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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9일 10시 04분 등록
[부탁의 말씀]
영글지 못한 생각이어서 올릴까, 말까 고민하였습니다. 내가 다루기에는 어려운 주제였나 봅니다. 자의적 해석으로 개념을 정의하였고, 흐름은 논리적이지 못하며, 결론도 성급하게 일반화한 것 같아 살짝 괴롭습니다. (^^) 하지만, 지난 번 칼럼에서 옹박과 영훈 형님이 조언을 해 주니 생각이 조금 더 명료해지더군요. 이번에도 여러분들의 그러한 ‘창조적 댓글 효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

동지, 그 아름다운 동행

『백범일지』 리뷰를 통해 비범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백범의 어머니에 대한 다음의 문장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비범함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어머님도 그날 밤 감리서의 전갈을 받고서야 비로소 이 일을 알게 되셨다. 이 일로 인해 누구보다도 어머님이 당신 아들을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셨다.” (p.91)
백범과 가장 가까운 분 중에 하나는 분명 어머님이다. 떨어져 지낸 적이 많긴 하지만, 누구보다 백범을 생각하고 그리워하셨을 것이다. 분명, 백범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분이 어머님일 것이다. 그런데, 어머님도 처음부터 당신의 아들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비범함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관계라고 하여 그것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범함을 발견하는 능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범함을 알아챌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이미 발견해 놓은 위인들을 보고 아하, 저 분 참 비범하구나, 라고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종종 강연에 참가했었던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기꺼이 만난다. 어떤 분들은 분명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냥 다른 것인가? 비범한 것인가? 이 둘을 쉽게 구분해 내는 방법은 없을까?

비범함을 갖춘 이들은 분명 남다른 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평범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평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사실은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과 영웅적인 업적을 들여다보면서 절절히 느꼈던 바다. 영웅과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은 영웅이 보여주는 일상에서의 평범함까지 보게 된다. 일상에서도 그들의 비범한 특성들이 나타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흔히 내 곁의 사람들의 비범함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백범의 어머니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치하포 사건이 있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당신의 아들이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다. 비범함을 알아차리지 못한 더욱 가슴 아픈 사건은 백범 일행이 이재명 의사를 일개 열혈 청년으로 보아 칼과 총을 맡겨두라고 말한 장면이다. 이재명 의사를 처음 만나고 난 후의 백범의 소감을 옮겨 본다.

"그(이재명)는 어려서 하와이에 건너가 공부했고, 조국이 왜놈에게 강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귀국하여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 몇 놈을 죽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도 한 자루, 단총 한 정과 이완용 등의 사진 몇 장을 품 속에서 내놓았다. 뉘 알았으랴, 그가 며칠 후 경성 명동에서 군밤 장수로 가장하고 이완용을 공격하여 조선 천지를 뒤흔들어 놓을 이재명 의사인 줄을. 우리는 그를 단지 시세의 격변 때문에 헛된 열정에 들뜬 청년이라 여겼다." (p.151)

그리하여 백범 측은 이재명에게서 총과 칼을 맡기라고 설득하였고, 며칠 후 총을 맡긴 이재명 의사가 홀연히 나타나 자기 물건을 돌려 달라고 하였지만 돌려주지 못했다. 훗날, 이재명은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칼로 찔렀다. 애석하게도 이완용을 죽이지는 못했다. 백범은 이렇게 한탄한다.

