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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1일 06시 50분 등록

 서문

임산부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책읽기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한 여자와 한 남자도 엄마와 아빠로 탄생한다. 뱃속에서의 40, 그리고 태어나서 만 3년까지가 아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여기에 수정 순간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마흔 넘어 결혼해서 3년 만에 첫아이를 낳았다. 마흔다섯, 분만병원 최고령 초산모였다. 만혼은 난임과 연동되기 마련이어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과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덕분에 기쁨과 감사, 소중함이 남달랐다. 생명은 내가 노력해서 따는 게 아니라 기적이라는 체험을 했다. 임산부 시즌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일 확률이 높았다. 생명을 실어오는 과정에 참예하게 된 경험, 아이가 태어나면 20년간 나에게 주어질 엄마 소임이 귀하게 여겨졌다.

 

입덧보다 빠르게 집 근처 도서관에서 태교검색어로 책을 빌려왔다. 음식 태교, 산책태교, 영화태교, 바느질태교, 책태교, 여행태교, 요가태교 등 수많은 방법이 있더라. 심지어 태아 때부터 지능을 계발하기 위해 영어태교, 수학태교, 자격증 시험태교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태교책 저자들은 한결같이,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참여하면서 두 개의 심장으로 한 몸을 쓰는 시기를 보냈다. 시인은 시를 읽으며 에너지를 얻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임산부는 명화를 가지고 뱃속 아이와 대화하고, 평소 명상을 하던 엄마는 깊은 명상으로 태교하더라. 가만가만 살펴보니 공통점을 눈치채겠다. 태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임산부가 행복한 것이구나! 방법은 취향과 선택의 문제구나! 태교의 방법이 단 한 개뿐이고, 그것이 만약에 바느질이라면, 덜렁거리고 듬성듬성한 성격인 나는 마음에 불이 나서, 바느질감 팽개치고 단군신화 호랭이처럼 뛰쳐나가버렸을 것 같다. 책읽기가 말하자면 내가 선택한, 취향에 맞는 태교법이라고만 하기엔 좀 찔린다. 태교를 빙자한 임산부 시즌 나의 취미와 여가 선용의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끄덕끄덕하겠다.

 

어쩌다보니 한 주에 한 권 정도 읽게 되었다. 만화책, 시집, 그림책, 에세이, 동화, 청소년 판으로 나온 쉬운 버전도 읽고, 인문 고전도 읽었다. 이 책을 집어들고서 서문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겠지만, ‘인문 고전의 무게를 느끼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임산부는 스트레스 받으면 안되는데 아이에게 좋다고인문 고전읽으려 들다가 스트레스 지수 높아질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십자수 수틀 앞의 나처럼. 수학정석 책 앞의 나처럼. 고전은 누구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라는 정의가 있더라. 워워 나도 똑같이 인문 고전에 대한 멀미를 갖고 있었다고 밝힌다. 근데 하필 임신확인서를 받던 그때 진입장벽이 낮았다. 그럴 수 있었던 그때의 나의 상황에 대해 말해 두고 싶다.

 

