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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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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8일 01시 26분 등록


2020년 교정시설 독서 강사로 선정되었지만 코로나로 전체 워크샵도 없었고 그냥 취소되는 줄 알았어요. 처음 지원할 때부터 8월 말부터 진행한다고 안내되어있었어요. 8월이 되어도 아무 연락이 없어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성인교도소는 모두 취소되었고 소년원은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며 기관에서 연락이 없었냐며 물어보더군요. 없었다고 하니 소년원 담당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했어요. 며칠 후 담당자가 직접 전화가 와서 담당이 바뀌면서 연락이 늦어졌다며 9월부터 매주 한 번 하겠다고 해요. 사실 속으로 취소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 중이었거든요. 12차시 강의안도 작성해야 하는데, 책 선정과 활동은 대략 정해져 있지만 대상도 처음이라 자신이 없었거든요.

 

아들에게 소년원 강의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더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엄마가 많이 힘들 거예요. 그 아이들에게 상처받고 울기도 많이 할거에요.”라고 했어요. 제가 독서 강의를 해도 그 아이들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고도 하더군요. 자기가 소년원 다녀온 아이들을 아는데 소년원 다녀온 것을 훈장처럼 여기고, 소년원에서 안 좋은 걸 배워온다는 거죠. 비행 청소년 한 명과 제주도 걸었던 경험(23각 프로그램) 정도로는 소년원 아이들을 안다고 할 수 없고, 소년원에 가는 아이들은 제주도 같이 걸었던 아이보다 훨씬 힘들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너무 잘해주면 만만하게 여겨 얕잡아 볼 수 있어 기선 제압도 필요하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소년원 퇴원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그 아이들에게 사기도 당하고 심지어 그 아이의 부모도 돈을 빌려 가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어요. 그 분도 너무 힘들었다고 했어요.

 

아직 강의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이야기 덕분에 그래, 내가 너무 기대하면 안 되지. 그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건 맞지만 바로 반응이나 변화가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구나라며 욕심을 내려놓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제주도 걸었을 때도 내가 이렇게 힘들게 같이 걷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데 저 아이는 왜 그걸 모르지? 왜 당연한 것으로 알지?’ 하며 의문이 들고 아이의 태도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생각났어요.

 

구체적인 12차시 수업지도안을 작성하며 어떻게 하면 책을 매개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도록 할 수 있을까. 주입식이나 도덕적 정답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될텐데 싶기도 하고 고민을 하게 되네요. 그러려면 내가 먼저 자기개방을 하고 솔직하게 다가가야 겠지요. 상담 배울 때 너무 섣부르게 초반부터 자기개방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상담자가 너무 많은 개방도 좋지 않다고 했어요. 그 적정선을 대상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결국 직접 대면해서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아무리 준비를 잘 한다고 해도 상호작용이 얼마나 잘 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보니 진행하는 강사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죠.

15명 내외의 남학생들이 참여할 거라고 했어요. 그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른 채 나의 강의가 도움이 될 거라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진심은 통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들어주는 것.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면 좋겠어요.

 

23각 제주도를 걸었던 경험이 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 소년원 독서강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무언가 많이 넣어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앞으로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 준비한 내용들을 하나씩 적어보려고 해요. 저의 성장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거죠. 다음엔 1차시로 준비한 존 버닝햄의 [에드와르도, 세사에서 가장 못된 아이]를 가지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그럼 다음에~~

 

 

IP *.210.13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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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11:47:45 *.70.220.99

쉽지 않은 도전같지만, 또한 많은 것을 얻을수 있는 계기 또한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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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06:57:32 *.120.24.231

지금 갇혀있는 열 다섯명의 아들들과 만나는 12차시의 책 이야기군요. 자기 안의 폭풍과 남다른 경험이 너무나 거세서 다른 이들을 염두에 두기가 힘든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실까요? 저도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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