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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20시 24분 등록
E.H.Carr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면 역사에 대한 많은 이론과 논리를 접하게 된다. 이는 역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 목적과의 대화라고 하였다. 또한 역사가를 연구하게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가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한다고 하며, 역사가의 역할을 중요시 하였다.

지나간 역사를 다시 현재에 되살리는 역사가의 중요한 임무를 생각해보면서 두 명의 역사학자가 떠올랐다. 한사람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우리의 상고사를 왜곡하여 일본의 역사적 우월성을 살리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폄하한 역사학자로 해방 후에도 문교부 장관에 대학교수로 잘 나간 이병도 선생이고, 다른 한명은 역사가와 법학을 전공하다가 잘못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80이 되어서 새롭게 역사로 전공을 바꾼 최태영 옹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친한 친구이다.

두 역사학자를 좀더 살펴보자. 이병도 선생은 1896년 경기 용인에서 태어났다. 1910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무미건조한 학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3년 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였다. 졸업 후 다시 귀국하여 교편을 잡고 생활하다가, 3.1운동이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책의 목적으로 세워진 조선사편수회의 직원으로 채용된다. 조선사편수회의 활동을 하면서 이병도는 일본인 스승의 지시에따라 일본의 식민사관을 정립에 필요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였다. 해방후에 서울대 교수, 국사편찬위원, 송산학회 이사장등을 역임하였고, 죽기 3년전인 1986년 10월9일에 자신의 단군에 대한 연구가 잘못되었고, 역대왕조의 단군제사 일제때 끊겼다는 장문의 기고문을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였다.

최태영 옹은 1900년에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서, 와세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보성전문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해방 후 서울대 교수 2005년 105세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는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과, 현행어음·수표법, 한국상고사 등이 있다. 최태영 옹은 법학을 전공하다가 80세가 되서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상고사를 연구하여 1989년에 이병도 선생과 공저로 발표하게 된다. 조선상고사의 서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한국 땅에서 단군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증사학을 내세워 단군을 가상인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 때부터이지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이지만 이병도 박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박사는 말년에 건강이 나빴는데, 어느 날 병실에 찾아갔더니 죽기 전에 옳은 소리를 하겠다며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했어요. 수백년전 기록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역사기록이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판소리할 때도 그 긴 내용을 한자도 바꾸지 않고 노래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역사기록은 더욱 정확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두 사람의 역사가를 보면서 역사가로서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병도 선생은 많은 역사적 사료와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조선 사람이 아닌 일본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았으며,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부합되도록 역사를 왜곡하였다. 반면 최태영 옹은 그 시대에 적합한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바른 역사를 정립하였다. Carrr가 말한대로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다고 하였으며,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병도 선생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본인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다가 죽을 때가 되서야 역사의 무서움 앞에 참회라는 얄팍한 글로 변명하였다. 이런 사람을 과연 진정한 역사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욱 더 기가 막힌 것은 스승 스스로 본인이 쓴 역사가 잘못된 역사이고 바로 잡아할 역사라고 천명했음에도 그 스승을 망언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역사를 전공했다는 그 제자들이다. 그들도 역사가가 분명할지언데, 어떤 역사학자라고 불러주어야 할까?

역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체로키의 한 추장이 이런 말을 하였다. “네가 지나간 일을 모른다면 네게는 앞으로의 일도 없으며 네 조상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면 네 부족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도 모르게 된다.”

한사람의 잘못된 역사가에 의하여 유린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는 그날을 기대하여 본다.
IP *.99.2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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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08 14:28:31 *.114.56.245
' 역사가란 자기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라는 Carr의 이야기를 자기 중심적 해석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겠지요. 옛어른들깨서 말씀하시길 '말이면 다 말이고 글이면 다 글인줄 아느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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