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최정희
  • 조회 수 3088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2007년 6월 23일 21시 32분 등록
보리밥 2인분에 장떡 하나,
주문은 채 2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제 기다리면 된다.

진한 갈색 탁자를 사이에 두고 셋은 얼굴을 마주한다. 이어지는 순서는 탐색전 같은 서로에 대한 관찰이다. 솔잎 님 눈아래 주름 두 세 개. 지난 주 영면하신 모친을 향한 슬픔의 흔적이리라. 김포 언니의 밝은 모습에서 목디스크의 치료가 끝났음을 짐작한다. 서로의 모습에는 우리의 일상이 살아 있고 고만고만한 삶이 녹아 있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들 앞에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진다. 보리밥, 된장국, 콩비지, 다시마, 상추쌈, 나물무침 2종류, 조기구이 2마리, 이만 한면 진수성찬이다.
음식들은 이야기와 함께 맛을 더하고 이야기는 보리밥과 함께 더욱 구수해진다. 세 개의 숟가락은 된장 뚝배기 속에서 마주치고 웃음은 상추쌈과 함께 넘어간다. 이야기는 주로 솔잎님이 이끈다. 얼마전 등단한 이야기며 문화 센트 문학 수업에의 감동을 주로 전하는 내용이다. 長子의 이야기도 있고 러시아 대문호의 이야기도 있다.

보리밥 2인분에 1만원, 장떡 1개 5천원, 커피3잔에 300원 함계 15300원이다. 가방 속에 있던 내 명의의 카드로 계산한다. 모두 잘 먹었단다. 얻어 먹으니 맛이 더 좋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기분도 ‘짱’이란다. 나도 기분이 좋다. 15,300원의 위력을 실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을 잠시 들린다. 화려함과 세련됨이 한데 어우러져 고급이라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 속에서 잠시 낯선 나를 발견한다. 이방인도 아니고 주변인도 아니다. 멍해진 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나를 깨운 다음 에스컬레이트 앞으로 데리고 간다.

지하 2층
목공예 코너다. 삼나무를 깍아서 만든 건강 베개 68,000원 6개월을 망설여 왔다. 살까, 말까, 비싼 것은 아닌가.
망설이는 나를 보고 65,000원에 가지고 가란다. 사기로 결정, 삼나무향이 코끝을 스치니 기분이 좋다. 65,000원의 효용가치는 적어도 몇 년은 갈 것이다.

1kg은 족히 되는 베개를 들고 6월 한낮의거리를 걷는다. 가로수 그늘 양산삼아 걷는다지만 햇살은 사정이 없다. 코끝에도 내리쬐이고 이마에도 내리쬔다. 코끝에서는 멜라닌으로 남을 것이고 이마에는 잔주름으로 남을 것이다. 20분 가량을 걸었나 보다. 200m 앞에 성당이보인다. 10분만 더 가면 되겠다. 1kg의 무게가 3kg의 무게로 다가선다. 잠시 벤치에 앉는다. 여유로움과 함께 한낮의 시원한 바람이 좋다..
한가로움을 빌려 오늘 지출한 내역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점심 : 15,300원
삼나무 베개 :65,000원
총 10만원에서 8만 3백원을 지출한 셈이니까 아직 19700원이 남았다. 나머지 돈에서 15,000원은 한부모 가정 반찬지원을 위한 후원금으로 내고 남은 4300원으로는 탁주 2병을 사야겠다. 그래도 몇 백원은 남을 것이다.
10만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구수한 이야기와 진수성찬의 점심상을 사고, 더불어 몇 사람에게 기분 좋음을 선사했다. 6개월간 망설여 온 삼나무 베개를 사고도 19700원이 남았다. 그리고 그 남은 돈은 가난한 이의 반찬이 될 것이고 나에게 탁주 한 잔과 아주 잠깐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고도 몇 백원이 또 남아 내 지갑 한구석에 자리 할 것이다.

