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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07시 03분 등록

노동과 경영 13회 - 한국형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1)

1908년 포드자동차가 개발한 모델 T 자동차의 생산과정에 1913년 자동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2,100달러에 판매되던 종래의 자동차 가격은 825달러로 낮아졌다. 이는 1927년 단종 될 때까지 1,500만대를 생산하는 기록을 세웠다. 자동차 1대당 조립시간을 630분에서 93분으로 낮춘 이 생산체계는 포드 생산 시스템으로 명명되어 근대 제조업의 기본적인 생산방식이 되었다.

20세기 후반의 생산혁신은 일본을 주축으로 시작되었다. 1950년대 도요타자동차의 오노 다이치가 미국 슈퍼마켓의 판매관리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창안한 적시생산(JIT : Just In Time) 시스템은 이후 더욱 발전하여 현재까지도 일본 생산체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도요타 생산 시스템이라 명명되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MIT에서는 일본의 생산체계를 분석한 후 이를 린(Lean) 생산방식이라 부르고 있다. 린 생산방식은 종래의 대량생산방식과 비교하여 재고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부품은 필요한 시기에 생산라인에 공급하여 매우 간소하고 간결해진 생산방식을 일컫는다.

20세기를 주도한 포드 생산 시스템과 도요타 생산 시스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들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 산업의 생산 시스템을 정형화했다. 둘째, 탄생한 국가의 국민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생산 시스템이다. 셋째, 두 가지 생산체계를 정형화한 국가인 미국과 일본은 아직도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넷째, 생산체계에 대한 내용이 세계 모든 나라에 공개되고 현장에서 직접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많은 국가의 제조기업이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 있지만 아직 이들 기업의 생산성을 앞지르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정형화된 생산체계는 지금도 진화 발전하고 있다.

한국은 첨단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및 정보통신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러한 경쟁력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일본이 하나의 생산 시스템을 탄생시키고 50여년 이상 이를 유지하면서 산업을 주도했던 것처럼, 한국의 첨단 산업에서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유한 생산체계가 반드시 확립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두 가지 생산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삼성 생산시스템’과 ‘유한킴벌리 생산시스템’이 그것이다. 아직 전 세계적인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식의 생산시스템이 만들어 진다면 이 두 가지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특성이 나타나고 있는 몇 가지 예를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로 들어 보면서 이러한 것들이 한국적 특성(이를 구본형님은 한국성 : Coreanity 라고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사례 1) 한국인과 서구인들의 일에 대한 생각과 접근방법 및 반응과정이 다르다. 서구인들은 생산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작업을 위한 각종 규칙을 점검하여 이를 준수하는지를 제일 먼저 평가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우선 회식으로 마음을 푸는 일부터 시작한다. 외국 어느 회사를 가 봐도 한국의 회사 앞처럼 식당과 노래방이 발달한 곳을 찾을 수 없다. 한국 회사는 제조라인의 생산평가회의는 일정상 거를 수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으로 정례화 되어 있는 회식 및 간담회는 거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모임이 늦어지면 생산라인의 생산성이 눈에 뛰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적 사고방식이 통하는 체계가 구축되어야 생산 현장의 생산성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사례2) 맨해튼 시내에서 야채 가게를 운영하는 한 한국인 사장은 매일 새벽 뉴욕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헌츠 포인트에 간다. 그는 새벽에 시장에 들러 그날 구입할 각종 과일과 야채를 계약한다. 판단은 그날그날 과일의 품질과 가격, 그리고 일일 판매량 및 가게의 냉장 창고의 재고량을 재고량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하루에 구입하는 양은 보통 5톤짜리 트럭 한 대에 실을 수 있는 양이다. 무척 신기한 사실은 가게로 들어오는 트럭이 항상 빈틈없이 꽉 차 있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을 자로 잰 듯이 트럭의 뒷부분까지 각종 과일 및 야채 박스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이다. 펜 하나 없이 머리 속으로만 과일 값과 품질, 가게의 재고 등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날 구입할 과일의 박스 사이즈를 고려한 구입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공학적으로 패킹이라고 부르는데 수리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장뿐 아니라 동일한 업종에 근무하는 수많은 한국 야채 가게 사장들이 날마다 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남다른 능력(적응력과 계산력)이 아닌가 싶다.

(사례 3) 뉴저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한 한국인 사장은 이민 후 세탁소에서 잠깐 일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이 운영하던 세탁소를 인수받았다. 아직 세탁소의 모든 일에 익숙해 있지 않는 상태였다. 미국의 세탁소는 대개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데 인수받은 세탁소에는 15명의 미국인 및 남미인들이 일하고 있었고 각기 업무가 분담되어 있었다. 기계적인 지식을 익히는 데는 별로 재능이 없었지만 사장은 어깨 너머로 그들의 업무를 배웠고 그들의 일을 하나씩 인수하기 시작했다. 세탁소를 인수받은 지 6개월 만에 기존의 15명의 종업원을 모두 해고하고 멕시코인 2명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야채가게 사장이나 세탁소 사장 모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고 부지런한 한국인이었지만, 뛰어난 운영관리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였던 것이다.

(사례 4) 2002년 월드컵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월드컵이 열린 6월 한달 동안 붉은 악마 응원 티셔츠가 약 2,000만 장이 판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잘 계획한다 해도 한 달 동안 2,000만장의 티셔츠를 생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Be the Reds!'라는 문구는 엄연히 지식재산권이 있는 상표이며 따라서 이 셔츠를 생산한 대부분의 의류업체는 불법적인 상행위를 한 셈이다. 미국에서라면 관련 기관의 협의, 지식재산권 문제, 사전 생산계획, 마케팅 및 홍보 등의 규칙과 절차를 지키면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공감대가 확산되어 불같이 달아오르면 그 무엇도 해내는 한국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한국적 생산방식에 대한 글은 이영훈님의 저서 ‘한국적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삼성경제연구소 펴냄)’를 요약, 재편집하여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할 것이다. 그의 책은 한국적 특성에 기초한 제조방식을 찾고자 노력하는 흔적이 돋보였다. 전자부분으로 국한된 분석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국적 제조방식을 찾으려는 독자적인 연구방법이 나를 유혹했다.

제조업은 모든 산업의 근간이다. 제조업이 없이는 이에서 파생되는 3차 산업, 서비스 산업, 금융 산업의 발전도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용효과가 가장 큰 제조업이 약해지면 경제의 성장 동력 역시 매우 약해진다. 최근 한국의 제조업이 세계에서 위상을 떨치고 있다. 한국산 휴대폰이 최고의 인기 품목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반도체 메모리와 TFT-LCD는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자동차부문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철강 산업도 최근 중국의 추격을 받고 있지만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 조선은 어떤가? 제조업 부문에 혁명을 가져온 포드 생산방식, 도요타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시도되고 있는 사례들을 통해 한국적 생산방식의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한다. 한국의 현실은 아직까지는 외국에서 개발한 생산방식과 경영혁신 모형의 최대 수입국이자 실험장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진정한 한국성에 기초한 생산방식 또는 경영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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