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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5일 11시 21분 등록

노동과 경영 15회 - 한국적 생산방식, 그 가능성을 찾아서(3)

브라질은 왜 축구를 잘하는 것일까? 경기에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지만 우구나 인정하는 것은 브라질축구 대표팀은 구성 선수가 달라져도 그들의 독특한 색깔을 유지한다는 장점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선수들이 최고의 유연함과 조직력으로 경기를 유지한다. 이를 삼바축구라고 부른다. 보는 사람에 따라 국가별 축구의 성향을 다르게 표현할지는 모르지만 공통점 하나는 독일이든, 이탈리아든, 아르헨티나든 그들에게는 나름의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축구의 색채가 형성되기까지는 축구에 관련된 그 나라만의 역사와 운영체제가 있을 것이다. 색채는 세계적인 선수 한두 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민성, 신체조건, 축구에 대한 국민의 색깔 등이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선진국이 되려면 분명한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담이지만 구본형 스승께서도 이런 말씀을 돌려 표현한 적이 많았다. 전문가는 자기만의 분야가 있어야 하고 그 분야가 스스로 즐겨하고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잘 하는 것이 바로 전문가라는 말씀이셨다. 이것이 색깔인 것이다. 2002년 월드컵에서 빗자루라는 별칭으로 이름을 날린 김남일을 기억하는가. 그는 월드컵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강력한 몸싸움과 카리스마 있는 플레이를 그리워한다.

축구의 색깔을 기업의 생산방식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세계적인 생산망과 판매망을 보유하고 있고, 신제품 개발과 고객만족 측면이 우수하며, 제품의 품질 또한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 선진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업의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GE는 잭 웰치라는 탁월한 리더의 지휘아래 경영관리의 독특한 컬러를 형성했다. 도요타자동차 역시 잘 알려진 도요타 생산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지 못한 채 새로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시스템이 정착되지도 않고 목표도 달성할 수 없다. 삼성과 LG의 수많은 직원들이 지금도 엄청난 돈을 들여서 도요타나 GE의 방법을 배우고 있으나 정작 기업 내에서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기대만큼 효과를 얻고 있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제대로 배우되, 이를 국내 기업에 적용시킬 때에는 각 기업에 맞는 방법과 체계로 정착시켜야 한다.

삼성전자의 사례를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1992년 경 생산관리 시스템을 자동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ERP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며 전문적인 소프트웨어가 상용화되지도 않던 때였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의 생산관리는 공정의 복잡성 및 제품의 다양성 때문에 체계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기 힘든 때였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리치먼 교수의 자문을 받으며 진행되었다. 산업공학과 교수인 그는 박사과정 학생들과 오랫동안 반도체 생산관리 시스템에 대한 프레임워크를 연구하고 이를 프로그래밍하여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발전시킨 반도체의 전문가였다. 실제로 그는 미국 해리스반도체의 생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을 직접 지휘하여 완성시켰다. 이 프로젝트에는 외부 컨설팅 기업과 생산관리 부서의 책임자가 직접 별도의 팀을 만들어 프로젝트의 진행을 책임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약 2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는 기대했던 것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생산관리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한 데이터의 구축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또한 당시의 컴퓨터 계산능력이 삼성전자 반도체의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또한 운영자가 관리할 수 있는 시간내에 계산이 가능한 형태로 생산관리 시스템을 모형화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그 이듬해 다시 추진되어 몇 년간의 개발, 적용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반도체 생산관리 시스템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초반 2년 동안의 실패과정에 관한 것인데, 사실 실패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리치먼 교수가 구축한 해리스반도체의 생산관리 시스템은 응용분석학문의 선형계획법과가 반복적으로 적용되어 복잡하게 계산되지만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생산계획은 제품별로 언제 어디서 생산할 것이지를 제시하는 단순해 보이는 데이터뿐이다. 이 데이터가 검증과정을 거치고 난 후부터는 이 시스템에서 제시하는 생산계획을 의심 없이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계획에서 제시한 생산량의 달성 여부에 따라 담당자의 평가와 연봉 등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규칙이 되었고 법이 되었다. 그러나 삼성에서는 달랐다. 아무도 이 시스템에 의해 생성되는 생산계획의 합리성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품별로 여러 명의 담당자가 며칠씩 걸려 작성하였던 계획이 컴퓨터 시스템에서 몇 분만에 생성되는 과정 자체를 불신한 것이다. 그동안 각자의 논리와 경험으로 계산하던 과정에 대한 무시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컴퓨터에서 제시하는 생산계획은 당연히 융통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컴퓨터는 단지 하나의 최적해最適解만을 제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현장을 관할하던 파워를 잃게 될지 모른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미국사회에서는 문서에 정의된 대로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새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발전시키려는 경향이 크다. 생산계획 업무도 담당자별로 산출하는 과정과 노하우가 다르고 이 또한 해가 지나면서 끊임없이 발전한다. 선임자에게 배운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파악할 때쯤 되면 그 사람만의 노하우가 추가된다. 그래서 내가 하던 업무를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그 후임자의 상급자가 되어 관리하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후임자의 업무는 함부로 지시할 수 없을 만큼 또 다른 영역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융통성과 동적인 메커니즘은 한국 사람만의 고유한 업무 패턴이다. 한국에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주어진 일을 규칙에 따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름의 방법론을 구축하여 수많은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의 색깔을 창조하는 일에 다소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된다. 모두가 약간씩 다른 색깔을 지니는 것이 특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체계적으로 전달되기가 힘들다. 일관된 색깔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변해가는 한 면이기도 하다. 일관된 색깔을 지니지 못한 상태에서는 발전보다는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도요타 생산시스템의 저력은 일관된 색깔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화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새롭고 좋게 느껴지는 형태를 들여와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외국의 수많은 생산성 향상 방법론을 수입했다. 한때는 품질관리 열풍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리엔지니어링이 기업 경영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기도 했으며, 지금은 식스시그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많은 변화와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 및 품질개선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 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으며, 그들은 모두 태풍처럼 한 시대를 주도하다가 지나가버렸다. 생명이 오래 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마치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우리의 축구색깔이 무엇인지를 개략적으로 깨닫고 난 후에도 그 방식을 정형화하기보다는 히딩크나 김남일 같은 스타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모습과 같다. 어느 날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면 그는 한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주겠지만 우리의 색깔을 만들어 가는 일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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