지난 주 칼럼을 제외하고 ‘필독도서에 대한 글’을 제 시간에 올리지 못했다. 그 댓가는 냉정했고 호정씨의 너그러움도 더 이상은 효력을 발하지 못했다. 명확하게 결론 짓자면 제 시간에 글을 올리지 못한 댓가로 예치금의 일부인 10만원이 사회를 위한 기금으로 들어간 셈이다. 10만원의 기부가 결정 된 순간은 ‘아차’하는 아쉬움이였다. 그 다음은 ‘이런 경험도 나쁘지는 않아’ 하는 나를 위한 작은 위안. 그 다음 따라온 것은 ‘과연 10만원이 얼마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같은 것이였다. 10만원의 위력은 생각을 뛰어넘는 위력을 기지고 있었다. 기쁨을 주었고 긴 망설임 끝에 ‘으랏차’ 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주었으며 탁주와 함께 여유로움을 선사할 수 있었다. 또한 빈한한 이들에게 잠시나마 아릿한 온정을 전할 수 있는 향기를 주었고 마음이 헛헛할 때 그리운이들과 몇 마디 나눌수 있는 몇 백원의 여유돈(공중전화 10분 통화)을 남겨 주었다.

연구원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시도해 보고 싶은가?
결정짓기 전에 10만원의 위력을 잠시 생각해 보시라.

- 입장료 3,000원(정확한 금액을 기억해 내기가 힘들어 어림잡았음 - 3년전 방문때)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33명 입장 가능
- 용정에 있는 윤동주 기념관에 10,000원기부 (몇 년 전 방문 때 기윤동주 기념사업 후원 금을 냈던 금액) ×10명분
어린이를 위한 위인 백범 김구 책 구입 도서관기증 (6,000원×16권)

전 한 번의 경험으로 만족하렵니다. 한 계 효용의 법칙을 익혀 알고 있으니까요.
Tip :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사서라도 해 봐야죠! 강추합니다.





IP *.86.55.231

프로필 이미지
여해
2007.06.23 22:13:00 *.211.61.252
물론 잘 알죠. 워낙 많이 경험해서 다시 경험할 생각은 없는데.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6.23 23:22:18 *.70.72.121
언니! 반쪽이니까 오만원이에요. 아무렇게나 기부하지 맙시다. 술도, 밥도 잘 사는 언니인데 공사구분은 엄격히 해야죠. 그거 우리가 잡아가야 해요. 콩나물값 아끼며 부르튼 손 생각하면... 근데 암만해도 이번주 걸릴 것 같아, 너무 놀았나?g. ㅠㅠ 알라뷰~ 탁주!
프로필 이미지
고요한바다
2007.06.24 05:13:59 *.6.5.201
저도 2주 연속으로 해보고 나니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ㅎㅎ
그리고 선생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방학 주실 때 방학 주시고
쉬어줘야 할 타이밍에 쉬게 할까 라는 생각과 함께 ^^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07.06.24 13:43:18 *.48.41.28
칼럼이 오만원짜리라..한 글자에는 얼마씩인가?ㅎㅎ
저는 숫자에 둔감해서 지갑에 있는대로 그냥 써버리는 편인데 참 꼼꼼하시네요. 저도 한 번 딱 십만원 가지고 가치있게 쓰는 법을 해볼까봐요.
프로필 이미지
최정희
2007.06.24 17:04:17 *.86.55.231
언제 시간 나면 10만원 벌어보기 작전을 시도해 볼까봐요.
내 월급으로 얻는 방법을 떠나서 말이죠. 육체적 노동으로 벌고자 한다면 과연 어디서 나를 필요로 할까요? 우리 모두 힘냅시다.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7.06.24 20:16:29 *.103.132.133
ㅋㅋㅋ.. 언니 재미있는 칼럼이네요.
난 띄엄 띄엄 세번이나 해봤잖아요.
한번 튕겨져 나오면 원심력 안으로 들어가기 힘들지요.
사부님 말대로 다리가 뿌러지지 않는한 꾸준히 뛰는게 최고죠.
이건 마라톤..
한번 앉아서 그늘에서 쉬었더니.. 궁뎅이가 무거워 진다는거.

