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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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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4일 09시 15분 등록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 (I'LL EAT YOU UP!)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1963년 미국에서 금서로 지정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중 하나예요. 그럼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1960년대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린다는 표현이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여긴 거죠. 하지만 작가인 모리스 센닥은 아주 익숙한 표현이었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유대인의 아들로, 어렸을 때 병약했던 모리스 센닥은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친척들이 방문하면 어리고 귀여운 작가에게 잡아먹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어린 모리스 센닥은 이를 공포로 느꼈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엄마를 잡아먹어 버린다고, 괴물들이 맥스를 잡아먹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와요.

  괴물1.jpg

모리스 센닥의 1979[깊은 밤 부엌에서]라는 그림책에 남자 어린아이의 성기가 보인다는 이유로 또 금서가 돼요. 교사와 사서들이 책을 서가에 꽂아두지도 않고 불매운동까지 했다고 해요. 심지어 테이프를 붙이거나 색을 칠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고 하니 지금으론 웃지 못할 해프닝이죠. 책 속 나는 우유 속에 풍덩 빠져있고 내 안에도 우유가 있어.”라는 표현이 어린이의 유아기 성욕 혹은 자위행위의 판타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교육학자와 심리학자가 해석했다고 해요. 정작 작가는 1968년 심장마비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경험을 했고, 애견,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으로 도시 뉴욕을 떠나 코네티컷으로 이사했어요. “뉴욕 시에 작별인사를 하는 마음으로 그림책 작업을 하였다. 주인공 미키가 케이크로 구워지기 전에 반죽에서 나온 것은 나의 죽음과도 같은 절망을 극복한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 내용이 있어요.

 

[괴물들이 사는 나라]1964년 칼데콧 상을 수상했고, 1971[깊은 밤 부엌에서]는 칼데콧 아너를 수상했고, 1970년엔 안데르센 상을 받았으니 책에 대한 평가는 결국 독자의 몫이란 생각이 드네요. 또한 자폐증을 앓고 있던 아이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읽고 말문을 열었다는 실화도 있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꾸민 이야기보다 갈등이나 고통을 표현한 상상세계의 힘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모리스 센닥이 아이들의 상상세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옛날 어린 아이였던 내가 지금의 나로 자라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가장 생동감 있고, 창조적이고, 육체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아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아이와의 연락이 끊어지는 일입니다.”라고 말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피터팬처럼 어린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또 다른 어린 아이가 존재하고 있고 그 아이와 소통하고 있다니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랬기에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 수 있었고 누구보다 아이들이 이를 잘 알아차렸나봐요. 저의 아들에게도 이 책을 사줬는데 너무도 좋아했어요. 이 책을 보고 나서 판타지 책들도 보고 저와 신화 책도 보면서 [신화 상상 동물백과사전]에 나오는 상상 동물들을 이미지로 보는 것도 좋아했어요.

 

2009년 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림책을 영화한 것이예요. 다른 영화는 그림책의 일부를 모티브로 한 경우도 있지만 이 영화는 가장 유사하게 만든 영화예요. 짧은 그림책 내용을 영화로 만드니 추가된 내용도 많아요. 괴물들의 이름이나 특징들도 나오고 괴물들과 사는 생활을 보여줘요. 여전히 먹어 치운다는 것이 계속 등장해요. 맥스가 떠날 때 너는 우리가 안 먹어치운 유일한 왕이야.” 혹은 널 먹어치울 만큼 사랑해.”라는 대사가 나와요. 친족이나 지인들이 죽은 자를 먹음으로써 죽은 자의 영혼이나 육체를 나누어 갖고, 죽은 자가 생전에 가졌던 지혜와 능력마저도 이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인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 생각나는 대사이기도 하네요.

 

가족이 되는 건 힘들어.”라는 괴물의 대사가 있어요. 가장 가깝고도 먼, 힘든 관계가 가족이죠. 영화의 마지막은 맥스를 기다리던 엄마와 포옹을 하고 밥을 먹는 맥스를 보며 잠든 엄마를 지켜보며 미소짓는 맥스의 얼굴이에요. 맥스의 상상 세계에서의 시간이 실제로도 흘렀나봐요. 첫 시작 화면에선 눈 덮힌 겨울이었는데 마지막은 초록이 가득했거든요. 그동안 엄마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맥스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해요. 맥스는 괴물들의 나라에서 왕이 되어 한바탕 놀고 갈등도 겪으며 성장한 시간이었지만요. 또 다르게 보면 영웅의 귀환이기도 하네요. 바다를 항해한 것도 그렇고요. 그림책 하나로 시작해서 여러 갈래로 확장하니 보이는 것들도 많아지고 이거야말로 진정한 통합독서가 아닐까 해요~

 

IP *.52.1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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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17:55:16 *.223.17.51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읽는 시기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게 재미있어요. 

"가장 가깝고도 먼, 힘든 관계가 가족이죠" 저도 이 말에 공감해요. 

많은 학생들이 엄마와의 관계를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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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07:11:54 *.70.220.99

괴물들이 사는 나라 - 처음 부모가 되서 아이에게 수십번 읽어줬는데 읽을때마다 저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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