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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9일 23시 36분 등록

세상의 모든 길은 땅바닥에 새겨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무수한 보행자들은 길 위에 자신의 서명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써놓고 간다

걸으면서 우리는 풍요로운 생각을 가지에 달린 과일처럼 따낸다

걸으면서 얻은 생각은 그래서 무겁지 않고 달다

쓸 때 조차 우리는 손만 가지고 쓰지 않는다

발도 항상 한 몫을 한다

때때로 들판을 건너고 때때로 산을 오르던 발은 손을 빌어 종이 위에 생각을 쏟아낸다.

 

걸음으로써 배낭을 가볍게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자발적 빈곤을 배우고

구불구불 내면을 따라 걷다가 문득 자기로 향한 길을 열게 한다.

신발 한 결레 배낭 하나로 남도의 바다를 돌고, 강물을 따라 굽이굽이 휘어들고

꼿꼿한 산의 등어리를 넘어 간다.

먼저 발로 걷지 않고는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없고

침묵을 횡단하지 않고 신에게 기도할 수 없다.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다비드 드 브루통의 '걷기 예찬'을 읽다 얻은 구절과 생각들을 엮어 적어 두었습니다.

동물은 움직입니다. 그래서 동물입니다. 모두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로 걷습니다. 걷지 못할 때 그 동물은 동물이기를 그만두고 죽게 됩니다.

 

 

마흔 여섯의 나이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배낭매고 2달간 남도를 걷는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나는 매일 25키로 내외를 걸었습니다. 아침에 여관을 나와 저녁에 다른 여관에서 잘 때까지 하루종일 내가 한 일은 걷는 일 뿐이었습니다. 배낭이 어깨를 누르면 경관이 좋은 곳에서 잠시 쉬었고, 이내 다시 걸었습니다. 우체국을 만나면 짧은 엽서와 한두 권의 무거운 책과 입던 옷 몇 개를 싸서 집으로 돌려 보내곤 했습니다. 짐을 덜어내면 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두 달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회사원이었던 20년간의 묵은 때를 홀떡 벗어낼 수 있었습니다. 두 달간의 남도 걷기는 새 인생을 살기 시작한 내가 첫 번 째로 한 가장 멋진 일이었습니다.

 

나는 늘 걷습니다. 산을 걷고 길을 걷고 골목길 안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면 거리마다 다른 삶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골목의 초라한 삶, 큰 거리의 소비적 삶, 산 속의 조용한 삶을 만날 때마다 내 생각의 스펙트럼이 달라집니다. 나는 걷습니다.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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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06:53:56 *.120.24.231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다비드 드 브루통의 '걷기 예찬'


일단 이 두 가지 책 제목을 메모했어요. 잘 읽었어요.^^


글을 읽으며 홍지동 그 골목과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있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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