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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07시 34분 등록
대전 수원, 부산, 대구, 대전, 서울, 유행가 가사 같지만 사실은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도시이름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산에서 대전으로 유학을 왔고, 수원에서 대학을 다녔다. 부산에는 첫 발령지로, 대구는 군복무를 하던 곳이다. 서른 살 이전까지 서울을 제외하고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주요 도시는 다 살아보았다. 아직 서울만은 난공불락의 성처럼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부산이다.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는 나의 고집에 친구들은 모두 가방을 가지고 남포동에서 가서 환영식을 했다. 생맥주집 사방에서 들려오는 부산 특유의 거친 사투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또한 부산은 제 2의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변화가 많은 시기였다. 충청도 특유의 느려터진 것과 우유부단 성격이 많이 고쳐졌다. 나를 바꾸고 변화하는 힘이 생소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에 나오는 파스칼의 말이 지금에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머물러 있을 줄 모른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부산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살다보니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10년의 어느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는 문제가 떠올랐다. 내 유전정보 속에 있는 역마살의 기운인지는 몰라도 나보다 앞서 살아가는 배들의 10년은 나의 미래의 10년과 동일한 상황으로 다가왔고 떠날 때가 되었다는 일종의 계시와도 같은 그 무엇이 있었다. 옮겨야 되겠다. 좀 더 큰 곳에서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에 올라온 지 5년은 일선근무의 칼퇴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 출근을 해서 내일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한곳에 정착하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감각기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개구리가 살고 있는 우물은 갈수록 그 깊이가 깊어져서 하늘을 가리고, 우물벽도 미끄러워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 다시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더 이상 본청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일선부서 보다 본청이 승진이 빠른 관계로 5년 동안 근무를 하고 승진을 못하면 다시 일선부서로 내려가야 했다. 이리 저리 아무리 생각하여도 더 이상 대전에 있을 수가 없었다.

부산에서 대전까지는 줄기차게 올라왔으나, 서울에 가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집 문제부터 아이들의 학교 문제, 내 근무부서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일단 서울에는 파견근무를 하고, 집 문제는 서울에 가서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4일은 서울에서 3일은 대전 집에서 생활하는 주말부부를 시작하였다. 서울에 와서 우연한 기회에 사부님을 만났고, 사무님의 말씀중에서 40대에 해야 할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ㅇ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들어라.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되라.
아내와 남편에게 가장 매력적인 애인이 되라.
밖에서 성공하고 안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가정을 얻는 것 보다 좋은 투자는 없다.

ㅇ 오래 동안 마음에 그리던 집을 사라.
거기서 깨어나고 생각하고 즐기고 잠드는 아름다운 공간을
가족에게 선물하라.

주말부부로 인해서 아름다운 가정이 될 수도 있지만 평소 아내가 내 역할까지 감당해야 하는 고생이 늘 안쓰러웠다. 또 아이들이 아프면 마음에 편하질 않았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것과 마음에 그리던 집을 사는 것이 40대의 커다란 과제요 해결해야할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이제 파견기간도 끝이 나고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다시 본청으로 복귀하여 대전에서 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 나를 다시 깨우쳐 준 것은 정약용 선생님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이름이 죄인의 명부에 적혀 있으므로 너희들에게 우선은 시골집에서 숨어 지내도록 하였다만, 뒷날의 계획은 오직 서울 10리 안에서 거처하는 것이다. 만약 가세가 기울어 도성으로 깊이 들어가 살 수 없다면 모름지기 잠시 근교에 머무르면서 과수를 심고 채소를 가꾸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재산이 좀 넉넉해지기를 기다려 도심의 중앙에 들어가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의 자손들은 반드시 놀란 새가 높이 날고 놀란 짐승이 멀리 도망하듯이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결국 노루나 토끼처럼 되어 버리고 말 뿐이다. (다산문선 76p)


300년 전에도 유배생활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식의 교육환경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정성이 눈물겹다. 나는 어떡할까?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우물속이 개구리요 나 자신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편하게 살면서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고 믿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마당에 나는 하향곡선이 되고 말았다.