첫 번째는 임신한 동안 읽은 책들 중 처음으로 읽은 것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이전에 3번 이상 읽은 것을 다시 읽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인문학 책에 뎀빌 기회가 있었다. 서른일곱부터 시작된 중년기 전환의 몸부림이었다. 결혼전, 아직 혼자였을 때 인문 고전을 같이 읽는 모임에 들어갔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은 1년 과정이었다. 일주일에 한 권씩 고전을 읽고, 밑줄 그은 것을 타이핑하고, 그 오래된 책들에 비추어 자기를 들여다보고,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길이 있는 갈림길 공터에 머물며 잠잠히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좋아하는 길은 어디인가 묻는 시기였다. 그때 삶이 나를 멈춰세우고서 진짜 너는 누구야?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어해?’물으며 갈림길 공터에 머물러도 좋다고 한 것은, 함께 머물 스승과 도반이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내가 그때 1년간 읽은 고전 목록은 구본형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여 선정했다. 읽어야할 고전 목록에 중국 칭화대, 미국 시카고대학의 허친스 플랜의 것이 유행한다. 우리집 근처 사립초등학교에서도 한 달에 한 권 분량으로 고전읽기를 하더라. 구본형선생님은 2번 읽기, 3번 읽기를 프로그램화했다. 처음엔 들어는 봤지만 읽어보지 못한책의 이름과 두께에 뒷걸음질하고 기가 죽었다. 못 읽어내는 내가 자주 한심하고, 짜증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이 정한 대로 정한 일정으로 9명의 동료들과 같이 두 번 세 번 읽다보니 알게 되었다. 고전은 그냥 오래된 이야기였다. 세잌스피어 4대 비극, 파우스트, 난중일기, 신화의 힘, 삼국유사, 오디세이아, 열하일기, 파우스트, 그리스 비극작가의 작품은 다 그냥이야기뿐이었다. 신영복선생님의 강의책이 개론서가 되어 소개하는 동양고전들도 다 이야기고, 윌과 에리얼 듀런트가 쓴 양장본 문명에 대한 책의 정체도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마도 어릴 때 아버지가 우리 4형제를 데리고 잠자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매일밤 들려주었기 때문일 거다. 광부였다가 농부가 된 아버지는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로 공식적인 배움을 끝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 일찍 퇴직하고서 한 동네 살던 은사님 서재의 책을 몇 번씩 빌려 읽고 그 선생님과 1:1로 대화를 나누며 청소년기 내내 진짜공부를 하셨다. 나중에 보니 내가 들은 아버지 옛이야기의 출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솝우화와 안델센동화가 아니었다.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모험을 떠났다가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온 이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영웅이었고, 말을 키우다 아버지가 준 증표를 가지고 길을 떠난 고주몽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유사였고, 포도주에 취해 목을 죄던 다리를 느슨하게 한 노인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덜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우리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게 아니라 한 권을 반복해서 여러번 읽은 습성이 있었다.

 

두 번째는 시간이 있었다. 아내 나이 마흔셋부터 시험관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생명을 위해 노력할 시간을 이때뿐이라고 생각했다. 난임휴직을 2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16년 일을 한 후라 안식년이었다. 노는 것이 너무 좋아서 이 아이는 엄마에게 안식년을 주니 태어나기 전부터 효자 효녀임에 분명하다 생각했다. 근데 참으로 세상 일은 모른다. 연구원을 마친 다음 주에 결혼식을 했고, 그 다음주에 사부님이 하늘로 돌아가셨다. 나는 너무나 놀래서 그 해 1년간은 그의 책을 전작주의했다. 다른 것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다. 읽을 수 없으니 그 분의 책을 읽었다. 그러고서 나는 바로 난임휴직에 들어간 셈이다. 2년간 단지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분 없이 진행되는 연구원 과정, 선배들이 선생인 되어 진행하는 수업에 객원으로 가끔 따라다녔다. 이런 연유로 임신중 읽은 인문 고전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필독서 목록과 사부님의 소천 후 박미옥, 정재엽씨에 의해 엮인 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에서 맘가는 대로 집어 읽었다. 애초부터 이 책들은 ‘1년간이 아니라 평생’ 읽을 것이었다. 입학여행 중에 그는 우리를 두 물길이 합쳐지는 정선 아우라지로 데려가 물소리를 배경으로, 울림깊은 저음의 목소리로, 맹자의 불영과불영에 대해 말해주었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흘러가는 내용이었다.

 

