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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9일 16시 39분 등록

이번 칼럼의 바탕이 되는 오학론이의 공부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자꾸 막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 동안 저의 공부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른이 되며 여러 시험들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는 했지만, 그 공부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깊은 공부는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에 비추어 그만큼 평생동안 들이 판 공부를 한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깊이 반성했습니다.


오학론이의 단계마다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학의 단계에서 심문으로 넘어갈 때,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다양한 질문과 의심들이 꼭 모두 심문해보아야 할 질문인가? 만약 아니라면 질문간의 중요도를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질문들이 앞으로의 나에게도 중요할까? 심문과 신사를 통해 명변할 수 있는 질문들도 있겠지만, 명변을 했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 쟁점이 나타나는 질문들의 답은 한 권의 책에서 찾지 못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인생에서 오학론이 공부법을 통해 읽을 책들을 골라보는 주제를 쓰다가 점점 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혼자 고민해보아도 답이 보이질 않아, 관련된 다른 책들을 읽어 도움을 구했습니다. 공부에 관련된 책을 찾던 중, 정민 선생님의 『오직, 독서뿐』을 뒤늦게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다른 학자들의 독서에 대한 생각과 방향을 정리해둔 글입니다. 오학론이가 나올 때와 시대적 배경이 비슷해 공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 조선 시대 선비들처럼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필사를 하고,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외울 정도로 보는 사람을 근처에서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있다하더라도 몇 명 없을 겁니다. 선비들의 독서는 그 내용면에 있어서도 의심하고 따져보아 결국은 자신의 삶에 철저하게 반영하기 위한 독서입니다. 한 마디로 조선의 선비들은 독서의 대가들입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독서에 대한 선비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다산이 다섯 단계로 정리해 놓은 공부법이 독서 프로세스의 큰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고, 이를 각 단계별로 도울 수 있는 세부적인 방법과 비유, 설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다산이 1단계라고 말했던 박학도 제대로 해야 했습니다.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 생각과 마음을 비워 선입견을 없애야 하고, 읽는 글의 성격에 따라 맥락의 파악이 중요한지, 문장별로 따져가며 읽어야 하는지 등의 독서전략을 다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독서 중에 의심과 질문을 놓지 않고 정말 그게 맞는지 틀린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심문) 어느 부분에서 어떤 질문이 떠올랐는지를 따로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산은 엄청난 메모광이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중요한 글이 나오면 종이를 꺼내 옮겨 적는 것을 초서(鈔書)라고 하는데, 이를 갈래별로 모아 엮어 책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만약 동일한 책을 여러 번 읽고, 읽을 때마다 메모를 해두었다면 다음 번에 읽을 때 같은 구절을 읽고도 막혔던 곳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메모와 반복 읽기를 통해 점점 다음 단계에 접근해 가는 것이지요. 여러 갈래로 나중에 질문과 답변을 정리할 수도 있어지니, 기회가 왔을 때 힘껏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신사에 관련해서 양응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독서는 우선 숙독해야 하는데, 그 말이 모두 내 입에서 나온 것같이 해야 하고, 계속해서 정밀하게 따져 보아 그 뜻이 다 내 마음에서 나온 것처럼 해야 한다고 말이지요 또한 깊이 생각하여 깨달아 얻은 뒤에도 의문을 멈추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박학과 심문, 신사가 따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삼단계를 유기적으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명변 단계까지 올라가 판단을 하고 났는데그 판단을 뒤집어야 할 필요성이 생기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지속적인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는 다시 아랫단계부터 시작해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익의 글 중에 명변과 관련된 비유도 있었습니다. 복숭아를 먹을 때 살만 먹고 씨를 먹지 않고, 밤을 먹을 때 씨()만 먹고 겉은 먹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확인하지 않은 부분을 남겨 두면 나중에 복숭아 씨맛과 밤의 씨맛을 비교할 때 정확한 나의 생각을 갖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한 번 먹을 때 모든 부분을 다 확인하고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수준까지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덕무 또한 독행을 강조했습니다. 입만 열면 성현의 말씀을 줄줄 읊지만, 속임수를 쓰고 간사한 사람을 믿음직하다고 말하지는 않지요. 이런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도 많았나 봅니다. 공부의 목적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지, 출세하고 잘난 체하고 남 앞에 으스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한 공부라고 하니 연구원 수업을 할 때가 기억났습니다. 두꺼운 벽돌책을 읽어내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2, 일하고,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모두 책에 투자했던 그 몰입감으로 독서를 계속 이어갔더라면 이번 글을 쓰는 것이 좀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제가 썼던 칼럼과 책 정리를 보니 아, 조선 선비들의 말씀이 생각나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평생 다시 읽을 책들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Again 연구원 컨셉으로 그 때 읽은 책들을 반복해서 읽고, 지금 불멸의 문장들로 다루는 책들도 이번에 글을 위해 읽지 않고 다시 반복해서 읽어야겠습니다. 벌써부터 몇 년간의 독서 계획이 세워졌네요. 즐거운 마음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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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4 06:05:18 *.215.153.2

책을 생각보다 훨씬 못 읽고 있었는데 어니언 선배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더 반성합니다.

여러가지 핑계로 독서를 생각보다 훨씬 못했는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서에 매진해야 할 때인것 같아요.

시간을 잘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독서에 시간을 할애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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