"만약 이의사가 단총을 사용하였다면 이완용의 목숨을 확실히 끊었을 것이다. 우리가 눈이 멀어 그의 행동을 간섭하고 무기를 빼앗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한탄과 후회가 그치지 않았다." (p.152)
아...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이재명 의사. 그의 기개와 정신에 감동하고, 이완용의 목숨을 끊지 못함에 분하고 원통하다. 나도 이러한데 백범 선생님은 얼마나 안타깝고 분하였을까.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흔하지는 않을 테지만, 비범함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일을 그르친 경우다. 비범함을 알아내는 방법은 없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백범일지』를 읽으며 한 가지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의인들이 또 다른 의인들을 알아본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정부대관들은 모두 돈독이 올라서 돈을 안 쓰면 김창수를 풀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산을 전부 팔아 김창수의 부모님을 모시고 경성에 올라가 석방을 주선하겠다.”(p.93)
김주경의 말이다. 그는 실제로 힘들여 벌어들인 전 재산을 김창수의 석방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김주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절절해진다. 또한 주경이 그리 할 수 있도록 만든 백범의 사람됨이 존경스럽다. 세상은 의인을 찾는다. 뜻을 품고 올곧은 길을 걸어가는 의인에게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이 모두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일까? 의인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의인들을 끌어들인다. 또한 의인이 의인을 알아본다. 김주경의 헌신이 눈물겹다. 또 한 구절을 보자.

"하루는 이천경이 편지 한 장을 써 주며 무주 읍내의 이시발에게로 가라 하였다. 찾아가 편지를 전하니 하룻밤을 묵게 하고는, 이시발이 또 편지 한 장을 주며 지례군 천곡의 성태영을 찾아가라 하였다. 찾아가니 성태영은 나를 최고의 손님으로 대우해 주었다. 한 달 남짓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보냈다. 하루는 유완무가 성씨 집에 찾아왔다. 성태영과 유완무는 창수라는 나의 이름이 불편하다 하여 김구로 고치고, 호는 연하, 자는 연상이라 정해 주었다." (p.123)

의인은 고독하다. 때때로 불의한 권력자들뿐만 아니라, 무지한 민중까지 그들에게 등을 돌려 고독할 수 있지만, 외롭지는 않다. 의인은 분명 곳곳에 있다. 의인이 의인을 소개해 주는 이 장면은 가슴이 쿵꽝거릴 만큼 흥분된다. ‘의인들의 소개팅’은 고독한 의인들을 묶어주는 멋진 수단이다. 소개를 통해 이런 류의 의인들을 계속 만나게 되는 장면이 백범일지의 곳곳에 소개된다. 의인은 세상 속에서 외롭지만,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고독하지 않다. 의인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고독하지만, 많지 않은 의인들이 서로 연결되기에 외롭지 않은 것이다. 소수 정예의 사람들이지만 ‘동지’들이기에 든든하다. 뜻이 같은 벗을 뜻하는 동지, 나는 이 동지라는 말이 좋다. 왠지모를 결연함과 피같이 끈끈한 관계가 연상되어 나는 동지가 좋다. 30명의 헐거운 친구보다 3명의 진한 우정이 더욱 든든하고 소중한 법이다. 문득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는 친구 주동이가 생각난다. 동지란 이런 사람들이다.

“연산 이천경이나 지례 성태영은 모두 내 동지입니다. 우리는 새 동지가 생기면 반드시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1개월씩 함께 지냅니다. 그리하여 각자 관찰하고 시험한 것을 모아서, 벼슬살이가 적당한 자는 벼슬자리를 주선하고 상업이나 농사에 적당한 인재는 상업이나 농사일을 하게 하고 있소. 동지들이 시험한 결과, 연하(백범)는 아직 학식이 부족하니 공부를 더 해야 하오. 경성 방면의 동지들이 전적으로 마아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도록 할 것이오. 또 연하는 상민 계습 출신이니 불가불 신분부터 양반에게 눌리지 않도록 지금 연산의 이천경이 갖고 있는 집과 논밭, 그리고 가구 전부를 그대로 연하의 부모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려 하오. 그 고을의 큰 성씨 몇몇만 잘 단속하면 족히 양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오.” (p.124)

이들은 1개월을 함께 지내며 서로의 강점을 발견하여 그에 맞은 일을 주선해 준다. 같은 뜻을 품은 동지가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평가해주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적극 지원해 준다. 신분상 어려운 점이 있음을 알고 재산을 공유해 준다. 연약한 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가히 최고의 지원으로 함께 뜻을 펼칠 날을 꿈꾸며 서로 돕는다. 이것이 동지다. 저들은 왜 창수에게 이토록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는 것일까? 창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창수가 비범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비범성의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어느 새 ‘비범한 인물’과 ‘의인’이라는 단어를 구분없이 사용하였다. 내가 말하고 있는 의인은 자기 분야에서 위대한 성취를 일구어 낸 자들과는 다른 개념이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비범함을 보이는 이들을 편의상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범성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비범성을 4가지의 유형으로 나눴다. 모차르트 같은 대가(the master)형, 프로이트 같은 창조자(the Maker)형, 버지니아 울프 같은 내관자(the Introspector)형, 마하트마 간디 지도자(the Influencer)형이 그것이다.

