부부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플랜을 설계해 오신 것 같습니다. 회사의 평판도 좋은 것 같고, 설명하신 담당자 분도 가장 믿음이 갔습니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쌓여왔던 모든 스트레스가 한번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별 말씀을요.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회사와 저를 선택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아니예요. OOO씨가 잘 하셔서 그런 거지요. 그런데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부인은 반갑게 통화하다 말끝을 흐렸다.

“무슨 부탁이십니까?”
“네~ 좀 쑥쓰럽네요. 어제 다른 보험회사에서는 계약 시 다양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대부분 초회 보험료를 대납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저희 부부가 계약하는 보험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OO씨께서도 가능하시겠죠?”

부인은 당연한 듯이 물었다. 일부 설계사들이 보험을 계약하기 위해 보험료를 대납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초회 보험료 대납은 명백히 불법적인 상거래이다. 3년 여의 컨설턴트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보험료를 대납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컨설턴트 생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상위 1%라는 커리어는 두고두고 영광스런 과거가 될 것이다. 또한 소득 측면에서도 엄청난 이익이다. ‘그래~ 그까짓 것 대납 한 번 하는 건데, 그냥 해 버릴까?’ 찰나 같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고민들이 교차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만, 1회 보험료를 대납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1회 보험료를 내드리는 것도 이익이 되시겠지만, 다른 부분에서 분명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부인은 당황했다.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세일즈맨은 보험료 뿐만 아니라, 골프채 세트까지 선물하겠다고 제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희는 OOO씨에게 무리한 조건으로 말씀 드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동안 성실하게 집으로 우편물도 보내시고, 기념일도 챙겨 주시고 해서…… 제가 아이아빠에게 OOO씨를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네~ 제 말씀은……”

한 번도 보험료 대납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발 한발 뒷걸음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가능하십니까? 저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정해야 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변명은 구차해 보였다. 지금 선택해야 했다. 지금!

“사모님. 보험료를 대납해 드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사모님께서 특별히 저를 생각해서 선택해주셨다는 말씀도 정말 감사 드립니다. 다만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계약을 조건으로 보험료를 대납한 적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보험이라는 것은 약속(promise)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사모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을 들어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훗날 두 분께서 제게 만족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계약은 체결되지 못했다. 내 오랜 염원인 상위 1%라는 기록은 달성되지 못했다. 지점에서도 1위의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분명 원장 부인이 내세웠던 조건은 유혹적이었다. 그 유혹에 대한 성찬은 달콤했다.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내 자신이 당당하기 보다는 너무 고지식하게만 느껴졌다. 아쉬움의 흔적만이 내 주위를 배회했다. ‘뭐~ 그리 잘 났나고……’ 원망스러운 질문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미 선택은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과거 보험료 대납은 아니었지만, 양심에 반(反)하는 계약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성찬의 유혹이었다. 성과를 내야 했고, 남보다 뛰어나야 했다. 그 성찬에 취해 양심을 팔았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찬의 달콤함 보다 양심의 씁쓸함이 가슴 속 깊게 떠나지를 않았다. 성찬의 대가는 내 마음 속 깊이 낙인(烙印)을 남겼다. 그 흔적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컨설턴트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새로운 낙인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수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직'은 너무나 친숙하고, 당연한 단어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반대로 쉽지 않은 주제이다.  존경받는 성공자들은 말한다. '매순간 정직하면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이다. 당신 또한 실적과 양심의 경계에서, 이익과 정직의 순간에서 수많은 갈등을 겼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현재 진행형일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양심과 정직을 판 달콤한 성찬은 낙인으로 남게 되며, 그것을 지켜낸 당신은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된다는 진리이다.

“지금 말씀드릴 ‘열쇠’가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야기 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십시오.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정직 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해서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제 인생의 모든 성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중략)…… 빛은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빛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우리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 방향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현재를 넘어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더 이상 그들 곁에 없게 될 그 곳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곳을 보여주고, 그들이 주의 깊게 계획을 세우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평화를 줄 수 있습니다.”

- 솔로몬 힉스, “성공의 길을 밝히며”2000년 4월, Hong Kong Conference 연설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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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0:55:28 *.38.102.222
대납이 안되는 거였군요. 근데 제가 장기로 들고 있는 보험중 2개가 그런거였는데. 양심까지 담보로 하고 하는 대납이라니 오랜 지인인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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