임신한 이후에는 유산위험이 높은 고령산모라 복직할 수 없었다. 2달 병가를 냈다가 산전육아휴직을 했다. 마흔넷 가을에 임신을 한 처지니, 아이 낳기 직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자신감을 나는 갖지 못한 셈이다.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연봉과 경력을 포기한 대신 여유와 시간을 벌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임휴직, 병가, 산전육아휴직이 필요했던 어려움 덕분에, 아이가 오기 전 3년 정도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좋은 것을 채우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세 번째는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 당시 암수술을 마치고 항암치료 기간 중에 우리 집에 임시합가를 하고 있던 가족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암환자의 세끼 식사 장만이 내 일이었다. 초기에는 절박유산 진단을 받고 2달 누워있어야했다. 식사준비를 마친 후에는 내 방에 들어와서 누워 있었다. 절박유산이 해제된 16주 이후에도 임산부요가를 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집에 있었다. 딱히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암환자 덕분에 건강한 집밥을 세끼 잘 차려먹었으니 음식태교 절로 되었다. 정진을 계속했으니 명상태교도 한 셈이라고 치련다. 고립되어 혼자 있지 않고 누군가가 계속 옆에 있었으니 외로움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책은 그 주에 내 몸과 생활사에서 끌리는 대로, 그때그때의 내 생황에 따라 선택했다. 예를 들어 임신확인서를 받고서 신기하기만 한데 입덧이 시작되던 임신 초기에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시집이나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갈색혈이 나서 절박유산 진단을 받고 9주부터 16주까지 두 달간 누워지낼 땐 기존 태교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탈무드 동화 같은 전형적인 태교책은, 그토록 어렵게 가진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과 두려움을 전혀 다룰 수 없었다. 다른 소스, 어른의 대처와 위로가 필요했다. 태아에게 좋은 것을 주려면, 태아를 품고 있는 어른인 임산부의 마음을, 어른의 방식으로 듣고 쓰다듬어 주어야했다. 임신은 생활사 밖의 사건이 아니므로 임산부는 모든 것들에 노출되어 있고, 그 사안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나가야 했다. 이때는 갖혀있었던 이들의 책을 읽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듣도록 한다지만, 오히려 전쟁터에서 백성을 지키려는 이순신장군의 충정과, 전쟁터에서도 붓을 갈아 일기를 쓰고 둔전을 일구고 고기를 말리는 성실이, 당장 피를 보고서 쿵쿵거리는 두근댐을 느끼는 나에게 힘을 주었다. 아이를 지켜내려 누워있던 나는 어느새 <난중일기>의 굳건한 장군, 전사가 되어 있었다. 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더 깊고 넓게 닦고,‘강의책을 낸 신영복,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프리다 칼로, 사마천처럼 감옥에 갖혀있거나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 상황에 굴하지 않았던 이들의 책을 병가 기간 2달 동안 읽었다. 나의 경우는 나이와 상황 때문에 좀 강조되긴 했지만, 사실 임신초기는 모든 임산부들이 조심하는 시기다.

 

태반이 안정되자, 지내는 것도 읽는 것도 좀 더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상황이 추천해준 책을 좀 더 가볍게 팔랑팔랑 읽었다. 16주부터 몸이 무거워지기 전 28주까지가 돌아다니기에도 읽기에도 제일 만만한 시절이었다. 입덧 가라앉고, 유산 두려움도 없어지고, 몸이 너무 무거워 저리지도 않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아직은 먼 이야기였고, 열외헤택은 계속되었다. 멀리서 내 친구와 남편 친구가 희안하게도 이틀 간격으로 놀러왔던 주에는 두 친구의 모험기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다. 시어머니 칠순여행을 갔던 제주도에서는 다른 식구들은 차를 렌트해서 구경하러 가고 나는 바다 뷰의 호텔방에서 제주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 씨의 에세이를 읽고, 성게미역국을 혼자 사먹으러 산책 나갔다. 남편은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나는 머무는 여행을 좋아하는 평소 생각대로 였다. 그또한 괜찮았다.

 