굳이 이 유형으로 비범성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의인’은 지도자형에 가까운 비범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든 의인이 꼭 지도자일 필요는 없다. 의인은 위대한 이인자들일 수 있고, 탁월한 리더일 수도 있고, 충성스러운 팔로워들일 수도 있다. 모든 유형의 비범한 이들이 다른 비범한 이들을 알아내고 뭉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의인들은 의인을 알아보고 뭉치어 함께 뜻을 이뤄내는 듯하다. 위대한 천재는 외로울 수 있지만, 의인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천재가 되지도 못하거니와 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보다 가치 있는 정신과 올곧은 뜻을 품고 동지들과 함께 의미있는 성취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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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9 12:04:33 *.75.15.205
1. 우리 마음 속에 공존하는 이중성
어머니는 김구보다 더 먼저, 훨씬 일찍 낌세를 알아 차리셨다. 그리고 염려도 함께 하셨다고 본다. 왜냐하면 태몽 파란 밤톨의 꿈(희망)이야기는 신화적 업적을 만들어 내려고 지어낸 것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적 인물들은 태몽때 부터 범상치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조작의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태몽은 순수해 보인다. 나는 글을 읽으면서 그 커다란 밤톨이 왜 파란색이었을까를 궁금해 하며 읽었다. 김구는 그만하면 고생한 보람을 느낄 만큼 성공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 파란색의 밤톨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다. 밤이 확실하게 익었다면 진한 갈색으로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을 것이다. 어머니 역시 그 부분을 '떨림'- 일말의 염려로 하여 평생의 미증의 기원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사롭지 않을 대단한 희망과 염려(불안)을 함께 하셨을 거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파란밤톨을 미완의 김구라고 생각한다. 이승만과의 힘겨루기에서 김구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거기까지가 김구의 운명. 즉, 하늘의 선택이라고 본다. 너무 운명론적인가?

부모는 더군다나 어머니는 그 자식에 대해 가장 잘 안다. 물론 꼭 그러하지는 않다. 과감은 있다. 대체적으로는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은 타인보다 더 엄격한 완전성을 요구할 경우가 허다하다. 사부님께서 중년의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시 가족을 먼저 설득하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서 나의 일상을 지켜보기 때문에 치우치는 만큼의 냉정함의 이중적 안목과 평가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김구 어머니는 반어법으로 '같이 죽어버리자' 혹은 가장 최후 그러니까 김구가 60에 이르러서야 진정하게 인정함의 의미로 '자네'라는 호칭을 써 주셨다. 이것은 또한 떡잎을 지켜보다가 어머니 자신이 김구에게 매료되어 가시는 과정을 담아, 당근과 채찍을 함께 하시며 점점 더 적극적 지원자가 되셨음도 시사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하여 김구의 반은 어머니의 성취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마음이 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위치에서 각자가 따로 또 같이 노력하면서 우리의 COREANITY 정서인 우리 속에 너(당신과 일치된 내가 함께)을 서로 염원했기 때문에 이루어낸 <변혁>이라는 점에서 가치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의 이면에서 우리는 그의 징징거림을 함께 보았고 어머니라는 또 다른 자신의 인물(형상화)을 통해 구국에 대한 꿈의 기원과 늘 노심초사하는 일말의 불안이 함께 공존하는 이중성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내 말은 이순신이 어머니를 걱정함은 불리된 장면이 아니라 이순신이 곧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곧 이순신이어서 그에게 하루도 걸르지 않는 문안과 위로 속에 실제로는 자시 성장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효를 하는 사람이 충을 한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에게 그러한 이중성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고 구하지도 않을 지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세심하다고 표현하신 적이 있으시다. 재능이나 기질만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글을 쓰게 되었을 거고, 잘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남겨주심으로써 - 재능이면에 그것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과정의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중성- 그러한 면들에 의해 우리는 또 배움에 용기를 얻고, 당신께서는 우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붇돋워 주실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2. 희석이가 연구원을 하지 않고 만일 어느 위대한 업적을 하였다면 우리는 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주저하고 바른 판단을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있었던 희석이 어떤 업적을 이룰 때 우리는 주저없이 누구보다 먼저 그에 대해 기자의 인터뷰에 자신있게 응할 수 있게 된다. 비범함고 평범함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말하자면 증거(관찰)를 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에 대해 안타까움을 김구가 당신의 자책으로 받아드려 주는 부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판단의 오류가 아니라 포용이 아닐까.

