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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23시 37분 등록

어디에 있을 것인가?


매년 3-4월은 왠지 2월보다 더욱 추운 기분이 든다.

봄 인 듯 하면서 봄이 오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은 꽃샘 추위가 가끔 말 그대로

봄을 시샘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은 이미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날씨가 안 따라주니 몸과 마음이 더 춥게 느끼는 때 인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이 조금씩 물러나면서 봄의 기운이 약간씩 느껴지는 아침공기를 한 숨 들이마실 때면

더욱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 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봄은 또한 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새로운 학년,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졌던 계절이다.

새 학기를 기다렸던 기억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변화를 경험했던 시기가 바로 20년 전 군대에 입대했던 그 봄날이었다.

12월말 입영통지서를 받고 나서 그 해만은 이 겨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봄이 오지 않기를 바랬던 추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막을 수 없고 흘러가는 시간은 멈출 수 없듯이 어김없이

그날은 왔고 김광석 노래 가사처럼 당일 새벽 부모님께 큰절하고

어머님의 눈물을 뒤로 한 채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로 입소를 했다.

 

그리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던 중

군대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격 훈련을 받는 날이었다.

훈련하는 날 아침부터 엄청난 기합과 함께 시작하였고, 교육생들이 집중하도록

계속 정신교육과 얼차려가 주어졌다.

어쩐지 교관들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교육생들보다 더 긴장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얼차려와 함께 달콤한 당근도 같이 주어졌다.

교관들은 우수한 교육생들은 사격 훈련에 합격하면

오늘은 다른 훈련 없이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상을 내 걸었다.

교육생들 사이에서는 우와~~하는 함성이 나왔고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빨리 통과하는 대로 다른 날보다는 조금은 수월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나 역시 사격이 뭐 별거 있겠어? 하는 마음에

빨리 통과하고 한쪽에서 쉬고 싶다라는 바램을 가지고 순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1차 사격 시험 차례가 왔고,

나는 총 20발을 쏘아서 통과의 기준이 되는 10발에 못 미치는 5발만을 적중시켜

기준에 미달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교관들이 공언한 바와 같이 탈락한 훈련생들과 합격한 훈련생들은 각자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합격한 훈련생들은 양지바른 곳으로 이동하여 각자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나를 포함하여 불합격한 훈련생들은 나보다 앞서 탈락한 훈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여

기본 사격 자세 훈련부터 시작하여 이른 바 얼차려를 다시 받았다.

우리 이후로도 1차 사격 시험에서 탈락한 훈련생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이 다시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얼차려도 계속 되었다.

이윽고 1차 사격 시험이 모두 끝나고 교관이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시 시작되는 2차 시험에서는 모든 훈련생들이 집중하여 반드시 기준을 통과할 것을 강조하였다.

정신만 차리면 10발을 명중시키는 것인 일도 아니라는 선임 교관의 말이 이어졌다.

나 역시 이번에는 꼭 통과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훈련생들은 일찍 통과하여 편하게 쉬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탈락하여 다시 벌을 받고 있는 것이 내심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치러진 2차 시험에서도 나는 탈락하고 말았다.

1차 시험에서 50%정도가 합격을 하였고 2차 시험에선 약 60% 정도가 통과를 한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나머지 20%의 훈련생들과 함께 훈련장으로 자리를 옮겨

기초 사격자세 훈련부터 시작해서 아까보다 조금 더 강도가 세진 얼차려를 받았다.

2차 시험에 탈락하고 나서는 자존심을 내세우기 전에 너무 힘들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다 보니 다른 생각이 날 틈이 없었다.

그냥 빨리 합격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혹시 내가 눈이 바빠져서

그런가 해서 합격한 다른 동료 훈련생에게 안경까지 재빠르게 빌려 놓았다.

이윽고 고된 재 훈련 끝에 다시 3차 시험이 치러졌고 이번에도 약 50%의 훈련생들이 합격하여

영광의 양지 바른 휴식 장소로 안내되었고 나는 다시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2차 탈락 때 보다 더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훈련 시간도 휠씬 더 길어졌다. 나머지 훈련생들에겐

다시 사격시험의 기회를 줄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차려는 계속 되었다.

그러기를 한 시간이여 쯤 지났을 때일까? 교관은 작심한 듯 한마디 했다.


"
사회에서 너희들이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 사격 못하면 쓰레기일 뿐이야~!               

이 쓰레기들아~! 너흰 총을 만질 자격도 없어~! 굴러~!


그렇게 난 군대에서 쓸모 없는 쓰레기이자 부적응자가 되었다.

결국 그날 다시 사격시험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나를 포함한 10%의 탈락자들은

어떻게 하면 군대에서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와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정신교육을 얼차려와 동시에 받았다.

그전까지 사회에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속을 썩이는 자식도 아니었으며,

스스로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모범 시민이라고 자부했건만은

새로운 세상인 군대에선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매서운 봄 바람이 옷 속을 파고 들 때면 그 시절 훈련소의 차가운 새벽 봄 공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모두가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조금은 들뜬 봄, 나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본인이 못 하는 일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잘 하는 일을 찾으면 되고

그 역할,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후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내가 제 역할을 하는 지를 늘 고민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쓰레기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늘 혼자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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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5 10:33:59 *.18.218.234

멀쩡한 사람이 군대에선 사격 못한다고 쓰레기 되고

양심수가 감옥 들어가서 죄인되고

본의 아니게 몰려 들어간 '공간'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거기에서조차 통찰력을 얻는다면 쓰레기 통 속에서 피는 꽃같은 사람*^^*

(그럼에도 군대 이야기는 흡수되기 참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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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6 12:52:29 *.129.240.30

그때가 아직도 생각나네요. 군대를 우습게? 뭐랄가 군대라는 쓸데없는 곳에 가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당시 그 교관의 말은 사람은 있는 곳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해줘야 존재의 가치가 있다란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군생활을 열심히한거 같지는 않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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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6 17:47:01 *.81.34.124

어디에서나 쓰레기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정학씨 말대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으면요.

군대에서 경험이 성철에서 통찰로 이어져

늘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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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09:59:06 *.106.204.231

군 생활을 많이 해 본 제 경험상 정학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학님이 쏜총이 문제인겁니다.  누구라도 그 총으로 쐈다면 결과는 똑같았겠죠. 그러나 거기서 큰 의미를 찾았으니 문제 있는 총만은 아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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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8 22:40:40 *.234.136.166

그랬었지.

난 분명히 나의 과녁판을 향해서 쏘았지만 희한하지. 옆집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으니.

그때는 몰랐었네. 내 눈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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