서울입성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든다. 갑자기 너무 올라버린 집값도 부담이 되고, 아이들 학교도 옮겨야 되고, 아내도 주변사람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어야 한다. 내 근무부서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선택의 기회가 많다는 것이고 아이들한테도 필요한 순간에 과감한 선택과 버리는 선택을 가르쳐 주고 싶다. 정약용 선생님의 자식들에 대한 희망사항으로 나도 올해에는 서울에서 10리 안에 집을 사서 정착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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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24 00:32:55 *.70.72.121
정말? 가까운 이웃은 좋지만... 서울이 꼭 다 좋은 것은 아닐 텐데...
자녀교육 문제라면 더욱 신중을 기하시길. 너무 중요할 때라서... 가족이 잘 상의해서 최선의 결정이 되면 좋겠네요.

대전에서 택시기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더랬지요. 대전에서 한가로이 널널하게 살다가 서울에 가니 못 살 것 같더라고, 별로 먹고 살 마땅한 게 없어서 택시기사 한다고... 복잡한 도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나 보더라고요.

향산과 잘 상의해 보며 서로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서두르기보다 계획을 잘 세워서 꼼꼼히 대처하시길... 행운의 여신이여 강림하사 소전의 소원에 힘을 돋워 주소서. 달리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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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한정화
2007.06.24 05:53:10 *.72.153.12
종로도서관이 있는 우리 동네 괜찮습니다. 아파트만 아니라면 경제적인 거 많이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한데요. ^^*

순창, 신태인, 전주, 익산, 군산, 광주, 대전, 백령도, 그리고 서울 입성.
... 그리고 미지의 도시.
앞으로도 서울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생기면 또 옮겨갈 예정입니다. 지금은 서울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충분하고, 아직 다음번 살고 싶은 곳이 아직 안 생긴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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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4 14:11:12 *.48.41.28
영훈씨글이 요즘은 술술 읽히면서 한층 재미가 쏠쏠..
그렇군요, 서울입성이라...
순 서울 토박이는 가끔 휙하고 떠나버릴까 생각하는데....확실히 우리같은 사람들은 자식교육 신경쓸 일 없으니 그런건 자유스럽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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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24 17:12:17 *.86.55.231
역마살이라.
저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이를'방랑끼'라고 표현하죠. 저도 서울 까지 왔으니 이제 비행기 타고 나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서울도 좋고 대전도 좋습니다만, 저 경험으로는 '도서관 옆 1km 이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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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6.24 23:08:45 *.152.82.31
머지않은 시간안에 서울에 입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져 버린 느낌도 없잖아있긴 하지만 3년 정도의 계획을 가지고 준비중입니다.
교통이 불편하지 않은 곳,
산과 물이 가까이 있는 곳,
산책과 카페가 숨어 있는 곳,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곳,
가끔 훌쩍 떠나기에 아주 좋은 곳,
굳이 자기집이 아니어도 좋은 곳,
가끔씩 벗을 데려와 밤새 술잔 기울일 수 있는 곳,
아침 일찍 새들 지저귀는 소리와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책으로 하루 종일 뒹굴거려도 무방한 곳이면
어떨까 싶었어요.
내 집이 아니면 어때요?
잠시 살다 가는 삶인데...
우리 아이가 자라면서 나도 서울에 가야할 이유가 조금씩 느는군요.

아홉번 생각하고 다시 고민해서 결정하세요.
내 인생 다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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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6.25 09:32:19 *.99.120.184
나도 고민을 했었지. 교육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더군.
하지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어.
소전도 좋은 결론을 내릴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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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25 16:51:42 *.120.115.38
혼자 살때는 이동하는 것이 늘 설레이기만 했는데,
딸린 식구가 많다보니 이제는 많이 어렵네요.

써니누나, 여해형님,정화씨 저도 널널하고 편안한 곳이 좋지만
아이들 교육을 좀 챙겨주고 난후에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정에 의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는 것이라 고생도 되고,
또 아이들한테도 너무 많은 부담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생각입니다.
제 경험을 본다면 지금 사부님을 만나고 연구원 분들을 만난것이
제가 있던 곳을 과감히 떠서 그런것 같아요.
좀더 많은 기회와 경험이 필요한 것 같구요.

자로형님, 향인누나, 최선생님, 많이 돌아다녀보고
발품을 팔아서 무사히 입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정보를 주심 더욱 감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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