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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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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0일 22시 29분 등록

제목 : 인사동 외팔이.

 

인사동에서 그녀는 유명 인사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는 그들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불편한 몸으로도 하루의 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다리가 하나인 그녀.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녀의 다리와 마음의 상처를 깊게 했었다. 추운 겨울 버려져 구석진 길에서 아픔과 싸웠던 시간은 얼마나 춥고 아팠을까! 그녀는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가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이다. 아픈 그녀를 거둬 큰 수술을 치루고 돌보기 시작한 주인은 내가 차를 자주 마시거나 구입하는 가는 곳이다. 아무리 인사동에 차를 파는 곳이 많아도 나는 그 집에만 간다. 그 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버려진 개를 10년 이상 거둬준 주인의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좋은 차도 있지만 마음 따뜻한 주인과 가을이가 있다. 가을이는 다리 하나가 부족해도 아침부터 오후까지 동네 가게마다 인사다니러 한 바퀴 돌고 남은 족발도 얻어먹고 실컷 놀고 돌아온다. 문을 열어 달라고 할 때 다른 개들은 한쪽 발로 문을 긁는다. 하지만 가을이는 머리로 문을 두드린다. 자기가 왔다고 몸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면 와 있는 손님들에게 인사하고는 테이블 밑에 있는 차로 얻어 먹은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가신다. 가을이는 세발로 중심을 잡고 걸어다녀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마실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 맛난 족발 맛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른쪽 다리가 하나 없는 가을이를 보면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 가쁘게 드럼을 두들겨야만 했던 드러머 릭 앨런이 떠오른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 헤비메탈의 밴드 데프레파드의 ‘릭 앨런’은 왼쪽 팔이 없는 외팔 드러머였다. 장애를 극복하고 4년 만에 재기 음반을 발표했을 때 그전의 음악과 전혀 차이점이 없었다고 한다. 릭은 한 팔로 자신이 좋아 하는 드럼을 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릭은 “어려움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알기 힘듭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면서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비록 동물이지만 가을이 역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가을이는 웰빙을 고집하는 뚝심도 있었다. 물은 안마시고 꼭 차만 마신다. 가을이는 10년 째 차를 즐기고 있는 수련생이다. 이제 차의 질도 알아 좋은 차만 마시고 품질이 떨어지는 차는 안 마신다고 했다. 차 공부를 시작해 이제 차에 대해 알아가는 나는 가을이에게 싸부!’라 말하고 싶었다. 자기를 길러준 공덕을 부처에게 돌린다는 가을이는 목에서 염주를 빼면 목을 들이밀며 얼른 다시 껴달라고 하며 활짝 웃는다. 가을이의 밝은 미소를 보자 ‘오체불만족’ 저자인 오토다께 히로타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도 어떻게 살아가냐 하는 문제는 인간이나 동물의 세계나 다름이 없었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보다 잃어버린 것에 비중을 두는 사람이나 동물은 다시 살아볼 힘을 잃는다. 그러나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 들이다.

 

열 살이 훌쩍 넘은 가을이는 이제 사람으로 치면 노인이다. 털도 거칠어 윤기는 찾아볼 수 없고, 이도 듬성듬성 빠져있다. 그래서 가을이에게 갈 때는 종합 영양제를 가지고 간다. 말캉한 이 영양제를 우리 집 멍이들은 아이들이 새콤달콤 카라멜을 맛나게 먹듯 주자마자 먹어치운다. 그런데 가을이는 먹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현명한 어르신네들이 영양제나 녹용을 거부하시며 단아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과 흡사했다. 영양제 대신 차를 마신다. 정말 저들에게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들에게도 생각이 있다고……. 가을이를 쳐다보고 있자니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슬픈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오는 걸요. 죽어가는 것을 보기 힘들어 하지도 말고, 없으면 어떻게 사냐고 오래 살으라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도 나는 힘든 일도 겪었지만 잘 넘기고 즐겁게 사랑받으며 살았는걸요.’

 

갑자가 개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가 주인들에게 바라는 십계명을 적어 보았다.

 

1. 저희 수명은 10-1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어떤 시간이라도 당신과 떨어져 있기에는 너무나 짧아요. 저를 키우면서 남에게 주지 말고 10년만이라도 사랑하며 살고 싶어요.

2.제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3. 주인만 바라보고 따라다닌다고 귀찮아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는 일이나 취미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저희들에게는 당신 밖에 없어요.

4.저를 믿어 주세요. 당신을 위해 충성을 다할 거예요.