내 속의 질문과 호기심이 책을 요구할 때는 냉큼 그 신호등을 따랐다. 아이의 성별이 아들임을 알게 된 주에는 우리 아이는 어떤 남자가 될 건가, 어떻게 아들이 몸마음이 건강한 남자로 살아가는 기초공사를 할 건가 궁금했다.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을 다시 읽었다. 다른 책을 더 많이 읽어두었다면 그걸 보았을텐데, 소장도서가 몇 권 안되는 내 마음 속 책장에 있던 관련 책 중 제일 먼저 튀어나온 걸 집어들었을뿐. 결혼기념일이면 우리부부는 우리 나무라고 이름붙인 윤봉길기념관 앞 쥐똥나무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 우리나무 앞에서 만삭사진 겸 첫 번째 가족사진을 찍을 때, 출산을 하고 나면 결혼은 도대체 어떻게 변해갈 건가, 호르몬의 유통기한 다해가는 듯하고, 콩깍지는 벗겨져 멀쩡해지는 와중인 듯한 사랑은 결혼제도 안에서 어떻게 변해갈 건가 궁금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책을 읽고 싶은데 아는 것이 없어서 추천받았다. 아이의 태동을 느끼며 출산준비를 하면서 맞는 투표일은 벚꽃이 만개한 봄날이었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어떤 선거보다 임팩트 있었다.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까지 눈과 관심, 책임감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그 주에 청소년판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었다. 이 책의 원책은 두꺼운 하드보드 표지의 2권짜리였다. 사놓기만 하고 내가 미리 읽지 않아서, 아령삼아 팔운동을 한다면 모를까, 책중독자라면 모를까, 34주에 초벌 읽기를 들이파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꼼수를 부려 청소년판을 구해 읽었다. 친정엄마 생각이 날 때는, 엄마가 평생 단 한 번 너 이 책 읽어봤냐고 물었던 토지를 집어들었다. 엄마와 책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책. 토지 원본 전집은 생일선물로 받아서 갖고는 있었지만 20권 중 2권째 진도였다. 읽고는 싶은데 새로 그 전집을 시작하려니 숨이 막혀서, 꼼수를 부려 만화 토지를 구해 읽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만족스러웠다. 엄마가 올라오셔서 고속터미널 목욕탕에서 같이 목욕을 하고, 돌솥밥이 나오는 순두부찌개를 마주 앉아 먹었던 주였다. 요가센타에서 남편 대동하고 출산지도를 받은 주에는 산부인과 의사의 출산 관련 책을 읽었다. 출산예정일이 다가오면서는 책으로 육아를 배워야하니 신생아 다루는 육아서를 읽고, 어디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대리 만족을 위한 여행기를 읽었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는, 우리가 작명을 의뢰드린 선생님이 지은 책을 읽었다. 공교롭게도 <주역>이었다. 오매나! 내가 감히 주역을 읽다니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것도 책과 나의 인연이겠지 개평을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가장 대중적인 주역책이었다. 조리원에서 시작한 마지막 책 한 권을 아이 백일까지 3달 간 읽었다. 아이가 태어나니 긴 호흡은 물론 짧은 호흡의 책도 읽기가 힘들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나면 아이 잘 때 나도 같이 자거나 쉬고 싶었다. 이원일체, 무엇보다 모든 관심이 아기에게 가 있어서 아이와 상관없는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초집중의 시간은 거의 돌까지 계속된 듯 하다. 어린이집 안보내고 만 3살까지 가정보육했더니 이후 3년간의 정신분산의 사정은 비슷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건강히 태어났다. ‘나는 절대로 아가가 아니라 5살 형님이라고 거듭 주장하는 개구쟁이가 되었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거나, 집에서 열이 올라 아플 때도 엄마가 옛날 이야기 해줄까그러면 귀를 기울인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임산부였을 때 이야기를 읽어서 그런지는 모른다.

 

아이 다섯 살이 되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할 여유가 생겨 이 책을 쓰고 있다. 임산부로 읽었던 이 책들은 엄마인 나의 에너지 보급원이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한동안은 이런 두껍고 호흡이 긴 책들을 읽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경우에는 맞았다. 또 하나 기록함으로써 나의 역사이면서 아이의 전생이 될 순간순간을 채록해두려는 맘이 있었다. 우리에게 닿은 많은 분들의 고마운 마음씀과 친절도 기억하고자 했다. 나는 아이 하나를 낳아 기르기 위해 난임휴직, 산전육아휴직, 산후육아휴직 등 많은 휴직의 혜택을 입었다. 1년반의 난임휴직과 1년의 산전,산후 육아휴직은 유급휴직이었고, 아이를 만 3살까지 엄마가 기르기 위해서, 연달아 냈던 2년의 육아휴직과 자율연수휴직은 무급휴직이었지만 복직이 보장되어 있어 안정감을 주었다. 이런 환경이 내가 양분을 취할 수 있었다.

 

반달가슴곰은 겨울동안 나무둥치나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기 전, 가을에 많이 먹어둔다고 한다. 놀랍게도 반달가슴곰 암컷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먹이도 없는 그 겨울동안 새끼를 낳아 젖먹여 기른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인간 엄마들의 상황이, 거의 단식 상태에서 출산하고 수유까지 하면서, 동굴 속에 갖혀 겨울을 지낸 반달가슴곰 엄마와 거의 비슷하다면 너무 과장이 센 걸까? 아이를 낳아 3년 길러보니, 나를 위해서 뭘 하기가 어렵다. 고립감이 어려웠다. 임산부를 포함해 인간 엄마에게는 많은 양식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 반달가슴곰처럼 정신적, 정서적 영양분을 많이 비축해두어야하는 다른 임산부, 그녀의 편안함을 통해 편안히 자랄 다른 아가들에게 내가 누렸던 것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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