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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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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 10시 40분 등록

도시에서 흙은 찾아보기 어렵죠. 도로엔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인도에 보도블록 깔려있으니까요. 일부러 조성해놓은 화분이나 가로수에서 생명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간혹 전봇대 옆이나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새로 나온 꽃다지나 풀들을 보며 생명력의 대단함을 느끼죠. 그 풀을 갉아 먹는 애벌레도 있고요. 세밀화로 유명한 이태수가 그린 그림책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를 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하지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풀들을 보여줘요.

 

리프맨도 마찬가지예요. 집 주인인 호호 할머니가 아끼던 장미꽃이 병들자 할머니도 같이 병이 들어요. 그러자 풀벌레들이 방법을 찾기 시작하고 정원에 있던 말하는 엄지 인형이 보름달이 뜰 때 리프맨을 부르면 도와줄 거라 하죠. 작고 작은 쥐며느리들이 높은 나무를 줄을 지어 올라가다 거의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여왕 거미가 나타나 잡아먹으려고 해요. 쥐며느리들이 리프맨 도와주세요.”를 외치자 어디선가 리프맨이 나타나 여왕 거미를 물리치고 쥐며느리를 구해줘요. 풀벌레들은 리프맨들을 도와 망가진 정원도 다시 돌려놓고, 리프맨은 밤에 무섭지 말라고 호호 할머니의 부모님이 사주신 엄지 인형도 할머니 곁에 놔주죠. 덕분에 호호 할머니는 차차 회복해요.

 

저자인 윌리엄 조이스는 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 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으로 2012년 제84회 미국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어요. 그 단편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죠. 12년 동안 구상해 온 가디언즈시리즈는 달빛 왕자와 가디언즈의 탄생, 가디언즈와 잠의 요정 샌드맨등 많은 책으로 출간되었고, 영화로 제작되어 제16회 할리우드 필름 어워즈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어요. 대학에서 영화와 저널리즘, 예술을 전공했고 첫 책을 계약하기도 했죠. 그림책 작가만이 아닌 에니메이션 제작자인 저자는 그림을 영상으로 만드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로봇등의 콘셉트와 디자인에 참여했으며, TV 애니메이션 롤리 폴리 올리의 원작자로 디즈니 TV 에미 상, 크리스토퍼 상, ABBY 영예상을 받기도 했어요.

 

드림웍스·픽사와 더불어 할리우드 3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중 하나로, 아이스에이지 시리즈을 만든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에서 리프맨을 원작으로 한 '에픽:숲속의 전설'2013년 제작했어요. 영화 아바타의 에니메이션 버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책이 원작일 경우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해서 영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에픽처럼 제목부터 내용까지 다른 경우도 있어요. 저 역시 에픽을 보고 그림책을 봤지만 같다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모티브만 가져왔다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등장인물도 전혀 다르거든요. 호호 할머니와 손자는 나오지 않고 여자주인공과 숲속 소인을 연구하는 아버지가 등장하죠. 공간도 정원에서 숲속으로 확대되었어요. 하지만 선악의 대결 구도와 숲속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이 나와 결국 숲속을 지켜낸다는 내용은 같아요.

 

영화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냐라는 대사가 있어요. 바쁜 현대인은 눈에 보이는 것도 놓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주의를 기울여야 보여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은 아이들의 눈엔 잘 보여요. 작은 개미, 무당벌레를 보고 가던 길을 멈추죠. 그림책에서처럼 쥐며느리는 특히 공격을 받으면 공처럼 몸을 말아서 모습이 잘 보이지 않죠. 하지만 그들이 리프맨을 불러 정원을 살리고 호호 할머니도 낫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요. 아이들 눈에 잘 보이는 이유는 눈높이가 낮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것을 어떤 분의 글에서 알았어요. 항상 걷던 길인데 잔디밭에 앉아 눈높이를 낮추고 보니 새롭게 보이더라는 글이었어요. 우린 어느새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는 것에 익숙해서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는 법을 잊었나 봐요. 인간의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자연의 질서를 유지해나가는 많은 생물체들. 그들이 있기에 인간이 존재함을 자주 잊고 지내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몸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니 더할나위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하면서 생겨난 일은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나태주씨의 시, ‘풀꽃을 들려드리며 끝을 맺을까 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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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18:31:43 *.103.3.17

지난주에 올리신 글인줄 알았는데, 일찍 올리신 글이였군요 ㅎㅎ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ㅎㅎ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스마트폰과 온갖 영상매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문장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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