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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9일 17시 29분 등록
독서경영

오래전 일이다. 내가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어디선가 뭘 듣고 왔는지 독서경영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사장님은 매주 도서 1권에 대한 요약과 감상문을 전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본인이 감명깊게 읽었던 책들을 구매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고, 직원들이 추천한 책들을 구매해서 함께 보기도 했다. 나쁘지 않았다. 좋은 시도였고,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한 두달쯤 가더니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전히 독서경영을 중요시하고 기업의 경영에 활용하고 있는 경영자들이 많다. 전직원에게 매월 필독서를 읽고 독후감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하기도 하고, 독서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좋은 책을 통해 직원들과 공감대를 유지하고, 동시에 자기계발까지 잡겠다는 시도는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독서경영에 대한 신념과 소신도 없는 경영자들이 남들이 좋다고 하니 모방하며 설쳐대다가 결국 흐지부지한다는 것에 있다(사장님, 죄송합니다). 일단 경영자의 의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독서경영은 오래가기 어렵다. 혹시나 안타깝게도 사장님이 끈기가 있는 분이여서 공감없는 독서경영이 오래 지속되면 서로가 피곤해진다. 안 하니만 못 한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독서경영을 조직내부의 커뮤니케이션과 공감대 형성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한가지 독서경영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경영자들이 독서경영에 있어 제시하는 필독서들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직원들이 회사의 비전을 공감해주고 따라와주기를 바라는 기대, 더 열심히 자기 책임을 다함으로써 상생하자는 의도, 개인의 발전을 통해 회사의 성과를 유도하려는 전략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의도가 좋아도, 조직의 말단까지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경영자가 제시하는 책을 읽고 그 의도대로 개선되는 직원도 있지만, 일말의 공감도 못하는 직원도 있기 마련이다. 독자 역시 모두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아웃풋은 천차만별이다. 경영자는 본인이 그 책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직원들이 똑같이 느끼리라고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공명은 저자가 책을 쓰면서 의도한 바를 독자가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독서 경영이 효과적이려면 경영진이나 상부에서만 필독서, 권장도서를 하부로 내려주는 방식을 택해서는 안된다. 하부 직원들도 경영자가 읽었으면, 또는 동료 직원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서 곰삵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그릇된 풍토에 여전히 잠겨 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얘기해보자고 하지만, 실제 원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경영자는 본인이 직원들에게 원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만, 말단 직원은 경영자나 상급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당당히 표현하기 쉽지 않다. 또한 그것은 아랫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받아들이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경영진이나 상급자, 관리자들에게 권하는 권장도서에는 그들의 바램을 담을 수 있다. 조직문화가 딱딱하지 않고 수직적이라기보다는 수평적이라면, 타겟 독자를 명시하는 것이 좋다.  책을 고른 이유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사무실 자리 배치나 구조에 대해 불만이 있어 개선을 바라는 개발자는 톰 디마르코의 <피플웨어>를 권장도서로 정하면서, 사무실 구조에 대한 책의 내용이 관리자나 경영진이 참조할 만하다는 코멘트를 남길 수 있다. 팀원을 모두 똑같은 레고블록처럼 운용하는 관리자에게는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과 같이 개개인의 특성을 업무에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 팀원들이 관리자에게 권장하는 책이  될 수 있다.

좋은 책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더 정확히는 사람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이전과 다른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결국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 역시 독서경영으로 변할수 있고 개선될 수 있다. 독서경영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직접적인 의사소통보다 더 나을수도 있다. 평범한 개인으로서 직원은 조직에서의 위치와 표현 능력상 자신이 원하는 것와 그것에 대한 배경, 그리고 기대효과까지 모두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출중한 의사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표현하고 요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좋은 책은 타당한 논리의 전개, 믿을 수 있는 배경과 이유, 감성과 머리를 모두 잡아끄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직설적인 요구와 조언보다는 변화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훨씬 더 훌륭한 도구가 바로 책이다.

독서경영을 꾸준히 실천하고, 서로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 조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두가 한 방향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 경영은 수단일 뿐이다. 책읽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거나 난독증이 있는 사람에게 독서를 강요할 수는 없다. 어떤 다른 방법론과 마찬가지로 서로가 바라는 것들을 조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느낀 것과 타인이 느낀 것은 전혀 다를수 있다. 때론 아예 반대의 해석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서로의 차이를 깨닫고 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조직문화가 중요하다.

IP *.70.2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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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 05:56:32 *.215.153.2

책 읽고 글쓰기를 막 시작한 초보인 저에게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아울러, "성숙한 조직문화" 그리고 "안전한 직장문화"에 많은 CEO 분들이 생각하고 투자하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점점 그렇게 변화해 나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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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13:37:57 *.46.128.249

타겟독자를 명시하는 것 좋은 방법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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