5.가끔은 저에게도 말을 걸어 주세요. 제가 당신의 말뜻은 이해하지 못한 다해도, 제게 말을 건네는 당신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까요.

6.제게는 당신을 쉽게 상처 입힐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지만, 해치지 않을 거예요. 상처가 나을 때까지 너무 아프니까요. 그러니 저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7. 제가 늙어도 돌보아 주세요. 당신과 함께 나이든 것입니다.

8.제 행동을 보고 고집이 세다 내지는 말을 안 듣는다 라고 하기 전에 왜 그랬을까를 먼저 생각해 주세요. 무엇을 잘못 먹은 건 아닌지, 너무 오래 혼자 둔 건 아닌지, 나이가 들어 약해진 건 아닌지 말이에요.

9 .많이 만져주세요. 당신의 손길이 너무나 따뜻하고 행복합니다.

10. 제게 죽음이 다가올 때, 제 곁에서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그저 잊지만 말아주세요. 제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쓰다 보니 동물들이 하는 말들을 내 아이가 한 말이라 적용하니 부모로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십계명이 되었다. 그리고 아내가 하는 말로 읽으니 남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한 장의 편지 같다. 이처럼 동물이나 사람이나 사랑받으며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에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한 때는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미워했고, 마음 속 깊이 동물을 학대한만큼 그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는 분노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에게 ‘다름’ 을 인정하는 시간이 왔다. 나와 다르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삶에 문제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척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내가 얼마나 성숙하지 못 했는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주어지고 나서야 나는 내 감정의 표현에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못 하고는 그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사람을 대하는 폭이 넓어지고 경계의 수위가 낮아졌다.

 

본인의 모습이 다른 개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밝게 살아가는 가을이에게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사람과 모습이 다르다고 숨거나 기죽을 필요가 없다. 외모가 뛰어난 이들보다 못 하다고 비교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살라는 교훈을 주는 외팔이 가을이에게 오늘도 나는 힘을 얻는다.

 가을이.jpg  그녀의 오른 다리 대신 내 품으로 지탱해주었다.

IP *.219.10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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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20 22:33:27 *.34.224.87
진철이는 개같은 사랑.
은주는 인사동 외팔이 가을이까지..
너의 강아지 사랑이 전주까지 갔나보구나..
개모(개들의 대모) 은주!  인정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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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32:39 *.219.109.113
개모. 쪼아^^
앞으로 글쓴이 개모 라고 쓸까?
뭐든 인정 받으니까 뿌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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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6.21 06:16:42 *.123.110.13
가을이와 외손 드러머의 비유는 참신하네요. 개 10계명을 보니, 아예 이참에 견공들의 대변인으로 활동하시는 것은 어떠실지. 책을 쓰실때도, 그들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쓰시는 것 어떠세요? 많은 애견인들의 강력한 후원을 받을 듯합니다. 

글이 전에 비해서, 술술 잘읽혀요. 연구원 활동에 안착하신것 같아요. 혹은 역시 개이야기가 누님의 전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누님 덕분에 강아지를 보는 눈이 더 따듯해지고 있어요. 아, 인사동 그 차집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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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6.22 16:22:36 *.1.93.86
내가 물어보려다가... 분명히 나말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또 있을거다...
그럼, 누가 묻게 될까...음...인건이? 그래 인건이가 물어보겠다. 싶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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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33:56 *.219.109.113
귀 요기다 대봐.
거기가 어디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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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0:51:18 *.106.7.10
옛날에는 한번도 개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에겐 너무나도 먼 '객체'일 뿐이었다.
사랑할 기회도 없었지만, 학대할 기회도 없었을 뿐,
나와는 너무나 상관없는, 내 맘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런 객체일 뿐이었다.

계속되는 강아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그들도 생명이구나. 살아 숨쉬며 느끼고 아프고 죽어가는 생명이구나....
내가 그들을 사랑으로 안게 될 날이 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평생 그런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과거에 유난떤다고 생각했던,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들임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그것이 나의 작은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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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35:23 *.219.109.113
기쁘다. 나로인해 작은 변화의 바람이 일었으니 말야.
앞으로 태풍같이 몰아치는 사람들의 변화를 위해  글을 써야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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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1 12:18:05 *.145.204.112
" 영양제 대신 차를 마신다. 정말 저들에게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대신 이야기 해주고 싶다. 그들에게도 생각이 있다고…… "이 부분은 은주씨다운 표현이네요
그리고 개가 주인에게 바라는 십계명은 은주씨말대로 사람끼리의 소통을 할수있는 언어로 다시 볼수 있겠군요
처음쓰셨던 강아지글에 비해  글발이 많이 차분해진 듯 합니다.
감아지의 말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글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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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38:13 *.219.109.113
강아지의 말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글.
아 정말로 그런 글이 방빵 터져나와  핸드백 속에 하나 씩 자리잡아 지하철에서 꺼내 읽으며
가슴이 따뜻해져 미소 짓고 있는 독자들을 볼 수 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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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06.21 13:46:52 *.53.82.120
엄마가 서영이만 예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구나?

