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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5일 07시 25분 등록
"인생은 험난한 항해다"

아주 진부한 문장이죠? 요즘 이런 걸 명언이랍시고 어디서 써먹기라도 한다면, 꼰대 취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이 문장은 제가 초등학생일때 부모님 방 책장에 꽂혀있던 명언집에 수록되어 있던 것입니다. 아주 두꺼운 양장판 표지를 가진 그럴듯한 그 명언집에는 인생, 우정, 사랑, 성공 등의 카테고리 별로 동서양의 명언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인생은 험난한 항해다"라는 문장은 <인생>편의 가장 처음에 나온 명언이었는데, 큰 파도가 몰아치는 넓은 바다사진이 배경이었죠.  이 말은 원래 고대 로마의  철학자였던 세네카가 한 말입니다. 세네카는 원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항해다"

지금이야 배 타고 어디 간다고 죽을 각오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습니다. 요즘 시대에 그냥 "인생은 항해다"라고 말하게 되면 아무런 감흥이 없게 됩니다. 되려 항해라니 재미있겠네. 크루즈야? 요트야?라는 얘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험난한'이라는 형용사를 넣은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다한들 사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인생은 고독한 항해다", "인생은 심란한 항해다" 얼마든지 말할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냥 "나 밥먹었어"라는 말 이상의 감흥을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일상적이고 진부해진거죠. 그런데 전 왜 이 문장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이였던 제가 이 문장에 꽂혔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코 찔찔이 초등학생이였지만 인생이 참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짐작합니다. 필경 그날 엄마에게 된통 혼났거나 친구와 딱지치기를 해서 왕창 잃었거나... 그랬음이 틀림없습니다.


참을수 없는 명언의 무거움

인생을 논하는 명언과 격언을 보면 대부분 무겁고 진중합니다. "인생은 즐거운 뱃놀이다" 따위의 명언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허나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은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죠. 인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숨을 쉬거나 분위기가 사뭇 비장해집니다. 모든 단어는 제각각의 빛깔과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두글자, 삶이라는 한글자의 무게는 꽤 무겁습니다. 때론 가벼움으로 가장을 하기도 하지만, 본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죠. 살아온 만큼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집니다. 삶의 무게를 덜기 위해 살아가지만, 되려 그 노력이 스스로에게 하중(荷重)으로 되돌아오는 시지포스의 형별과도 같습니다.

인생에 대한 몇 가지 명언을 보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것인가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어떻게 인생을 살것인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 했다. 우리는 삶에 세월을 더하기는 했지만 세월에 우리의 삶을 더하지는 못 했다" - 밥 무어헤드

 "세계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인생은 시작된다. 그러나 고작 TV채널을 바꾸는 것으로 인생은 끝이 난다" -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진중한 위 두문장과 비교하면 이건 좀 웃프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들이 인생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동안에" - 세네카 

'인생은 항해다'라고 말한 세네카의 경우 남긴 명언이 많습니다. 세네카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그냥 시간을 흘려보낼뿐이다 - 세네카

진짜 그렇죠. 아둥바둥거렸던 그 시간들 사실 되돌아보면 실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시간들이 더 많습니다. 1분 1초 치열하게 사려는 욕망은 결국 헛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인생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어떨까요? 모두가 결국 원하는 것은 인생이 '험난한 항해"가 아닙니다. 크루즈까지는 안되더라도, 낚시배라도 타고 떠나는 "즐거운 항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주관이 개입됩니다.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타인의 말과 글이 주는 감흥도 달라집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사색하고 고민하고 철학만 하면 인생은 무거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골방안에서 고뇌만 하는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가 보리수 나무아래에서 수십년을 고행한 싯다르타가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될 필요도 없습니다.  때론 고독과 깊은 사유가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삶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유와 고뇌만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생은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일상

일리노이 대학의 철학교수 휴 무어헤드(위에서 소개한 명언 중 하나를 쓴 밥 무어헤드와 무슨관계인지는 저도 모르겠네요)는 전 세계의 저명한 철학자와 작가등 명사 250인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보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써서 무어헤드 박사에게 회신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깊은 것은 작가 앤디 루니가 짧게 보낸 답변이었습니다. 앤디 루니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가 맛있는 프랑스 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휴 무어헤드에게"

인생의 추상적 의미를 알아 내려고 애쓸 필요 없습니다. 삶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관념이 아닌 일상입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 알프레드 디 수자의 고백도 들어보시죠.

"오랫동안 나는 이제 곧 진정한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언제나 온갖 방해물들과 급하게 해치워야 할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일과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끝내고 나면 진정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런 방해물들과 사소한 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알프레드 디 수자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18살때 열차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8차례의 척추수술을 했고,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모르핀 중독과 평생을 싸웠고, 결국 47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죠. 어떤 누구보다 힘든 삶을 살며 인생을 통찰한 그녀가 죽기전에 한 고백입니다. 진지하게 귀 담아 들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IP *.70.2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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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18:09:31 *.223.17.51

"내가 맛있는 프랑스 빵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휴 무어헤드에게" 라는 글을 제 상황에 패러디해보면

"호박 잎 아래에 숨어있는 호박을 찾아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네요. 

제가 좋아하는 알프레드 디 수자의 통찰의 말. 

그런 방해물들과 사소한 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하루의 소중함.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축복이었나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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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18:55:38 *.247.149.239

불씨님의 글을 읽다보면 아주 멋진 말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저도 이렇게 귀동냥하다가 하나 두 개 정도 슬쩍 써먹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아요. 적절한 상황에 품위있게 나오는 명언은 아주 멋있으니까요. ㅎㅎ 인생은 관념이 아닌 구체적 일상이라는 주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담긴 행복의 기원이란 책을 얼마전에 읽었는데요. 앞으로 글을 발전시키실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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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07:13:18 *.70.220.99

<행복의 기원> 접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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