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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 20시 03분 등록
산책갔다가 지렁이 한마리를 시멘트로 만들어진 수로에서 발견했다. 남자 어른 손 큰 사람의 한뼘정도의 길이나 되는 크고 통통한 지렁이를 집어서 옆에 길 건너편 흙으로 옮겼다.
지렁이를 옮기고 보니, 그 지렁이 녀석과 내가 첫번째 구덩이에 빠졌을 때와 닮았다.

칼럼의 소재로 인생에서 겪는 구덩이란 것을 붙들고, 어떻게 쓸가를 고민하며 산책하다 보니, 생각이 거기에 미친다.

내가 첫번째 구덩이로 기억하는 것은 첫번째 직장인 군산기상대에서 근무를 할 때이다. 당시 나는 여러가지로 혼란스러웠는데, 집안일로 정신이 없었고, 그리고 첫근무지의 홍역을 요란하게 치루고 있었다. 그것도, 겪어본 사람이 그것이 홍역인지 알 듯 당시 나는 상황이 악화 되기 전까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당시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료가 내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심각함을 인지했었다. 그 동료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게 미안해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증폭제 였으니까. 우리는 직장의 상사에게 둘 다 찍혀서 근무하는 날마다 특별한 청소를 했다. 동료 경희씨가 사과한 이유는, 경희씨가 메인 타킷으로 찍혔는데, 그것을 드러내놓고 잡일로 괴롭히기가 챙피했는지 상사는 내가 근무하는 날만을 골라서 ‘여직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탕비실(부엌) 바닥 청소, 냉장고 정리, 도서실 정리, 창문과 창틀 닦기 등을 시켰고, 우리는 같이 했기 때문이다.

청소야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었는 데, 그 청소라는 것이 한 달에 한번 혹은 몇달에 한번 전직원이 모여서 대청소를 할때나 하는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것도 그렇고, 꼭 내가 근무하는 날만 골라서 둘이만 청소를 한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찍힌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깔끔하게 청소를 해도, 둘은 늘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다. 청소할 거리는 늘 있었고, 그것들을 한꺼번에 다 해놓는다 해도, 다른 것을 찾아서 야단을 쳤으며, 자신의 눈 앞에서 설설기며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왜 청소하지 않았느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우울했다.

우리는(나는) 나름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었고, 그 방법대로 열심히 해 보았다. 그렇게 몇 달을 해 보았는데, 그것은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를 상담해 주던 사람들은 ‘네가 잘못해서.’ ‘네가 좀 특이하잖니.’ ‘좀 잘하지 그러냐’라는 말로 상처를 입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달을 점점 지쳐갔다.

그러는 동안에 질문은 ‘어떻게?’를 넘어서 ‘뭐냐고?’라는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꼭 하수구 시멘트 수로를 아무리 박박 기어도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지렁이처럼 힘겨웠고, 그렇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자괴감에 빠졌다.

우리의 우울은 배가 어찌나 크던지 채워지지 않았다. 마구마구 먹어대도 배가 고팠고, 계속해서 매운 것, 술, 단 것들을 요구했다. 실컷 일로 시달린 날, 우리는 퇴근길에 종종 빵집에 들러 빵을 먹다가 울곤 했다. 정말이지 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희씨는 철밥통을 버리면 부녀의 정을 끊겠다고 돌아서 한번도 눈을 맞추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몇 번이나 썼던 사표를 다시 돌려받아 다니고 있었다. 그것때문에 가속이 붙으면서 상사의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어느날 경희씨의 문제는 아주 우연히 해결되었다. 바로 그 빵집사건이었다. 둘이 빵먹으로 우는 모습을 경희씨의 오빠가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빠가 대변인이 되어 그녀의 아버지를 설득해 주었다. 그렇게 경희씨는 그 구덩이를 탈출했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때 나는 경희씨를 맘껏 축하해 주었다. 더이상 일요일 오후부터 다음날 출근할 것 때문에 우울해지고 심장이 아파오는 일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내라고.

내 경우는 달랐다. 벌써 여직원 2명이 그만둔 상태였고, 상사에 주먹다짐으로 맞선 남직원에게는 아무 일도 맡겨지지 않아서 일은 이전보다 훨씬 양이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내가 메인 타킷이 되어 있었다. 직장동료들은 찍혔건, 그렇지 않건 견디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기다리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인사이동이 잦은 편이니 둘 중의 하나는 6개월 아니면 1년 이내에 반드시 움직일 거라고. 그러니 그만두지 말고 기다리자고.

그러다 기다리는 때가 왔다. 그런데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내가 기다리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했던 몇몇 요령있던 직원은다른 곳을 지원해 발령나 달아나 버렸다. 한 부서 직원을 모두 교체하면 업무가 마비되므로 더 이상 교체 되지 않을 정도의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는 모두 새 사람으로 교체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음 번 인사발령을 기다려도 소용없었다. 더 이상의 교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간자가 달아나 버렸다고 책망할 게 아니라, 나도 미리서 다른 곳으로 발령내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난 그렇게 조직이란 것을 아무것도 모른 채 헤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포기하고 그럭저럭 몇 달을 보내고 있는 데, 뜬금없이 군산에서 광주로 발령이 났다. 문제의 해결이고 뭐고 이젠 포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연한 기회로 외부의 어떤 손에 의해 구제된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힘들여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었던 결과라서 그런지 나는 바로 그와 비슷한 구덩이에 또 빠지게 되었고, 또 여러 달을 헤멨다. 여전히 그 구덩이를 빠져 나오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내 머리 속에서 나타나서 떠나지 않았던 그 첫번째 구덩이 이야기는 5연으로 된 ‘인연’ 짧은 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는 동안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건너뜀이 나와는 달라서 그는 어디쯤에서 헤메고 어디쯤에서 교훈을 얻어내나를 생각해 보았다.