별 뜻없이 건넨 한마디에 그렁그렁 맻힌 큰 아이의 눈물에 깜짝 놀란 주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뭘 알겠어? 했던 것이 실수였나봅니다.

언니의 글을 읽으며 다시한번 오만했던 나를 돌아봅니다.
나만 느낄 줄 아는 게 아니라는 거..
왜 자꾸 잊는 걸까요?

언니의 십계명 크게 출력해서 자꾸만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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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42:39 *.219.109.113
모든 대상이 알아차림 으로 '사랑' 을 느끼는 것 같아.
아이들은 더더더욱이지.
미옥이의 역활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겠지?
눈물 맺힌 아이의 눈망울이 눈에 어른거려 마음이 찡~ 하네.
개의 세계에서도 두 마리를 키우면 반드시 첫 번째 키우던 개부터 먹이를 주어야 하고
만져줄 때도 꼭 먼저 만져 주어야 서열이 잡혀 싸우지 않는다.
아이도 만찬가지야.
항상 사랑은 똑 같이 주되 ,첫 아이에게 먼저 사랑을 주어야 자식의 둘을 다
훌륭하게 키울 수 있고 집안이 제대로 굴러간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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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6.21 19:12:13 *.236.3.241
이야기가 진화하여 Dog 시리즈 2.0버전이 된 느낌 ㅎㅎㅎ
야그가 주는 재미에 이은주 본연의 진중한 메시지가 더해진 합체 로봇입니다.
 
가냘픈 몸매의 유끼도 함께 품어 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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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6.22 00:00:21 *.34.224.87
상현, 너무 비굴모드인 것 아냐?
우리 은주를 너무 무서워하지 말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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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44:13 *.219.109.113
갸날픈 몸매의 유끼를 품어 달라고?
너의 어깨를 보니 품을 수 가 없어. 사이즈를 좀 줄여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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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6.22 06:43:26 *.186.57.59
다시 곱씹어봐도... 인사동 외팔이가 인사동 세발이보다는 더 인간적이다.
발 하나 빈 자리를 가을이는 머리써서 채우는군요. 그리고, 외팔이 드러머이야기...
마지막 입가심으로 올린 사진과 글, 가슴으로 그 빈 자리를 지탱하고 있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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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6.22 11:46:18 *.219.109.113
그렇지. 개나 사람이나 사람을 잘 만나야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거 같아.
진철이는 어디가 부족한거야?
우리 유끼가 채워줄께. 뻥 뚫린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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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ads
2010.06.23 02:33:29 *.141.9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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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연주
2010.06.24 14:44:49 *.203.200.146
가을이를 보러 인사동 한번 떠야겠어요~
개들이 바라는 십계명...그런 말을 제게 했었군요 그녀석들이
예전에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는데...전 그녀석들을 제대로 만져본적이 없어요. 엄마랑 동생들은 녀석들에게 참 잘해주었는데...
전 왠지 동물과 사람이라는 경계를 확실하게 그었던 것같아요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서로 상관없는 존재.
그런데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생명체인 것을 우주안에서 하나인 것을 제가 깨닫지 못했나봅니다.
모든 생명체에 거스름없이 다가갈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키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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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사랑
2010.07.09 16:17:32 *.74.8.156
예전 직장에서 유기견 센터를 여는 것이 꿈인 21살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출근해서,  전날밤과 그날 오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어떤 개가 산책하는 자신을 자꾸 졸졸 따라와서 경찰에 보호를 요청했는데
파출소에 있어야 할 그 개가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서 아침까지 데리고 있다가
다시 파출소에 주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정상 그녀석을 키울 수 없었거든요. 이럴 때 마땅히 보호를 요청할 곳이 없어서
더욱 안타까워하더군요. 제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서요)
그 개도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나봐요.
그 일로 그녀는 어서 빨리 돈 벌어서 유기견들을 마음껏 돌볼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겠다고 다짐하더군요^^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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