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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7일 00시 00분 등록
가끔은 그냥...


의외의 반전은 항상 흥분과 충격을 안겨준다. 때로는 그 반전이 통찰력까지 일깨워 주어 나 자신을 들뜨게도 한다.

태규는 심심한 것을 못 참는다. 혼자 놀다 심심해지면 나와 장기를 두자고 한다. 오늘도 책을 읽다 태규의 성화에 못 이겨 장기를 두었다. 매번 둘 때마다 져주는 바람에 태규는 자기가 장기를 꽤나 잘 둔다는 귀여운 착각 속에 으스대곤 한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자신의 실력을 깨닫게 해주고 이 참에 지는 법도 가르쳐줄 요량으로 냉정하게 두었다. 그동안 형하고 장기를 두어서 그런지 말을 놓는 폼이나 말을 부리는 기술이 제법이다. '그래도 어린애 실력인데'하고 느긋하게 장기를 두어 나갔다. 차(車)를 잡고 포(包)도 먹고 물리는 것 없이 칼같이 진행했다. 싸움은 중반전을 지나 종반전에 이르렀을 때 두 수만 두면 내가 이길 형세가 되었다. 이럴 때 예전 같았으면 벌써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오늘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어가며 여유를 부린다.
'이 녀석 제법이네. 나중에 떼를 피우려나.' 오히려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내가 초조해진다.

그러던 차에 포를 가지고 나의 왕을 따버렸다.
"내가 이겼다요. 아빠가 졌지요? 그렇죠?"
순간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당황스러웠다.
'내 수만 보다 허를 찔린 건가?'

정신을 차려 상황을 파악해보니 직선으로 움직여야 할 포를 대각선으로 움직여서 왕을 따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어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하면 안돼. 포는 직선으로 움직여야지"
"왜요?"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지."
하고 장기의 룰을 따라 다시 두어 내가 결국 이기긴 했지만 어른의 사고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창의적인 발상이어서 태규에게 어떻게 그 수를 두었는지 물어보았다.
태규왈, '그냥요!'

참으로 우문에 현답이다. 무슨 다른 생각이 있었겠는가. 단지 정해진 룰을 무시하고 다른 길을 생각한 것인데. 이 점이 정해진 틀에 얽매여 있는 어른과 순수한 아이의 생각 차이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어른이 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규칙에 제한되고 구속되어 얽매여 가면서 자기 스스로를 그 속에 가두어 자충수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에는 지켜야 할 규칙도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규칙도 많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고정관념이라는 놈이다.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알면서도 매번 구속당한다. 그 뿌리는 너무 깊어 싹을 잘라내어도 어느새 또 자란다. 한 예로 '성공하려면 약점을 없애야한다'는 생각이다. 이 관념 속에는 사람은 장점과 단점이 정해져 있고 단점만 보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장점과 단점은 스스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처한 상황과 시점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적에게 뒤를 보여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적절한 시점에 이용만 잘하면 오히려 적의 자만심을 자극하여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맞는 장점을 재능으로 살려서 이를 강점으로 극대화하는 접근방법이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생산적인 방법이 된다.

개인이나 조직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 때 성공한 사람이나 성공한 조직의 접근 방법을 비교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최선을 다하되 주어진 환경을 바꾸어 나간다는 점이다. 주어진 환경에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고정관념으로 스스로 제한을 두어 만들어진 규칙들도 있다. 이런 규칙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그 규칙을 깬다면 성공으로 이르는 길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진다. 태규의 수처럼 황당하지만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액자 안에서는 액자의 틀을 볼 수 없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틀을 은연중에 지키고 있다면 이 틀만 깨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 원하는 방향으로 훨씬 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념의 틀을 깰 때 나오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인생의 행복도 은연중에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어 놓은 것들에 의해 구속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애초에 없었던 잣대로 생각을 쪼개고 가두고 얽매어서 우리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어 맨다. 이런 것들만 없어도 우리의 행복과 성공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정관념, 평소에 우리를 가두어 놓지만 이용만 잘하면 오히려 새로운 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를 가두어 놓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자. 그리고 그 가둠의 문을 열고 가끔은 그냥 밖으로 나가보자. 혹시 이런 것들이 나를 행복의 길로 인도해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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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7.07 10:55:29 *.118.101.76
좋은 글입니다.
늘 나를 둘러싸서 나의 것인지 본연의 것인지 모르고
달고 다니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틀을 깨는것이 배우는 것이고 즐거움인것 같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변화하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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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7 11:56:53 *.211.61.248
이번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헛된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지.
효과적이지 않으면 효율은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말이야.

