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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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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9일 00시 21분 등록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나 이오덕의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가 그렇다. 그 외에도 많은 저자들의 다양한 글쓰기 노하우를 담은 책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글 쓰기에 관한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제되지 않은 글은 읽는 사람을 피로하게 하고, 잘못된 정보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글쓰기는 사진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매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핸드폰으로 사진은 매일 찍으면서 왜 글은 매일 쓰지 않는 것일까? 사진은 못 찍어도 SNS에 쉽게 올리면서, 글은 왜 꼭 잘 써야 한다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나 역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보다는 오히려 예전에는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아가고 그것을 정리하는 수단에 가깝다. 정리하는 글 쓰기는 표현하는 글 쓰기에 비해 형식이 자유롭고, 덜 화려하다. 주위의 시선을 덜 의식하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막막해서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찾은 두 권의 책이 있다. 이 두 책은 서로 매우 다른 결을 가졌다. 


  먼저 읽은 책은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이다. 저자 강원국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시절 연설비서관 소속으로 대통령의 말과 글을 직접 쓰고 다듬은 사람이다. 누구보다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 했던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을 모시면서 저자가 겪었던 일화와 그 속에서 배운 글쓰기의 다양한 노하우를 담고 있는 책이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책임진 그 였던 만큼 탄탄하고, 품위 있으며 격이 있는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배우 콜린 퍼스가 연기한 영화 <킹스맨>의 해리 하트의 이미지와 닮았다. 곱게 빗어 넘긴 포마드 머리에 말끔한 수트 차림의 신사가 쓴 아주 클래식한 글 쓰기의 매력을 가득 담고 있다. 


  다음으로 읽은 책은 거지 교수로 잘 알려진 인문학자 최준영 교수의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라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절반 이상을 읽을 때 까지도 글을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한다는 말이 당최 없다. 저자의 내가 살아온 세상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영화 <똥개>의 주인공 철민의 이미지와 닮았다. 추리닝에 잠바 때기(?)를 걸치고, 더벅 머리에 집 앞 슈퍼에 나온 동네 백수 형이 쓴 글 같다. 좀 더 좋게 보려 애를 써 본다면 오래된 동네 책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느낌이다. 어쨌든 신사의 이미지는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기억에 남는 글쓰기 노하우도 특별할 것이 없었다. 오직 하나, 매일 쓰라는 것 뿐이었다. 


  글로 옮기다 보니 최준영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두 책의 차이는 바로 그랬다. 콜린 퍼스와 동네 백수의 차이였다. 그러나 그런 탓 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콜린 퍼스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나는 많이 주눅들었던 것 같다. 내가 그 처럼 정갈하고 품위 있으며 격식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었다. 좋은 강의를 들었지만 머리 속에 기억 나는 말은 적었다. 하지만 동네 백수 형의 이야기는 어딘가 만만해 보였다. 뭔가 어설프지만 힘이 있었다. 메시지도 간단했다. 그냥 매일 쓰라는 것 뿐이었다. 어떻게 써야 잘 쓴다는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고, 정작 본인도 잘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동네 백수 형보다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 이었을까. 나는 동네 백수 형의 말을 들은 다음 날 부터 블로그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로 딱 3주가 되었다. 행동이 습관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는 최소한의 시간을 채웠다. 아내와 크게 싸운 날은 싸운 내용을 주제로 글을 썼고, 설날에도 노트북을 들고 가 보잘 것 없는 내용이라도 어쨌든 짬짬이 매일 한편의 글을 썼다. 콜린 퍼스는 나를 주눅들게 했지만, 동네 백수 형은 나를 행동하게 했다. 물론 아직도 어려움은 있다. 여전히 글을 읽는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습관처럼 숙제하듯 글을 쓸 때 느끼는 알수 없는 답답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글을 쓰려는 이유를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고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욕심’과 조금 부족해도 매일 써야 한다는 ‘다짐’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콜린 퍼스의 글이 잘 쓴 글이라면 동네 백수 형의 글은 매일 쓴 글이다. 나는 결국 동네 백수 형과 같은 글을 쓰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오래 붙잡고 고민한다고 해서 콜린 퍼스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네 백수 형처럼 오래 쓰다 보면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언젠가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마주할 거라는 기대감도 있다. 글로 하는 과대 포장은 언젠가는 벗겨지기 마련이다. 나는 담백하고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더 쓰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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