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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2일 23시 29분 등록
질퍽한 삶이 높은 이상을 품다

중학생일 때였나, 초등학생일 때였나?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 3, 4개를 빌려왔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5공화국>과 <인간 박정희> 정도였던 것 같다. 이런 류의 장르는 뭘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 영화는 아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빌려온 테이프를 이틀간에 걸쳐 모두 보았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척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나에게 울림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현대사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몇 편 더 빌려 보았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 2007년 6월 3일, 나는 우리 동네의 비디오 가게에 들렀다. 비디오방이 아닌 비디오샵에 가기는 7, 8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비디오 가게의 모든 테이프 진열장을 훑었다.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왼편에서부터 오른편 끝까지를 살폈다. 현대사 다큐멘터리를 찾기 위해서다. 뭐라고 물어봐야 할지도 몰라 직접 비디오 가게 전체를 직접 뒤졌던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의도하지 않았던 영화 테잎 하나를 한 손에 집어 들고서 말이다.

결국 내가 원하는 비디오 테잎은 찾지 못했다. 손에 쥐었던 <너는 내 운명>과 <파인딩 포레스터>를 주인에게 건네며 슬쩍 물었다. “요즘엔 제5공화국 같은 현대사물은 안 나오나봐요? 제 초등학생 때에는 꽤 있었는데...” 웃으며 들었던 대답. “요샌 그런 거 안 나와요.” 괜히 물었지만, 혹시라도 창고에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지울 수 있었으니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비디오 가게를 나왔다. 애꿎은 대여료 4,000원이 아까웠다. (분명 예전에는 구간 프로 대여료가 300원이었는데.)

결국, 나는 현대사를 다룬 책을 읽었다. 광주항쟁을 다룬 부분에서는 울분을 참지 못하여 신음한다. 6.․10 민주화 항쟁을 읽다가는 감격에 겨워 가슴이 벅차오른다. 민중의 힘이 역사를 바꾼 그 날이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벅찬 감격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성향이었다. 어릴 적, 나는 전두환의 군부 독재가 막연히 나쁘다는 인상을 가졌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성향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적인 것은 나의 사유와 신념일 뿐, 나의 삶은 이상이나 고결의 근처에도 이르지 못하는 질퍽한 삶이다. 욕심 가득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톨스토이의 『악마』를 읽으면서, 이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또한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쓴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소설 속에는 음욕 앞에 선 한 남자 ‘예브게니’가 등장한다. 그가 도덕을 가지고 욕망과 맞서는 심리묘사는 사실적이고, 치열하다. 자신의 순결한 아내 리자가 아닌, 결혼 전 관계를 가졌던 스체파니다를 생각하며 내뱉은 독백에는 그의 깊은 고뇌와 절망적인 갈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 파멸이야. -그는 이 상황을 달리 인식할 수가 없었다- 마을의 하찮은 농꾼 여자와 젊고 사랑스런 아내를 바꿀 것인가. 누가 봐도 이것이 파멸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파국이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안 돼! 뭔가 방법을 찾아야 돼.' (중략)
그는 엄격하게 명령했다. 하지만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어느새 그녀에게로 옮겨가고 눈앞에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으며 단풍나무 그림자가 어룽거렸다.]

톨스토이는 많은 보통 사람들이 육체에 대한 왜곡된 욕망을 감춘 채 얼마든지 위대한 인간, 성실한 인간으로 버젓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종종 추하고 더럽지만, 나를 좋아하고 심지어 존경한다는 후배도 있다. 인간 인격의 이중성과 일탈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많은 물음으로 가진 채 『악마』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며칠 전, 6월 10일은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집에서 두 편의 6월 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이 날엔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서울의 수온주가 30.7℃까지 올랐다. 이날 뉴스데스크 앵커의 첫 멘트는 “햇살도 가슴도 뜨거운 하루였습니다”였다. 2007년 6월 10일의 뜨거운 햇살과 20년 전 6월 10일의 뜨거운 가슴이 묘하게 교차된다. 2007년엔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TV에서는 1987년 그 날의 주역을 인터뷰한 프로그램이 상영되었다.

