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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0일 18시 51분 등록

상처는 자기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나의 표현이 상대에게는 오해가 될 수 있다.



상호가 손을 들고 말했다.

 

진수가 저에게 뻑큐라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욕 했어요

 

둘을 나오라고 했다. 아이들을 배심원으로 설정하고 상황설명을 부탁했다.

 

진수: 제가 그냥 고개 돌리면서 혀를 내둘렀어요.

상호: 저는 진수에게 사랑의 표시인 하트를 날렸어요.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재네들 게이 상황극 하는거냐?” 라고 말했다.

진수: 아니예요. 상호가 저에게 가운데 손가락으로 뻑큐를 날렸어요.

 

이에 대해 앉아있는 아이들의 의견을 묻자 몇 명이 대답했다.

 

상호가 진수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일으켰으므로 상호가 진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호가 자주 뻑큐를 날리곤 했으니, 상호 잘못이라고 생각 합니다

진수가 다수를 대상으로 혀를 내둘러, 원인 제공했으므로 진수가 잘못입니다.”

수업이 지연되고 있으니. 둘이 화해하고 들여보냅시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의견이다.

 

Oh: 상호야! 진수야!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나를 묻는 게 아니라. 이렇게 친구들 앞에 서 너희 맘을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좀 풀어졌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 니?

 

라고 물었더니 둘 다 미소를 지으면서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네가 잘못했다 네가 잘했다를 판단하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필요하다. 그들은 잠깐 동안 말싸움하고 돌아서면 다시 친구할 수 있는 스폰지 같은 마음이다. 판단하지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다시 재현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상황을 재연하면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상대의 말을 듣고 그의 입장에서도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규경 작가가 쓴 마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동이 아빠는 마음이 두부처럼 부드럽다. 그래서 누가 그 마음에 못을 박아도 저절로 금방 빠져버린다. 순이 아빠는 마음이 나무처럼 딱딱하다. 그래서 누가 그 마음에 못을 박으면 쉽게 뽑지 못해 괴로워한다. 늘 마음 아파한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사로잡혀 있으면 순이 아빠처럼 마음이 나무처럼 딱딱하다. 그래서 누군가 그냥 흘러가는 말을 했어도 자신의 마음에 못을 탕탕 박아 상처를 준다. 만약 동이아빠처럼 마음이 두부처럼 부드럽다면 박은 못도 빠진다.

친구나 선생님이 혹은 부모님이 나에게 상처 주는 게 아니다. 다만 그들이 하는 말에 내 마음이 나무처럼 혹은 두부처럼 반응하는 차이다. 내가 열등감에 빠져있는지 혹은 여유로움에 있는지의 차이다.

 

자신이 여유로울 때 친구가 기분 안 좋은 말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기분 나쁘고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과민반응 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상처는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처를 준다. 그리고 상처 받았다고 말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조선시대 사상가 박지원은 세상의 모든 소리는 자신의 마음이 지어낸 소리라고 했다.

 

내 집은 산 속에 있는데,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다. 매년 여름에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시냇물이 사납게 불어 항상 수레와 말이 내달리는 소리가 나고 대포와 북소리가 들려와 마침내 귀가 멍멍할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비슷한 것과 견주면서 이를 듣곤 하였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는 퉁소 소리는 맑은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는 성난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가 앞 다투어 우는 소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고, 일만 개의 축(옛 중국 악기의 하나)이 차례로 울리는 소리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천둥이 날리고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까닭이요,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운치 있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거문고의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어우러지는 소리는 슬픈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문풍지가 바람에 우는 소리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듣는 소리가 모두 다 바름을 얻지 못한 것은 단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펼쳐 놓고서 귀가 소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 <열하일기><강을 건넌 기록>중에서

 

같은 물소리도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로 들린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내 눈과 귀는 마음이 만듭니다. 내 마음이 동이아빠의 두부 같다면 어떤 소리도 부드러울 것이요. 순이 아빠처럼 나무 같다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못을 박는 상처가 될 것이다. 그러니 남이 하는 말에 그다지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상대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그런 말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고 느끼고 힘들 때는 정식으로 요청하면 됩니다.

IP *.7.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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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1 15:29:59 *.103.3.17

마음이 고요하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제 마음은 나무같지 않고 두부같은데 못이 박히기도 전에 두부가 통째로 뭉개져서 큰일입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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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 05:39:19 *.215.153.2

아이들 상황극 이야기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희집 애들끼리의 사소한 다툼에 적용해 볼께요..

그리고, 소개해주신 열하일기 읽으니 법륜스님 즉문즉설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의 마음은 똑같은 생각을 하나 봅니다.


저도 두부 같은 마음인데,,,가끔 나무처럼 반응하고 싶을때가 있습니다만 나무처럼 반응한 뒤에 벌어질 일 들을 생각하고는 두부처럼 살고 있어요. 그런데 불씨님 댓글처럼 두부가 상처가 납니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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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13:36:48 *.46.128.249

두부와 나무에 못을 박아서 아이에게 말해주어야겠어요. 요즘 잘 삐져서. 멋진 비유네요. 그리고 열하일기의 저 구절과 연결되니 멋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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