그나저나 전에 사부님이 칼럼만 쓰는건 반값이 아니라
전액 기부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나요..아닌가?
착오가 생길듯 하여 알려드립니다아~~
프로필 이미지
정희근
2007.06.24 23:16:27 *.168.232.81
샬롬!
혹시 연구원만 들어오는 공간인데 눈치없이 들어온건 아닌가요?
어쨌든 들어왔으니 저는 오늘밤 10만원 넘게 써 벼렸네요.
일주일내내 거의 한푼도 안 쓴것 같았는데...
경주에 주일밤마다 시민들에게 자선공연하는 동아리가 있어요.
너무 멋진분들인데 다음에 까페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오늘 저녁 정모를 했는데, 식대를 계산했답니다.
형편은 제가 제일 못한것 같았지만, 나이로 보나 등등.
그래도 기분이 꽤 괜찮습니다.
가치있게 사용했다는 생각에 한 일주일 허리띠 졸라매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주간을 허락하십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선한 영향력을 펼침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감에 일조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최정희
2007.06.25 08:43:15 *.114.56.245
절용으로 애인을 실행하셨군요. 멋진 공연 함께 누리고 싶군요. 개설된 카페 주소도 알려주시면 무례일까요? 아무튼 삶을 행복하게 엮어가는 분들이 있어서 저도 덩달아 행복하군요.
프로필 이미지
정희근
2007.06.25 09:11:32 *.124.218.100
샬롬!
http://cafe.daum.net/skyho
하늘호란 동아리입니다. 올해내로 음반도 낼 거구요.
얼마나 열심인지...
경주가 문화관광 도시라곤 하지만 특정한 문화만 존재하는 도시인데, 이들은 온전한 자원봉사랍니다.
그래서 더 멋있고, 감동이 된답니다.
임무완수!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6.27 20:29:16 *.70.72.121
29일 금요일 저녁 7시 강남역 토즈 글쓰기팀 모임입니다. 커뮤니티보세요.
프로필 이미지
최정희
2007.06.28 08:35:01 *.114.56.245
네. 감사합니다. 폰이 없으니 이런 재미도 솔솔하네요. 없음을 즐거움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2 [칼럼 15] 열무김치 속에 담긴 목민심서 [9] 海瀞 오윤 2007.06.25 3433
231 (15) 몸에 대하여 [7] 時田 김도윤 2007.06.25 3164
230 [칼럼 015]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람 [6] 好瀞 민선 2007.06.24 2859
229 [칼럼15]서울입성 [7] 素田최영훈 2007.06.25 2847
» 10만원의 위력을 아시나요? [11] 최정희 2007.06.23 3088
227 (15)우리 신랑 [7] 香仁 이은남 2007.06.23 2954
226 [칼럼15] 우연일까? 운명일까? [9] 余海 송창용 2007.06.21 3624
225 동지, 그 아름다운 동행 [3] 현운 이희석 2007.06.19 3082
224 (14) 백범과 묵자의 딜레마 [6] 박승오 2007.06.24 3083
223 [14] 유서, 스승, 르네상스(꿈 꽃) [9] 써니 2007.06.18 3198
222 [컬럼014] 무엇을 써야 할까? 글쓰기의 소재찾기 [11] 香山 신종윤 2007.06.18 3132
221 또 다른 목민을 위하여 [9] 최정희 2007.06.20 2967
220 [칼럼 14] 김구 선생님과 바톤터치 하기 [2] 海瀞오윤 2007.06.18 3315
219 (14)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하여 [4] 香仁 이은남 2007.06.17 3173
218 [칼럼 014] 상하이의 기억 file [4] 好瀞 민선 2007.06.18 3199
217 (014) 경험에서 건너뛰기 [4] 校瀞 한정화 2007.06.17 2633
216 [컬럼14]호랑이가 겨자씨로 보이던 날 [6] 素田 최영훈 2007.06.16 3275
215 [칼럼14] 구전심수(口傳心授) [8] 余海 송창용 2007.06.16 3583
214 질퍽한 삶이 높은 이상을 품다 [6] 현운 이희석 2007.06.12 3395
213 [컬럼013] 자전거와 일상의 황홀 [9] 香山 신종윤 2007.06.12 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