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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7일 15시 10분 등록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만 보고 가기에도 너무 바쁜 세상임에도 가끔씩 문득 서서 고개를 뒤로 돌릴 때가 있을 것이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누군가 부르는 노래가사에서 꾸깃꾸깃 밀어 넣었던 감성이 튀어나와 슬그머니 당혹해 질 때가 있다.
눈물샘의 자극으로 밀려나온 한 방울을 아무도 모르게 다시 집어 넣거나 아님 슬쩍 안경을 만지면서 면구스러움을 모면하곤 한다. 사실 울 때는 잘 우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멀쩡히 노래하면서 깔깔 대는데 혼자 괜히 센치해지면 안 어울린다고들 하니 그럴 땐 속으로 뜨끔하지만 화면을 잠시 세게 노려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나는 노래를 듣거나 혼자 흥얼거리는 것은 좋아하지만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대며 “노래야 나오너라 쿵차라짝짝” 하게 되면 잠깐 패닉 상태로 들어가버리는 타입이다. 옛날엔 어쩌다 새로운 노래를 배우거나 하면 연습하러 가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거의 가지 않게 된 노래방이다.

그래도 그런 순간을 대비해 딱 한 곡 비상대처용으로 거금을 들여 준비한 것 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심수봉의 “사랑 밖엔 난 몰라” 이다. 요 얼마 전 우아한 사람들과의 여행 중 졸지에 고속버스 내에서 급작스런 비상사태가 발생했는데 이 곡으로 겨우 패닉 상황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사태 원인은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신 분이 최근 급격히 취향이 바뀌셨다 하여 발생했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어떤 뜻하지 않은 사건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옛날 같이 근무하던 상사가 젊은 시절 NHK 가수 오디션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해 회식이 있는 날엔 그가 일을 빙자하며 취미생활을 하는지라 본의 아니게 노래방에 자주 갔었다. 그 때 한국 사람들이 “칠갑산”을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다나카상은 그 노래가 딱 그의 취향이었는지 그것을 가르쳐 달라 매번 졸라 할 수 없이 발음만 지도해 주었는데 워낙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느 틈엔가 감정이입까지 해서는 한국사람 보다 더 잘 부르게 되었다.
몇 번인가의 연습 끝에 실전에 선 날,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손님들에게 호감을 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가 노래를 마치고 내려오자 남자들이 우르르 그를 껴안고 어떤 이는 그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일도 노래실력만큼 출중했다.

다나카상이 또 다른 곡을 연습하고 싶어하기에 이번엔 “옥경이”를 가르쳤다. 그 가사 중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하는 부분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있어 좋아진 곡으로 이왕이면 듣고 싶은 노래를 가르쳐 나도 즐기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옥경이”가 한창 한국에서 유행할 때 혼자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며 서바이벌에 매진할 때로, 어쩐지 그 가사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고, 어느 날 한국 손님이 일본에 와서 불러 줬을 때 속이 뜨거워져 혼난 기억이 있는 노래였다.

그 후 옥경이를 잘 부르는 남자에게 어쩐지 진한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고 친근감이 생기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나카상은 그 누구보다도 그 리듬을 잘 소화해 나의 향수를 자극하곤 했다. 그 곡 역시 칠갑산 버금가는 호평을 받았고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가수(?)가 제대로 불러주니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나카상은 현재 중국에서 사업 중으로 지난 번 한국에 왔을 때 보니 이번엔 중국가요에 정통해 있었다.

지나간 날들을 불현듯 떠올리게 하는 데는 노래방처럼 안성맞춤인 곳이 없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노래, 첫 사랑과 헤어지고 음반 하나를 사 들고 온 언니가 방구석에서 내내 틀던 노래, 피아노를 연습한답시고 종일 두들겨대어 허구헌 날 싸우던 동생이 좋아했던 곡, 대학시절 바닷가에서 모닥불 앞에서 기타 치면서 부르던 대학가요제 노래, 드라이브 하면서 내내 틀었던 노래, 가는 청춘이 서글퍼 붙잡고 싶었던 처량한 노래들…

