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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5일 22시 51분 등록

어제보다 나은 식당(2) - 소스는 직접 개발하고 만들어야 한다

퓨전음식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부쩍 소스류에 대한 언급이 많아졌다. 삼겹살을 먹더라도 몇 가지 소스는 기본이고 찌개류의 음식이나 듣도 보도 못한 음식에까지 이젠 소스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음식점의 기본은 맛에 있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소스는 다른 말로 양념이라고 보면 쉽다. 우리 요리의 맛은 손끝에서 나오고 서양 음식 맛은 주방에서 소스를 만드는 솜씨에 달려 있다고 한다. 우리식의 음식 맛과 서양의 요리 특성으로 인하여 음식의 맛에 대한 기준이 다르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맛에 대한 인식은 같다고 본다. 이 점이 우리식의 양념이든 서양의 소스든 같은 의미로 보는 의도이다.

갈빗집 3년, 한정식 식당을 1년째 하면서 소스 즉, 양념장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고기는 질 좋은 생고기가 아니면 양념을 해서 품질(맛)을 높인다. 양념 소갈비와 양념 돼지갈비는 육질과 더불어 양념에 따라 그 맛이 현격한 차이가 난다. 이 양념을 잘하는 주방장 한 명 구하는 것이 예전 고깃집 사장의 가장 큰 일이었을 정도였으니 또 다른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다. 특히 돼지갈비양념을 잘하는 식당의 고기 맛은 소고기 못지않게 맛있고, 이런 식당은 양념하나만으로 사시사철 손님으로 꽉 찬다.

이것이 소스의 힘이다. 한정식이든 단품요리든 그 맛을 내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함께 맛을 내는 향미로서의 양념이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낙지볶음에는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이 매운 맛을 낸다. 매운탕에는 숙성시킨 고추장 양념이 맛을 좌우한다. 나물 맛은 조선간장이 맛의 조미역할을 한다. 모든 요리에는 고유의 맛이 있고 그 맛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는 것이 요즘 요리의 흐름이다. (추가 설명 필요함)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이면 여러 가지 알아야 할 부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소스를 만들 수 있으면 주방을 장악할 수 있다.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주방인력관리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주방장들이 술 먹으면 결근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나도 주방장이 말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아져서 오기로 고기(갈비) 작업하는 것과 양념 재는 법을 혼자서 배웠다. 손님은 들어오지, 고기는 없지,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누르고 맛없다고 불평하는 손님의 잔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면서 이를 악물며 일을 배운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주방을 모르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적어도 지금 주방에서 하는 핵심적인 요리의 양념이나 소스는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식당을 하고 있다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주방 직원들이 경영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며, 너 아니어도 할 수 있다 라는 무언의 위세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무기로 직원들을 핍박하라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힘의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사전에 알자는 의미이다. 대립과 알력은 소소한 일, 주방의 영향력 행사, 인사권, 홀과의 마찰 등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나타나는데 경영자가 모른다고 생각되면 거의 모든 부분에서 흔들기 시작한다. 소스나 양념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영자는 식당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자기 기준이 있기 때문에 홀과 주방 인력들이 식당의 경영방침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소스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새로운 소스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평생 같은 소스로 맛을 내는 음식으로 번성하면 좋겠지만 세월이 급변하는 요즘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이랴. 끊임없는 연구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경영자의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는 주로 주방장과 찬모에게 주방 일을 다 맡겼다. 그러다 어느 때 부터인가 양념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싶어 요리 선생을 한 분 소개받았다. 그분한테 메인 요리의 소스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 직접 양념을 만들었더니 주방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주인이 직접 소스를 만들어 주니 소스 만드는 시간이 줄어들어 편하기 했지만 왠지 주방의 일이 줄어든 데다 별안간 주방의 권력이 통째로 뺏긴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기를 한 동안 하다 다시 주방에 소스 레시피를 알려주고 직접 만들어 쓰게 하였다. 그랬더니 나와 주방의 관계가 아주 편해졌다. 급하면 주방으로 달려가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소스를 만들거나 새로운 음식을 만들라치면 소스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같이 의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때 직원들이 대부분 지금 운영하고 있는 식당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소스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즘 소스 레시피는 대부분 계량되어 있기 때문에 계량컵과 계량스푼 그리고 전자저울만 있으면 누구나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직도 손대중을 계량하여 요리하는 음식들도 없진 않지만 우리나라 한식의 90% 정도는 조리 매뉴얼화 된 계량 레시피로 맛을 잡아낼 수 있다. 먼저, 자기 식당의 가장 중요한 메뉴의 양념이나 소스를 파악해 보자. 그리고 그것을 만들 때 주방장이나 찬모와 같이 만들어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머슥하겠지만 점차로 익숙해 지고 곧 주방인력들과도 친밀해 지는 계기도 된다. 그런 다음에는 몇 가지 다른 소스를 배우자. 전부 다 배울 필요는 없다. 다 배운다고 혼자서 주방일을 책임질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지나면 기존 소스에 새로운 맛을 가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소스를 새로 만드는 과정이 된다. 이것도 혼자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벤치마킹이다. 똑 같은 음식을 가장 잘한다고 하는 식당에서 몇 번이고 먹어 보면서 우리 음식의 맛과 그 쪽 음식의 맛의 차이를 알아내 우리 소스를 변형해 보면 된다. 이런 과정속에서 개량과 개선이 나오는 것이다. 토요타 자동차의 제조 방식이 ‘가이젠(개선)’인 것도 따지고 보면 팀 단위로 일하는 팀원들의 끊임없는 토론과 개선의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도 소스를 만들 때 비교하고 따라 베끼고, 다시 우리만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식당의 추세는 단연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맛이고, 둘은 건강(웰빙)지향적이고 셋째는 전통음식의 현대화(퓨전화)이다. 그 중에서 맛은 다른 두 가지보다 우선한다. 일단 맛이 좋아야 손님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 비싼 음식을 맛있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저렴한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 과정을 극복해야만 번성하는 식당을 만들 수 있다. 이 맛이 바로 소스(양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소스는 서양식보다는 우리의 전통 음식에서 찾는 것이 앞의 트렌드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요리의 양념의 기본은 장醬이다. 간장, 된장, 청국장, 막장, 고추장 등을 모두 뜻하며 좁은 의미로는 간장을 말한다. 우리의 고유 발효식품인 이들 장류가 한국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기본 요소이면서 앞으로 우리 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전초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는 우리만의 소스로 만든 ‘한국적인 특수한 맛을 보편화’하는 것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된장, 청국장을 가지고 만든 소스야말로 우리 국민들의 건강에도 좋고 세계인에게도 내놓을 수 있는 ‘오리엔탈 소스’가 될 것이다.

맛 집들을 가보면 수년 동안 꾸준히 그 집의 음식들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보면 소스를 제대로 만들고 개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리는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성을 들인 마음으로 하는 만큼 나만의 노하우가 담긴 소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노력하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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