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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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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7일 23시 15분 등록
‘로스트로포비치’에 부치는 글

우리 시대의 최고의 첼리스트이며 동시에 빼어난 지휘자이자 스승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비치는 지난 4월27일 그의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갔다. 우리의 아름다운 동화작가 정채봉님이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갔다면 로스트로비치는 그의 아버지자 스승인 레오폴드 로스트로비치에게 첼로 레슨을 받으러 떠나신게 틀림없다. 경이적인 천재, 첼로주법에 완전히 통달한 빛나는 테크닉의 소유자라는 작곡가 드미트리히 쇼스타고비치가 보내는 최고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그의 한없는 겸손이 떠남을 재촉했음이다..

첼로 음악에 있어서 20세기 전반에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있었다면 20세기 후반은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비치(1927-2007)의 시대였다. 두 거장은 예술과 인간적인 가치 사이에 뗄 수 없는 친화력을 음의 색채와 운률로 나타내었다. 나아가서 그들은 음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끊없이 자유를 옹호한 시대의 산 증인이었다. 카잘스가 조국 스페인이 내란에 이어 프랑코 독재정권에 들어가자 저항의 표시로 피레네 산맥 작은 마을에 은거하며 모든 연주활동을 중단했다면 로스트로포비치는 구소련 정권에 저항한 솔제니친을 옹호하다 정부의 핍팍으로 프랑스로 망명의 길에 오른다.

카잘스는 나에게 있어서 동시대인이 였다기 보다 음악사에 있어서 커다란 점이었다. 그의 음악적 깊이에 매료되었고 그가 연주한 수많은 첼로곡에 마음 빼앗기는 감상인이였다.
그러나 로스트로비치는 달랐다. 그는 나와의 동시대인이요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며 21세기를 함께 열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으로 시대와 영혼을 노래했고 나와 더불어 우리는 그의 음악에 마음을 열고 몸으로 화답했다. 우리가 분단의 아픔을 가슴으로 감싸안고 역사 속에서 부딪칠 때 그는 러시아 현대사를 몸으로 품고, 평생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또한 그는 그의 열정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우리와 함께 호흡한 대가였다.
로스트로비치의 떠남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커다란 회오리였다. 마음은 심연으로 가라앉고 그를 향한 그리움 같은 것으로 일주일 가량을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내 삶의 일부분을 뚝 떼어내어 그에게 선뜻 건네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가 연주한 바하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들으면서 나락으로 치닫는 나의 마음에 감히 위안이라는 생각을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뒤흔들어 놓을까? 가족을 배반하라만큼 강렬했던 사랑도 이러지는 아니했다. 그와의 관계 때문도 아니다. 1994년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당시 나는 그의 연주회에 가지도 못했다. 단지 선율만으로 그를 만났을 뿐이다.
무엇일까? 나를 이렇게 뒤흔드는 그 힘이 무엇이라 말인가?

로르스트로포비치와 시대를 같이한 E.H.Carr는 본인을 저항적 지식인(intellectual dissdent)이라고 했다. 동시대인들이 가지는 시대적 절망과 비관으로의 탈출을 돕기 위함이요, 미래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애정의 표시다. 그가 혼신의 힘으로 History of Soviet Russia를 집필하고 있을 때, 로스트로비치는 구소련 체제로부터 핍박 받고 조국을 떠났다. 그는 음으로서 억압에 저항함과 동시에 인간에게 위안과 안식,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초월의 힘을 제공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그는 과거의 역사속에 있는 바하를 현재에 융화시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통한 희망적 미래를 연주했다. 그가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아래서 연주한 바하 속에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녹아 있었다고 감히 말한다.

E.H.Carr와 로스트로비치는 역사속에서 커다란 점이다. 이들의 점과 점을 이어나가면 커다란 무늬가 생긴다. 시대가 제공한 모자이크다.

[82]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역사적 기록에 남고, 구소련의 붕괴가 또한 역사적 기록에 남는 것처럼 로스트로비치의 음악적 업적은 음악 역사에 남는다. Carr이 저항적 지식인으로 남기를 바랬듯이 로스트로비치 그는 실천하는 지식인을 넘어선 모든 시대인의 영혼에 점점히 박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반짝이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IP *.86.5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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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8 10:09:37 *.249.167.156
최선생님은 음악을 좋아하시는군요.. 첼로는 저도 좋아하는 악기인데, 파블로 카잘스는 알아도 로스트로포비치는 모르는 무지함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꼭 찾아 들어보겠습니다. 음악사의 반짝이는 모자이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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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08 14:11:28 *.114.56.245
역사의 현장에서 온몸을 음(音)의 옷으로 세상을 품고 살다간 로스트로비치와 아울러 열린음의 세계 최전선에 섰던 우리의 작고가 윤이상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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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23:52:50 *.70.72.121
우제언니를 발견하고 같이 있게 된 기쁨이 아마도 연구원생활하면서 가장 큰 위안과 덕이 될 것 같아요. 날마다 빠져드네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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