이제 그런 노래를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만 어쩌다 동창회라도 하게 되어 몇 년에 한 번 노래방에라도 가게 되면 누군가가 반드시 구석구석에 잊혀져 있던 감성을 건드리는 곡을 신청하는 데, 지나간 사랑과 같이 듣던 노래가 나오면 미처 준비안 된 마음에 허둥지둥하며 손에 땀도 나지만 곡이 끝나기까지 한 오분 정도 그 때의 추억에 살짝 잠겨보는 맛도 있다.
노래에는 그렇게 사람과의 역사가 담겨있다. 곡 하나하나에 어떤 이의 얼굴이 있고 과거의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날은 집으로 와도 지난 날들이 머리 속에서 몽실몽실 떠오르며 그랬었구나..내가 그렇게 살았었구나 하며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노래의 기억 귀퉁이에 서 있었던 철없던 모습에서부터 의젓했던 기억, 그리고 터닝 포인트의 어느 절실했던 순간도 전부 또렷이 떠오르며 오늘의 나를 조감하는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호기심도 많은 편이지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며 사는 편이다. 그 노래를 왜 좋아했을까? 가사가 좋아서, 멜로디가 멋있어서, 가수가 노래를 잘해서, 누군가가 좋아해서…이유도 많지만 좋아했던 노래는 그 모든 것이 그 때의 나의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잠이 올 무렵이면 어느 덧 마음이 편안해지며 가끔 하는 과거로의 외출도 나쁘진 않다며 알람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본격적인 꿈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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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던 몇몇 가구들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은 몇 번인가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CD들에게는 한번도 그런 마음을 나타낸 적이 없다. TV와 침대에게 소원함을 이해시켰고 책상에게는 근래에 드믄 혹사에 얼떨떨하게 했는데 오디오기기들을 잊고 있었다. 이제 두 달 지났단다. 열 달만 기다려 다오. 긴 인생에서 보자면 아주 찰나에 불과하단다. 너희들의 가치에 걸 맞는 음악을 들고 화려하게 부활하는 그 날까지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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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5.07 08:26:38 *.221.217.143
3기 연구원에서 보강된, 그 주의 필독서에서 컬럼 주제 찾기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필독서를 완전히 소화하고, 컬럼 주제를 확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진솔한 속내를 드러내기 보다는 자칫 딱딱해서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흥취를 주지 못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은남씨의 글은 그 중 생활과 밀착하여, 글쓰기의 맛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듯해요. 역시 체험의 힘이겠지요.
좋은 일이에요. 힘껏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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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07 09:20:04 *.218.204.173
맞아요. 노래에는 '향기'가 있어요. 글자 그대로 냄새 말이에요.
문득 라디오에서 예전에 자주 불렀던 노래가 흘러 나오면, 전 왠지 한 장면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왜 과거의 기억이 굳이 코로부터 시작되는지 며느리도 모를 일이지만.. 그럴 때는 아련한 기억속에 푹 빠져 몇 분동안 정신을 못차리지요. ㅋㅋ 누나 나도 늙었나벼. (떼끼)

그나저나 다나카상은 남자인것 같은데.. 스캔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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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7 09:35:53 *.75.15.205
사랑밖에 난 몰라 아주 좋았지. 약간의 비음이 더 잘 어울리고. 향인은 뭐든 잘하는데 글에서는 늘 아닌 것 마냥 표현을 하지. 어떠쇼? 이번 기회에 노래코치에게 18번 10곡 이상 만드는 것. 노래가 화병(?)치료에 아주 그만이랍니다. ㅋㅋ 깊게 파인 검정 드레스에 은색 높은 하이힐 그리고 비음 절절한 노래 부르면 혹시 아남. 간스꾸가 목매게 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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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07 15:07:18 *.48.42.253
명석님, 글쓰기의 맛에 빠져들다니요..아직도 부담감에 죽겄시유..
사실 저는 좀 더 이성적이고 냉철한 글을 써보고 싶은데 그건 역부족인것 같아 할 수 없이 이렇게 자기 속에서 끌어내오고 있지요.이러다 저라는 사람 전부 들통나게 생겼네요.ㅎㅎ

옹박..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거래이. 다친다.ㅋㅋ
써니..나 요즘 바쁘거덩, 목매는 사람 나타나도 휘곤..히히 여기다 연애까지 하게 되면........................(것두 열심히 해야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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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07 22:24:11 *.142.243.106
저랑 반대시네요.
전 건조하고 차가운 글에서 확 벗어나보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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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08 14:15:00 *.72.153.12
저도 호정씨랑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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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08 22:31:20 *.48.42.253
정화씨 글은 전혀 말랑말랑에 감수성 가득인데...흠
호정씨 글은 어떤 건 말랑, 어떤 건 말랑이 좀 마른 것같은..
하하 그래도 다 좋아요. 진심이 느껴지거든요..어쨌거나 우린 연습중이니까 다들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서로 바래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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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5.10 15:11:54 *.92.200.65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지친 몸이 안버텨줘서 잠시 가다듬을까 해서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읽었습니다. 왜 써야하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은남연구원님이 떠올랐습니다. 뵌 적이 없지만 글을 통해 연구원님의 내면을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글을 잘 쓰기보다 좋은 사람,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글이 마음에 새겨지더군요.

연구원님의 글은 언제나 마음의 고향같이 느껴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아! 그리고 여름에, 정화 연구원님과 함께 잘 버티시라고 삼계탕 한번 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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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10 15:52:04 *.227.22.57
향인누나~ 한동안 '칠갑산'을 열심히 불렀던 때가 있었는데, 담에 노래방 가면 한번 해볼까요? ㅎㅎㅎ 별로 잘하는 솜씨는 아니지만 열심히는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인애님~ 연구원이 되기 전에 '글쓰기의 공중부양' 읽으면서는 '단어 채집'의 의미가 뿌옇게 와닿았는데, 막상 연구원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이제서야 가슴을 치네요. '좋은 사람,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 저도 새겨야겠습니다.

향인누나~ 좋겠어요. 삼계탕도 먹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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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12 05:48:50 *.48.43.83
인애님, 삼계탕 고마워요. 급한대로 오늘 먹구 담에 뵈면 또 먹지요.
고맙습니다.

종윤님, 어 굉장한 실력일 것 같은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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