소전의 말이 맞아. 평소 많은 잘못된 가정과 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변화를 향한 첫걸음인 것 같아.
우리 지금 변화하고 있는 거지?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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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7.07 18:12:51 *.48.41.28
그러믄요, 정말 많이 변하고 있지요. 특히 엉덩이 라인..ㅋㅋ

저도 참 개방적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보수적인 인간이라 가끔 웃습니다. 너무 어릴 때 주입된게 많아서 떨치는 데 시간 걸리네요.좋은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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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8 00:04:06 *.211.61.248
엉덩이는 생각 못했네요.

나 자신을 많이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동안 관찰하지 못한 부분도 많이 발견하게 되네요.
나 혼자였다면 힘들었을텐데 연구원들 덕분에 깊이 들어갈 수 있어 참 좋아요.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때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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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웅
2007.07.08 01:09:02 *.47.94.112
요즘 책을 읽으며 창의력과 분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분노에 대한 고정관념도 조금 깨어져야한다고 생각되네요. 기존의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는 창의력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거든요.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해보고 싶게 만드는 마음도 창의력으로 볼 수 있겠지요?

요즘 창의력에 대해서 생각이 많던터라, 이 말이 먼저 쏟아졌네요. 순수한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도 창의력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네요 ! 좋은 아이디어 얻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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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08 02:40:39 *.70.72.121
수료식 때에 궁둥살이 가장 빽빽해진 사람에게 시상식할까요? ㅎㅎ

여해님, 글이 노골노골 나긋나긋해지면서 정감있게 잘 묘사되고 있구려.

윗글 김신웅님!
분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차치하고 사태 수습을 딴에는 서둘러 한답시고 전혀 상관않고 넘어가려는 것이 상대에게 외려 얕잡아 본다는 오해와 밉쌍을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모든 것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따로 또 같이 해야하고, 의도파악을 먼저해줄 수 있는 관용 내지는 아량이 있어야 마음놓고(?) 창의성이 살아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창字 꺼내기도 전에 몰매 맞아 죽는 경우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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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8 17:30:03 *.211.61.248
김신웅님/ 창의력도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인데 문제는 이 틀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렇더라도 그 틀은 보려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것이겠죠. 댓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예리한 관찰과 비판이 부탁드립니다.

써니님/ 노골노골하다구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제 틀을 보기 이렇게 어렵네요. 궁둥이상 이거 괜찮네. 건의해봅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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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07.08 17:31:52 *.86.55.231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간혹 꼬맹이들한테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의외의 답을 구할 수 있지요. 그런데 고정의 틀을 깨면 사회는 간혹 '이상한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가 있으니 갑지가 깨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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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08 19:08:10 *.211.61.248
네, 분부대로 시행합죠.
조금씩 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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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7.07.09 01:11:32 *.47.92.23
써니님^^/ 아아, 제가 오랫동안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 혼자 골똘히 지내온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면이 많이 모자란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부쩍 상황판단능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써니 님이 그 점을 제대로 짚어 주셨네요. ( 돗자리 깔으셔요~ ! )

이번처럼 글의 의도파악을 잘 못하고, 제 생각만 너무 앞세우는 경우가 요즘 참 많았거든요. 다른 사람의 말을 먼저 차분히 들어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어요. 그리고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도 많이많이 반성해야겠구요. (제가 이 곳에 남긴 얼마 안 되는 글을 되돌아봐도 너무나 극단적인 표현이 많아서.. 이 극단성이란 녀석은 정말 하루바삐 고쳐야 하는데.. ^^;;)

* 써니님 말씀을 듣고 다시 보니 제 댓글이 왜곡되어 들릴 수 있었네요. 저는 그냥 창의력과 관련해서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이 그만 표현이 잘못 되어지는 바람에 실수를 하게 되었네요. 모두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

써니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 ( 크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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