내 경우는 세번째 혹은 네번째 정도를 겪고 있는 것 같다. 각각의 구덩이에서 교훈을 얻어서 건너뜀이 있겠지만, 시점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속에서 헤메야 한다.

김구의 경우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위치에서 한번 둘러보고, 그리고 한 발 물러서서 둘러 보고는 신념에 따라 신중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순전히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선택한 대로 열심히 산다. 그래서 김구는 한번의 경험을 통해서 시점의 변화도 일으키고, 몇 번의 도약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인생으로 비유하는 그 시에서의 김구의 위치를 본다면 그는 구덩이가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길을 가며, 혹은 뻔히 보이는 구덩이를 돌아서 가는 것이 아닌, 그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갔다가 헤쳐 나오는 것 같다.

그가 농촌에서 소작인들을 관리하는 생활을 하는 부분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읍내 생활에 취미가 없어져서 황량과 용진 용정에게 농촌생활을 부탁했다. 그들은 자기네 소유 중에 산천이 맑고 아름다운 곳을 택하여 드리겠으니 농사 감독이나 하라고 흔쾌히 허락한다. 나는 해마다 추수를 감독하고 시찰한바, 가장 성가시고 말썽 많고 또 자고로 ‘토질(풍토병) 구덩이’로 유명한 동산평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였다. (중략) 풍토가 나쁜 것은 주의하여 지낼 셈치고, 기어이 동산에 가겠다고 강하게 요청하였다.’

김구는 그렇게 시작하여 소작인들이 부지런하도록 독려하고, 소학교를 세우고 농촌을 변화시킨다. 그의 기술대로 그 어떤 문제점들은 주의할 것은 되지만,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들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3번의 옥고를 치르면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것 을 보았다.

그는 또 질문하는 방식도 나와 달랐다.
나는 '어떻게 어떻게?' 만을 외쳐댔는데, 그는 자문자답을 통해 생각을 전진시켜 간다. 그리곤 거기서 얻는 결론을 실행한다.

내게도 김구에게처럼 그렇게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길 바란다. 여전히 자신의 문제 안에 푹 빠져서 허부적 거리는 것이 아닌, 도약을 만들어 내는 질문들과 사건들이 생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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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구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연)
길을 걷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왜 이런 곳에 구덩이가 있지' 나는 몹시 화가 났고, 투털거렸다.
구덩이에 빠진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구덩이가 얼마나 깊은지 어떻게 하면 빠져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온갖 애를 썼다. 아주 힘겹게 빠져 나왔다.

(2연)
길을 가다가 또 구덩이에 빠진다. 아까 빠졌던 그 구덩이였다.
금새 구덩이에 금새 또 빠져버린 자신의 미련스러움을 자신에게 심하게 화가 났다. 실컷 욕하고 투덜거렸다.
역시 힘겹게 빠져나왔다.

(3연)
이번에도 구덩이에 빠졌다.
이젠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 거의 습관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는 왜 내가 구덩이에 빠졌는지 안다.
구덩이가 어느 곳에든지 있을 수 있다. 주의를 하지 않는 나의 잘못이다.
이제는 구덩이를 쉽게 빠져 나온다.

(4연)
길을 가다가 구덩이를 발견했다.
조심해서 피야가야지 하는 데, 역시 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빠져나오는 법을 알기 때문에 쉽게 빠져 나왔다.

(5번)
나는 이제 구덩이를 돌아서 간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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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8 09:39:25 *.99.241.60
제 생각에 백범 선생님은 구덩이를 돌아서 간것이 아니고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치하포 사건도 사실 우연한 만남에서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쓰치다 중위를 살해하면서부터 커다란 구덩이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나중에는 구덩이가 있는 땅을 아예 물기를 바싹 말려서
평지로 만들어 놓은것 같더군요.

사실 쓰치다 중위가 백범 선생님을 만나면서 구덩이에
빠져 영영 나오지 못하는 불구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일본의 명문가에 태어나
아주 유능한 첩보원이라고 하던데,
쯔쯧 임자를 잘못 만나도 하필 화가 잔뜩 난
하얀 호랑이를 만날것은 또 무슨 인연이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구덩이를 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듯이
정화님의 방식대로 구덩이를 넘어가는 방법을 찾기를
그것도 혼자보다는 둘이 구덩이를 넘는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은디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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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18 15:51:08 *.72.153.12
음.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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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6.19 16:07:58 *.92.200.65
정화 연구원님 안녕하시죠? 6월은 김구선생과 다산문선을 통해 함께 교감하고 싶었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 휴업상태라 제가 힘을 못드리게 되었습니다.

7월말까지는 서포터즈로서 힘을 드리기가 힘들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힘있게 찾아 오도록 할터이니 늘 언제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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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6.19 17:23:57 *.72.153.12
인애님 축하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예쁜 것 많이 드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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