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박노진
  • 조회 수 521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6년 2월 24일 07시 04분 등록

노동과 경영 14회 - 한국형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2)

생산성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제조업에서 생산성을 거론할 때는 일반적으로 경영학, 경제학, 산업공학 등을 이론적인 바탕으로 삼는다. 제조 현장의 관리 노하우와 학술적인 이론이 검증을 통해 실현되고 나면 생산성 향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제조기술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관리기술이자, 경영기술이다. 제조업에서 기술적인 발전이 한계에 다다르면 대부분 생산성 향상이라는 면에 역량이 집중되고 이것에 성공한 기업은 그 분야의 선진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제조기업의 현장에서 적용되고 있는 생산성 혁신 방법론은 대부분 도요타 생산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거나 최근 미국에서 정형화되어 수입된 식스시그마(six sigma)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요즘 국내의 모든 기업들이 생산현장에서 가장 우선하여 배우고 적용하고자 하는 내용은 식스시그마와 도요타 생산 시스템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지고 있는 비밀은 무엇인가? 식스 시그마를 적용하고 있는 세계적 기업 GE, 도요타 방식을 갖추고 있는 도요타자동차는 이 생산방식을 어떻게 탄생시켰고 오늘날까지 발전시키고 있는가?

자세한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이 두 가지 방식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경영학 또는 산업공학의 교과서들은 앞 다투어 이들의 기본 개념을 도식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한 의사결정과장을 수리적으로 모형화하여 풀 수 있도록 정리해 놓았다. 한 회사의 생산방식이 학문의 핵심원리로 자리 잡고 전 세계의 학교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훌륭한 점은 이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과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산방식은 온 천하에 공개되어 있으며 이를 직접 가르치기 위해 개발한 회사에서 생산 현장을 공개하고 연수까지 시키고 있으나 아직 어떤 기업도 GE와 도요타의 생산성을 앞지르고 있지 못하다. 다른 기업들이 흉내내고 적용하면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보편타당한 현 시대의 생산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생산의 현장 역시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곳이다. 생산의 과정은 새롭게 탄생한 지식이 계속 투입되고 이것이 실현되어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고 공장 내의 모든 곳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제조되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따라서 관리자와 작업자들은 모두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들이 전파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 이것이 이들의 비결일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다. 모형화와 진화의 방식이 그것이 아닐까?

출판계에서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는 단연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이다. 이 두 권의 책은 한 세대 이상 지속적으로 많이 팔리고 있는 책들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에도 이 책들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 참고서의 대명사였고, 지금도 서점에 가면 가장 눈에 잘 뛰는 곳에 꽂혀 있다. 지금은 좀 더 종류가 많아지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포장되었으나 내용상의 구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참고서들이 이렇게 오랜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다룬 내용이 다른 책에 없는 독특한 거도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히 기발한 문제들만 다룬 것도 아닌데 30여 년 동안 변함없이 그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해답을 찾아보면서 모형화와 진화의 한 베일을 벗겨내 보도록 하자.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가 다른 참고서들과 차별될 수 있었던 것은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각 주제는 장별로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초적인 단계의 일반적 설명 및 예제, 기본적인 문제 유형 및 관련 유제, 실력 문제, 고단위 문제 등의 단계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를 취하지 않는 참고서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처음 출판되었을 때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이는 대단한 혁신적인 구성이었다.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이해도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고 본인에게 어려운 부분은 더 공부할 수 있는 예제 및 유제 문제도 있었다. 한 권의 책으로 각자 자기 실력에 맞추어 선택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책의 또 다른 공헌은 이런한 구조적 체계가 모든 참고서의 기본적인 모형이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참고서가 약간씩 형태는 달라도 그 유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에 수많은 출판사와 입시 관련 전문가가 도전하였으나 구조적 체계를 제공한 이 두 책의 유명세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책들에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체계가 다른 참고서들이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수시로 변화한 것도 아니다. 기본적인 형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내가 풀었던 문제를 다음 세대가 똑같이 풀고 있다. 정형화 또는 모형화라고 부르는 과정이 이토록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자신의 지식 수준을 확인해야 하는 입시라는 인생의 관문에서, 체계화된 지식은 암기력과 응용력에 엄청난 파워를 가져온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해야 할 지식의 양은 엄청나다. 주어진 시간 내에 똑같이 공부를 해도 정형화된 틀 안에서라면 공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응용하는 능력도 빠르게 향상시킬 수 있다. 입시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어차피 새롭게 창조되거나 발명된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지식 내에서 약간의 응용력을 더해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수식문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이용하여 원리 원칙대로 전개하여 증명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이를 유형화하여 그 원리를 알게 해주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입시 학원이나 유명 강사는 문제의 유형을 찾아내고 이를 효율적으로 암기 또는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이를 가르치는 교사, 학원 강사들 모두가 합심하여 고등학교 지식을 정형화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면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과 GE의 식스시그마와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타 생산시스템과 유사한 면이 많다. 정형화라는 과정과 여전히 선두를 점하고 있는 점, 아울러 모든 관련 분야의 형태를 바꾸는 모델이 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대체적으로 한국의 생산성은 미국의 2분의 1, 일본의 3분의 2라고 한다. 국제적 상황에서 식스시그마 방식과 도요타 생산 시스템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왜냐하면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는 여전히 일등이며 이들로부터 그 형태를 배워간 다른 참고서들은 아직도 이등이기 때문이다.




IP *.118.67.206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52 노동과 경영 12회 - 노동시간의 리엔지니어링(2) 박노진 2006.02.22 5079
5151 노동과 경영 13회 - 한국형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1) 박노진 2006.02.24 6111
» 노동과 경영 14회 - 한국형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2) 박노진 2006.02.24 5218
5149 노동과 경영 15회 - 한국적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3) 박노진 2006.02.25 6241
5148 노동과 경영 16회 - 제조업의 진정한 혁명, 포드생산 시스템 박노진 2006.02.25 8219
5147 노동과 경영 17회 - 도요타 생산 시스템 박노진 2006.02.27 11557
5146 노동과 경영 18회 - 말콤 볼드리지 국가품질상과 식스 시그마 [1] 박노진 2006.02.27 8604
5145 노동과 경영 19회 - 한국적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4) : SLIM system 박노진 2006.03.04 7460
5144 노동과 경영 20회 - 한국형 생산방식의 가능성(5) 박노진 2006.03.16 4909
5143 연구원 과제 <My First Book> file 정경빈 2006.05.17 5364
5142 내가 쓰고 싶은 첫 번째 책 조윤택 2006.05.23 6019
5141 -->[re]내가 쓰고 싶은 첫 번째 책 file 강미영 2006.05.24 5859
5140 발표자료 file 박소정 2006.05.26 5321
5139 식당 비즈니스의 목적 박노진 2006.06.05 5333
5138 소스는 직접 개발하고 만들어야 한다 박노진 2006.06.05 4883
5137 세금관리, 모르면 그만큼 손해 본다 박노진 2006.06.06 6763
5136 식당의 자산은 맛과 서비스뿐이다 [2] 박노진 2006.06.07 5063
5135 어제보다 나은 식당(5) - 고객의 불평과 불만 박노진 2006.06.08 5248
5134 어제보다 나은 식당(6) - 음식의 트렌드, 퓨전과 웰빙 박노진 2006.06.08 7175
5133 어제보다 나은 식당(7) - 돈은 종업원이 벌어다 주지 사장이 버는 것은 아니다 박노진 2006.06.08 4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