“나는 다쳐서 병원에 가지만 여러분은 남아서 내 몫까지 끝까지 투쟁해 주십시오.” 당시 숭실대 4학년이었던 임병진씨가 실려 가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 해 가을, 농성을 하다가 구속됨으로써 부모님의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았다. 그가 운동권을 떠나 회사에 취직한 건 1990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임병진 씨는 지금도 당시 명동성당 농성을 함께 했던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임병진이 실려간 다음날(1987.6.12), 농성대는 성당 앞을 깨끗이 청소했다. 시민들이 성당 미사를 드리러 오는데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날, 경찰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날 밤, 두려움 속에서도 명동성당을 떠난 농성대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최루탄으로 인해 일시 흩어지긴 했지만, 시위대는 금방 또 형성되었다. 당시 시위학생이었던 남찬숙은 그 날의 두려움을 생생히 기억한다. 남찬숙 씨는 이 때,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싹텄다고 말한다. “때가 되면 사람이 이렇게 용감해 질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죠.” 학생 남찬숙은 그렇게 역사적인 그 날 밤에 명동성당을 지켰다. 남찬숙은 87년 6월,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이 되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 때 학생들의 농성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명동성당에서 천막생활을 하던 상계동 주민들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밥을 일일이 다 했으니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죠.” 당시 학생들이었던 남찬숙의 말이다. 그 당시 상계동 철거민이었던 안은정 씨는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밤을 새워서 라면을 계속 끓였죠. 24시간을 계속 밥하고 라면 끓이고, 한편에는 다친 학생들을 치료하고.. 굉장했어요. 그때 막내가 이제 27살이 되었죠.”
88올림픽을 앞세워, 철거반은 이주 대책도 없이 상계동 주민을 무력으로 쫓아냈다. 상계동 주민들은 올림픽 때문에 자신의 터전인 상계동에서 쫓겨나 천주교의 도움으로 명동 성당 안으로 들어와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정권에 대한 원한이 학생들과 합해졌던 것이다.

학생과 가난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에는 넥타이 부대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명동 성당을 향했다. 금융권 사무직 노동자들이 항쟁에 가세했던 것이다. 당시 이들이 넥타이 부대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막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조합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시위대에 동참했다. 마치 이 날을 위해 결의한 민주전사들 같았다. 넥타이 부대는 6월 15일 이후, 학생들 주력부대가 명동성당을 떠간 이후에도 밤새 명동을 지켰다. 항쟁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 노동 조합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민주화를 향한 시위를 계속하기도 했다. 당시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탄압은 거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였던 이승면 등은 점심시간 때 저 멀리서 나타났던 넥타이 부대가 나타나서 애국가를 부르던 장면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기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승리의 느낌은 지금의 나에게도 절절히 느껴져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데, 그 때 명동성당에 있었던 그들에게야 오죽하랴.

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함께 역사의 자리에 함께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6월 항쟁은 영웅이 아니라, 민중들이 일궈 낸 승리였기에 민초인 나에게 더욱 짜릿함을 안겨준다. 함께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은 거대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민주화라는 이상을 향한 그들은 하나였다. 특별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멘트로 막을 내렸다.
“꿈도, 희망도, 새로운 역사도, 너와 내가 함께할 때 비로소 일궈낼 수 있음을 보여준 1987년 6월의 그 힘을.”

6월 10일이 끼어 있던 주간에 나는 민족의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그는 강인한 정신과 기개로 무장한 장군이었다. 난중일기를 완역한 노승석은 이순신 장군을 항상 죽기를 각오한 자세로 임전臨戰하였으니, 이른바 견위수명(見危授命)을 몸소 실천했던 분으로 묘사했다. 견위수명은 나라의 위태(危殆)로운 지경(地境)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2007년의 6월은, 위태로운 지경을 외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였던 이순신과 6월 항쟁의 주역들로 인하여 내 가슴이 뜨거워졌던 시절이다. 초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날씨만큼 삶이 질퍽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의로움이 일었던 것이다. (이 뜨거운 의로움이 백범 선생과 다산 선생으로 인하여 6월 내내 지속될 것 같다. 신기하게도 6월 16일은 다산이 태어난 날이고, 6월 26일은 백범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된 날이다.)

