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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2일 11시 55분 등록

2011210, 30년간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무바라크는 모든 대통령의 권리를 부통령에게 이양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125일부터 18일간 지속됐던 시위가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도 나는 2011119일부터 210일까지, 즉 시위가 시작되던 다음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이집트에 있었다.

2010, 6개월간 힘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어렵게 약 3주간의 휴가를 얻었다. 6개월간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했던 보상으로 받은 휴가인지라 멋지게, 몸과 마음이 모두 완벽하게 리프레시될 수 있는 휴가를 보내고 싶었다.

 

 사막과 비치, 유적지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이집트는 3주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완벽한 휴가지로 보였다. 그런데 그때 이미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중동 지역 반정부 시위가 막 시작돼서,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가 점점 커졌다. 여행 자체를 취소하려고 했으나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저러다 금방 끝나겠지.’ 라는 심정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시위는 점점 심각해져서 더 이상 수도인 카이로 근처에서는 머무를 수가 없었다. 룩소르나 다합 등 지방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시내로 들어가는 수십대의 탱크를 봤다.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실제로 움직이는 탱크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탱크가 시내에 들어오기 전에, 그곳을 떠나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혹시라도 시내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비슷한 일이 있었던 우리나라의 과거가 떠올라서 였기도 하다.

어렵게 도착한 공항은 그야말로 전쟁터 같았다. 비행기가 안 뜬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공항 봉쇄 직전에 룩소르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며칠 후 또 운 좋게도 몇몇 여행객과 차를 렌트해서 원래 가려고 했던 다합 근처의 후루가다 라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행한 한국 여행객들은 여행을 중단하고 주변 국가를 통해 당장 귀국하겠다고 했다. 한국 뉴스에서는 이집트를 당장 전쟁이 날 것 같은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며 몹시 불안해했다. 그러나 BBC 등 국제 뉴스와 현지에서 만난 이집트 사람이나 다른 나라 여행객은 카이로의 시위가 점점 안정돼 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대통령도 곧 하야할 것으로 보여 큰 고비는 넘겼으니 여행을 계속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나도 그곳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약 열흘간 후루가다에 머무는 동안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고, 카드 사용이 안 된다는 것 외에는 카이로의 시위나 소요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들을 보냈다.  

그 곳에서 계획했던 대로 홍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고, 예정에도 없던 다이빙 강습도 받을 정도로 딴 세상 같았다. 며칠 뒤 국제 뉴스에서 예상했던 대로 대통령 하야 발표가 있었고, 공항이 다시 열려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열흘만에 돌아온 카이로에서 밝음과 설레임 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태어나서 대통령이라고는 무바라크 밖에 몰랐던 2~30대 젊은 사람들에게서 희망이 느껴졌다. 스스로 자유를 얻은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자신감이었을 거다.

불행히도 이집트에 바로 자유와 평화가 오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혼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위험했지만 재미있는 여행을 하며 나도 몇 가지를 깨달았다. 계획과 준비에는 서툴지만, 유연한 사고를 하는 나의 성향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장소 및 일정을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며 일상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강점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여행이나 삶이나 계획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도 본의 아니게 세계사의 큰 변화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유에는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그 때서야 진정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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