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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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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6일 10시 32분 등록

딸은 두 아들을 키우느라 쩔쩔맨다. 그러다보니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나를 그래도 엄마라고 툭하면 부른다.

그럼 끙~ 하고 일어나 딸집에 가서 집안일도 도와주고, 아주 드물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외손자들을 이리저리 어르며 놀다가 온다.

그리곤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올 때는 대체로 만원버스를 만나게 된다.

직장을 다녀오는 젊은이들로 꽉 차서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내 어린 시절 중학교 다닐 때의 콩나물 시루 같았던 버스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이 얘기를 하니 딸은 잘됐다는 듯이 퇴근시간을 피해서 좀 더 있다 가라고 한다.

나도 한창 귀여운 외손자들과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그러마 하다보면 시간이 늦어진다.


내가 문을 들어서면 10개월의 한창 예쁜 아가가 온 얼굴에  티없이 함박  웃으며 내게 막 기어온다. 그리곤 두 팔을 벌려 내 품에 안긴다. 그럼 그 아가를 안을 때의 가슴이 터질듯한 충만한 기쁨은 어느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 세 돌이 안 된 큰 녀석은 이 기쁨이 좀 덜하다. 일찍 말을 시작한 큰손자는 벌써 사랑한다는 말을 이해한다. 끌어안으면서 할머니 사랑해요?’ 물어보면 천연덕스럽게 안 사랑해요한다. 내가 뒤돌아서 우는 시늉을 하면 아니 사랑해요하며 놀릴 줄도 안다.

내가 그렇게 저를 끌어안고 온몸과 맘을 다해 사랑했건만 세 돌도 안 되어 안 사랑해요란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었다.

애기가 하는 말에 그렇게 마음이 아픈 줄 몰랐다. 그럼 바로 남편은 그래서 나는 친손자가 좋다니까 하고 거든다

딸은 내가 애를 내 무릎에 엎드리게 한 후 궁디팡팡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딸네를 다니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모든 사람들은 아가였다. 나도 아가였다. 그러다 다시 아가를 본다. 순수와 티없는 관계를 본다.

    

이런 일을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어제 다녀갔는데 이틀도 못 참고 또 전화가 왔다.

엄마 언제 와?’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가?’ 해버린 것이다.

날 닮은 딸은 바로 화를 냈다. ‘알았어요. 오늘 오시라고 한 것도 아닌데 안와도 돼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다시 전화를 거니 안 받는다. 아가가 보고 싶어 페이스톡 해도 안 받는다.

그러더니 전화는 기분 나빠서 안 받았고 이제 아가를 재우니 페이스톡 못하겠다고 카톡이 왔다.

나도 엄마는 말도 못하나?’ 하면서 나도 네 전화 안 받는다는 유치한 카톡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카톡을 잊고 받았더니 아무 일 없는 듯 평상시 말투다.

웬일이니? 어제는 그 난리치더니? 했더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에베소서 4:26)’ 라고 했잖아요 한다. 성경말씀으로 분나던 자기 마음을 이겨냈다는 말에 나도 기쁘고 뿌듯했다.

그러면서도  바로 네가 분낸 게 옳은 일이냐?’ 라고 말하려다가 꾹 삼켰다.

    

이런 뿌듯함도 잠시, 바로 다음 날 우리 동네의 결혼식장에 왔다며 집에 들르겠다고 한다.

밥하기도 싫고 외식도 싫어하는 묘한 상태에 있는 내게 딸이 애기 둘을 데리고 집에 왔다.

젖이나 먹이고 간다는 딸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도 안 가는 것이다.

만나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을 떠올리며 빨리 가라고, 남편이 기다리지 않냐고 해도 밍기적거리기만 한다.

서로 일하기 싫어하는 두 사람 사이를 감지했는지 그렇게도 입이 짧은 큰손자가 한마디 한다.

할머니, 뭐 맛있는 것 좀 주세요


애들때문에 웃고 우는 하루는 즐겁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글을 며느리가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본다.

며느리는 제 친정엄마를 불렀겠지. 엄마한텐 막 하면서 시모껜 아무 소리 못하는 딸처럼 며느리도 그러겠지.

 

삶은 이런 것이다. 글을 다 썼으니 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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