3. 비범 속의 평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애써 숨기고 상대와 눈높이를 같이하는 데서부터 상대를 돕는 다는 것이다.- 앞서 우리가 읽은 책 가운데 이 구절이 나오는데... 뭐더라? 있지, 그지? 그래서 오히려 평범해 보이도록 노력하고 평범과 함께 어울릴 줄 알기에 비범한 것이다. 난, 그 표현을 미친여자라고 해서 선배들로부터 된통 꾸지람을 들었었다.^^

3기 연구원이 13명이 모였지만 저 마다 꿈의 양상과 목적은 다 다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석이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예를 들어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은 불심자라 하더라도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 커다란 도움을 얼마든지 줄 수가 있다. 그 사람의 됨됨이(비범성, 혹은 의인임)를 보고 돕는 것이다. 더군다나 의롭거나 가치로울 때, 나는 아니지만 너는 할 수 있을 때, 내 일처럼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그래서 우리를 불러 모으시고 기꺼이 가르치신다. 미친여자처럼...^^

그러니까 희석은 비범한 인물도 좋지만 먼저 의인이 되겠다는 것이네.
나는 그대 글을 읽으며 비범이 No.1 이라면 의인은No.1은 너무나 당연하고 No.2나 3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위가 더 큰 말이기도 하고, 같은 뜻이기도 한 것 같지? 그대 말처럼 의인들이 더 많은 세상이 가치롭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우리 스스로가 비범한 창조적 인물이 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조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이 바로 KOREANITY 가 아닌 COREANITY 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즉, 우리 속의 너에게 미루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 속의 나가 되기를 주저하지 말고 노력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라고,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라고 이르신 것 아니던가.

그래서 서른살 희석이 마흔 중반의 누이를 서슴없이 안아주는 것이 아니던가. 이히히...

희석의 의문에 덧글을 단나는 것이 그만 너무 늘어져 버린 것 같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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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9 14:12:29 *.114.56.245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가녹 우를 범하는 경우,
'이렇게 쉬운 문제를 낼리가 없어 분명 함정일꺼야.' 하고 어렵게돌고 돌아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 의 삶도 조금은 가볍게 멀리서 바라보며 맑은 눈으로 있는그대로 바라봄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평범이 비범이 됨은 '용기'와 '실천'이라는 것과 관련성이 있지 않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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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19 16:33:16 *.134.133.173
희석입니다. 두 누님의 친절한 조언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희누님.
그래요, 누나의 말씀이 정확하네요. 저기 위에 제 글 속에는 '복잡'과 '무거움'이 잔뜩 들어있네요. '용기'와 '실천'의 두 단어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떨어져서 다시 한 번 보아야겠습니다.
아! 참... 칼럼 하나 쓰기 어려운 한 주였습니다.

써니누님.
이재명에 대한 백범의 태도는 판단의 오류가 아닌 '포용'이라는 누나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서 불찰을 찾는 '인격'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네요. 또한 누나의 글을 읽으니, 비범함을 창조하고 싶은 마음을 저도 가지고 있긴 하나, 용기가 부족하여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은 생각도 드는군요. 오늘 밤에 또 다시 누나의 조언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생각할 꺼리들이 많네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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