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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15시 28분 등록
몸이 나의 출발점이다

“친구야, 나 차 한잔 주면 안 잡아 먹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앙증맞은 협박으로 승낙을 얻어냈다. [다산 문선]을 정독하다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닭을 키우는 일로 배움을 이끌어 내는 구절이었다. 닭이라니, 참 재미있는 관찰이자 비유였다. 주위에 닭을 키우는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 끝에 반짝 떠오른 아이디어는 친구네 집에 있는 고양이를 관찰하러 가는 것이었다.

오랜 춤 동지 ‘v'의 집에는 은빛깃털을 두른 요염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쿤’이다. 내 친구와 동거한지 3년이 넘었으며, 놀러 갈 때마다 아쿤이의 푸른 눈을 마주하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아쿤이는 내 앞에 다가와 자신의 몸을 뒤집어 은빛깃털에 감추어진 배를 드러냈다. 그 행동은 나를 자신의 친구로 인정한다는 애교이다. 오른손으로 아쿤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너한테 배우러 왔어. 잘 부탁해. 나의 스승님.” 친구는 또 무슨 꿍꿍이냐며 불안한 듯 실눈으로 나를 째려 봤다.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수다는 시작됐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아쿤이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아쿤이는 어느새 내 앞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리듬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침대위에서 자신의 혀로 세수를 하던 아쿤이는 어느새 장롱위로 날아올라 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고, 식탁위로 하강하여 우리들의 수다를 방해했다. 지켜보면 볼수록 아쿤이의 움직임은 정말 놀라웠다. 어디로도 흘러갈 수 있는 은빛 강물처럼 자유롭고 유연했다. 느긋하게 이완되어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깨어있었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세상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도 주변의 조그만 움직임에 어렵게 감은 눈을 다시 떴다. 그저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점프할 준비가 되어져 있었으며 바닥을 향하여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되지 않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모든 공간을 날아다녔다. 어떤 특정한 움직임 이상의 자연스러움이었다. 그것은 자연 자체였다.

“고양이가 저렇게 자유롭게 몸을 사용할 수 있니?”
“그럼, 니가 지금 지켜보는 것 이상으로 아쿤이는 자유롭다구. 어쩔 땐 완전 깃털 이야.”
“그러면, 바람결에 흐르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응, 단 예외는 있지. 고양이도 화가 날 때가 있거든. 그러면 뭔가 흐름이 달라져. 성질 있지”
“그 차이는 뭘까? 긴장하고 안하고의 차이일까?”
“음, 그럴 수 있겠네. 아쿤이 화나면 눈동자, 발톱 끝까지 힘이 빡!! 들어가니깐.”
“우리의 몸도 에덴동산에선 고양이 같았을까? 우리도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며 살았을까? 자연의 일부로 말이야.”
“그러게, 근데 그랬을까. 너무 심하게 뻣뻣해. 인간만 말이야. 달랐을 것 같아. 아니면, 우리가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고 살지 않는다는 거겠지?”
“긴장하지 않는 것도 정말 긴장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렇다고 생각일 뿐이다?”
왼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친구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 한번만 더 질문하면 가만 안 놔둔다. 갑자기 나타나서 자꾸 뭔소리야.”
“하여간, 성질하고는 아쿤이가 너 닮았지 싶다.”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의 수다는 막을 내렸다. 성깔 있는 아쿤이와 친구에게 감사의 작별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의 머리 옆에는 말풍선이 계속 달려 있었다. 인간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세상의 모든 동물은 긴장 없이 살아간다. 하늘 위로 비상하는 새를 바라보며 긴장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굶주린 육식동물이 먹이를 맹렬하게 쫓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긴장되고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쿤이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긴장되어져 보이는 경우는 없다. 유독 인간만이 자신을 추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그렇게 평가한다. 잠든 순간에도 미간과 턱과 목의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뒤척이며 잠을 잔다. 음,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의 몸에 자의식을 품고 살아가는 구나. 자신의 몸에 대해 자의식을 갖는 것, 몸을 부끄러워하고 겁내거나 혹은 아름다워지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가혹한 형벌인가.

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은 닭의 관찰을 통해 책 읽는 사람이 양계하는 법을 설명해 내었다면 나는 아쿤이를 통해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긴장하지 않은 채 몸의 흐름을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지 고양이로부터 배워야 한다. 이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완전히 이완하고 있는 고양이는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가? 하지만 어느새 주변에 조그만 움직임이 있어도 눈을 뜬다.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느긋하게 이완되어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깨어 있다. 어떤 식으로 잠자는지, 얼마나 이완되어 있는지, 어떻게 긴장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고양이를 보고 배워야 한다. 고양이와 친구가 되듯, 자신의 몸과 친구가 되라. 자신의 몸의 자의식을 버리고 힘을 빼고 긴장을 놓아라. 긴장을 풀고 그대의 에너지가 온 몸으로 흘러가게 하라. 어느새 자연과 하나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첩을 꺼내 요리조리 메모를 하니 어느새 집 앞 정류장이다. '닭'으로 출발해 '고양이'를 만나고 '나의 몸'을 통해 '자연'으로 연결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나의 호흡만큼은 길고 깊어진다. 잠시 버스정류장 꽃가게 앞에 멈춰 섰다. 쇼윈도 너머로 밝게 인사를 보내는 꽃들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다. 코로 흘러들어와 머리끝을 돌아 손끝으로 그리고 발끝까지 퍼져 가는 숨결이 꽃의 숨결과 하나가 된다. 무채색의 세계, 아무것이 아니어도 참 편안하다. 다시, 몸으로부터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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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6.25 14:12:53 *.99.120.184
이렇게 마음으로 쓰는 글을 위해 잠시 휴가를 다녀온 것이군.
점점 깊이가 느껴진다.
긴장을 풀고 그대의 에너지가 온 몸으로 흘러가게 하라.
엉뚱한 대로 흘러갈까봐 조바심이 나서 잘 못하는데 한번 해봐야 겠다.
잘 읽고 간다. 앞으로도 부탁해. 힘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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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25 19:15:49 *.72.153.12
춤꾼 동물을 그렇게 보면, 그림쟁이는 동물을 어떻게 보나도 소재가 될 수 있겠다.
아, 이 편안한 느낌. 너의 몸도 편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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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6 23:13:00 *.48.41.28
소라야 담에는 우리 고양이도 함 만나줘.
얘가 사람을 그리워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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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6.27 10:32:02 *.231.50.64
여해 오빠, 정말이지 꼼꼼하게 글 읽고 답글 달아주시는 것에
정말 매번 감동해요.
꼭, 꼭, 에너지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시와요.
엉뚱한데로 가면 어때요.
그곳이 낙원일런지도 모르죠.^^

정화언니, 언니는 이야기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한거 같아.

향인언니. 나 언니네 고양이 정말 보고싶다우.
집에 초대해주라..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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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찬
2007.06.28 00:14:07 *.140.145.80
소현님.. 댓글 보시거든 저한테 전화 한번 주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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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2007.06.30 16:35:32 *.102.144.31
그러게.글이 아주 편안해.
몸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그래서 내가 춤을 배우고 싶어하는가봐요...
깃털처럼. 정말 몸을 머리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그게 왜 쉽지 않은걸까.
고양이 아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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