임진년 4월에 이순신은 "부산의 거진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장군은 자신의 일기에 “분하고 원통함을 이길 수가 없다”고 썼다. 나는 20년 전에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날, 2007년 6월 10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정의를 부르짖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용감하게 소수자가 되어야 할 때에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는 행동파가 되자. 무식(편협)하지도 않고 비겁하지도 않은 행동하는 지성이 되자. 정직하고 힘있는 글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단속한 강준만 교수를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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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3 10:49:13 *.75.15.205
희석이는 편협하지 않아서 얼마나 대견한지... 어쩌면 이순신을 닮았을지도 몰라, 아프게 가라앉히면서도 자신의 길을 꾸준히 부지런하게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치 않고 올곧게 가려하는 의지를 보면 말이지.

조금만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 정말 좋은 책을 잘 쓸거야,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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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6.13 11:34:41 *.218.205.7
예전에 네가 추천해준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반쯤 읽다가 연구원 레이스가 시작되어서 잠시 페이지를 접어두고 있었어.

오늘 네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파커 파머가 사로잡혔던 라이트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기억하는지? 파커 파머는 이렇게 적어놓았더구나.

"무대 뒤를 들여다봄으로써 연기의 역학이 얼마나 서툴고 솜씨없고 오류투성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대 앞의 화려한 연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런 사람들도 해내는데, 나라고 못할 것이 없지 않는가?" 이 무대 뒤의 현실은 나에게 모든 영웅은 진흙의 발(feet of clay:성격상의 결함)을 갖고 있다는 지적 위안을 주었다....

내가 경험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끊임없는 모순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느낌, 아니 내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괴로운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사회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이중성에 대한 설명은 나의 그런 갈등과 고민이 아주 일반적인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것이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기를 치고 있다는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그대가 말하는 질퍽함이 어떤 것인지 알것 같다. 그리고 그 위에 뜻을 세울 수 있음도 믿는다. 좋은 글 고맙다 희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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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6.13 14:08:11 *.231.50.64
희석. 저번 수업에 희석이의 강의아닌 강의를 듣고 나서는
희석의 글이 백배 재미 있어 졌어. ㅋㅋ

책의 깊이, 사고의 깊이도 서서히 수면위로 들어나는것 같고
그동안 너가 읽어온 책들에 대해서 하나 둘 알게 되는 재미도 솔솔해~~~^^

나는 희석이 같은 사고를 잘 못하는지라..
찬찬히 읽어보며 요리조리 배워볼게 많을거 같다.
글 잘 읽었어.

추신 : 째즈에 대한 칼럼도 언젠가는..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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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제
2007.06.13 16:20:09 *.114.56.245
내 부족함을 말하기전에 그냥 '참 좋다, 지금이 너무 좋다. ' 멀리서 보면 대견하고 가까이서 보면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서. 연구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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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3 20:40:29 *.142.242.216
인간의 이중성.
요새 나도 내 이중적인 면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반수반신의 인간.

아..정말 미치겠다.
희석씨는 아직 내가 모르는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
우리 연구원들 자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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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14 19:59:02 *.134.133.106
써니누나.
누나가 좋아요. ^^

옹박아.
너는 질퍽함 위에도 뜻을 세울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구나. 고맙다. 질퍽한 땅 위에는 기둥을 세울 수 없지만, 질퍽한 삶 위에는 뜻을 세울 수 있음이 묘한 짜릿함을 주네. 그래서 인간인다보다. 한없이 연약하면서도 그 연약함을 빚어 강함을 만들어내는 이순신의 역설적 모습은 네 말대로 일반적인가 보다. 다만 이순신은 연약함과 강함의 간격이 아주 커서 영웅이 된 것인가 보다. 고맙다. 옹박. 너로 인해 이러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 ^^ 너에게 또 책 추천해야겠다. 말로 주고, 되로 받네.

소라 누나. ^^
고마워요. 또 언제 한 번 강의 아닌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네요. 또 백배 재밌어지면, 처음보다 만배가 되는 거네요. 좋당~ 째즈에 대한 얘긴 누나부터 풀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 저도 해 보렵니다.

우제님.
"내 부족함을 말하기 전에 그냥 참 좋다."
이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
저도 참 좋아요. 저는 지난 번 안성에서의 꿈벗 모임에서야 느꼈었지요. 제가 좀 늦은가 봐요. 저도 연구원이 좋아요.

호정님.
누나, 미칠 만큼 좋아지면 승완형은 어떡하라구요? ^^ 누나도 제가 가지지 않은 면을 가지고 있는 듯 해요. 언제 서로의 다름에 대하여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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