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20년 6월 14일 17시 06분 등록

공부보다는 다른 것을 하게 해 주세요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를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관찰의 인문학중에서

 

 

1학년 2학기부터 해넘이에 들어온 송규가 있었습니다. 덩치도 1학년에 비해 크고 듬직하고 얼굴은 순하고, 딱 보면 모범생이라는 인상이 풍겼습니다. “저런 아들 하나 있으면 듬직하겠다라는 말을 여러 선생님을 통해서 들었을 정도로 괜찮은 아이였습니다.

공부하기 위해 해넘이에 들어온 송규에 대해 과목 선생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수업 태도도 좋고 숙제도 꼬박꼬박하고, 글씨도 잘 쓰고, 잘 생기고. . 그런데 공부를 하는 만큼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

 

영어 시간에 들어가 과제 검사를 하면 꼬박꼬박 해왔습니다. 글씨도 반듯하게 알아보기 쉽게 정자로 잘 썼고 수학 노트도 보면 풀이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해를 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질문하면 대답을 정확히 못 했고 성적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물론 1학년 2학기 때는 자유학기제로 시험을 보지 않아서 시험과 관련 없는 영어 읽기를 많이 합니다. 영어로 된 짤막한 이야기들을 파트너와 교대로 소리 내서 읽기. 일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질문하고 대답하기, 토의하고 서로의 의견을 들으면서 사유하는 힘이 넓어지면서 깊어집니다.

 

2학년 1학기 시험을 치르고 나서 맘먹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Oh: 우리 송규가 수업태도도 좋고 과제도 잘 해오는데요. 그런데 어머님! 우리 송규 자 신이 노력한 것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데 알고 계시나요?

어머님: . 그러게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처럼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Oh: 송규가 작년 가을에 해넘이 한다고 들어왔는데, 본인은 공부하는 것 같은데요. 본인이 하는 만큼 성과가 나         오지 않아 힘들어하지 않나요?

어머님: . 송규도 열심히는 한다고는 해요. 그런데 본인이 하는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으 니 뭐라고 야단칠 수도           없고요.

Oh: 그러면 송규가 언제 가장 기쁘게 미소 지으며 활발하게 행복해 보였나요?

어머님: 초등학교 때 야구를 아주 잘했거든요. 야구를 할 때는 힘이 들지만, 본인은 즐겁고 재미있어했고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제가 야구 하지 말고 공            부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야구 할 때보다 많이 힘들어하네요.

Oh: 어머님! 그러면 송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게 낫겠어요. 안 되는걸 붙잡고 힘들어하는 것이         좋을까요?

 

나의 솔직한 물음에 어머님이 잠시 말문이 막혀서인지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습니다.

 

어머님: ! ~~~ 그래도 지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낫겠지요.

Oh: 어머님도 살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때와는 달리 지금은 지식을 외우는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시대는 아니라고 봐요. 70~90년대처럼 공부만 하면 취직도 되 고 잘 살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         니잖아요. 공부가 재능이 아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는 빵을 좋아하는데 밥이나 면을            주면서 맛있게 먹으 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공부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            는 건데, 그 공부가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고 무력하게 만들면 공부가 독이 되는 것과         같아요. 학교는 그냥 다니면서 송규가 좋아하고 몰입하고 즐 거워 하는 것을 시킨다면 어떨까요?

어머님: .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선생님처럼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생각해 볼 기회가 된 것 같습니              다. 감사합니다.

 

일주일 뒤 송규는 해넘이를 그만두었습니다.

부모라는 권력으로 아이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 또한 다름 아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다 저잘 되라고 하는 건데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게 정말 자녀를 위해 하는 일인지 아니면 부모인 내가 못다 이룬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해서 이뤄주기를 바라는 건지요? 혹시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에 부모님들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몇십 년 전의 방법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박진영이 k 팝스타 시즌 6을 끝내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아기지만 지난 6년간 k 팝스타 여섯팀 모두 우승자 중에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똑바로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가정교육을 집에서 했거나 자유롭게 자기 세계의 꿈을 그리거나 자유롭게 꿈을 펼쳤고 이 k 팝스타만큼은 노래 잘하는 친구를 뽑지 않았어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을 뽑았어요.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명 한명 특별한 아이들이 놀라운 창의력을 가지고 그렇게 커갈 수 있게 교육제도를 어른들이 잘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 201749SBS 방송-

 

저는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공부는 할 수 있으면 재미있게 하라고요. 공부해도 안 될 때는 무엇을 하면 자신이 즐겁고 행복해하는지. 자기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해 보라고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공부하라고. 생각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해보라고요. 자기 속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방법은 부딪치고 해보는 겁니다. 배운다는 것은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알아서 하나를 깨달아 가는 즐거움입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어제보다 한 걸음 나아가는 일입니다. 아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고 깨우치고 함께 알아보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공부란 꼭 책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요, 배움이란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외운다고 배우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신과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성취감을 느끼는지 일단 저질러봐야지요. 해 봐야 만이 그 길이 나의 길인지, 친구가 가니까 무작정 나도 그의 길을 따라가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남의 길을 가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오후에 출근하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저를 보고 숨이 차게 달려와서 환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3년 전에 만났던 송규였습니다. 야구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저 또한 밝게 웃으면서 말하는 송규를 보니 행복했습니다

IP *.158.120.236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08:51:33 *.52.17.234

대단하세요. 부모님께 보이는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지만 그 부모님도 오쌤의 진심을 알았기에 방향을 바꾼거겠죠. 

그런데 '해넘이'가 뭐예요?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10:27:13 *.158.120.236

제 말을 받아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연락을 드렸던 거예요~~^^

해넘이는 방과후 수업이름인데요. 해가 넘어가서 공부한다는 뜻으로

감성이 좋은 음악선생님이 네이밍을 하셨답니다. 

해넘이는 올해 꿈틀교실로 바뀌었는데, 코로나로 전혀 수업을 못하고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요^^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09:32:33 *.247.149.239

결과 중심적인 사고와 강도 높은 경쟁이 침범해선 안되는 곳이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학벌로 누군가의 역량과 재능을 너무 쉽게 평가하지 않는 연습이 중요할 것 같아요.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10:30:42 *.158.120.236

기존의 체재를 바꿀 수 없어도, 적어도 '나'로부터 사고를 점진적으로 바꾸기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그 아이들이 자라 그 다음 자녀로 이어지겠지요. 

교육은 긴 안목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나무를 키우듯이 그렇게요.

어니언 말대로 학벌로 역량과 재능을 쉽게 평가하는 곳이 학교인데.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15:59:57 *.118.70.149

아이를 정말로 보아낸 미경선배도 대단하고 그걸 인정해준 엄마도 너무 대단합니다. 아이가 피어날 수 있게 한 두 분에게 박수를!

프로필 이미지
2020.06.15 19:38:42 *.103.3.17

요즘 엄마들이 봐야 할 이야기네요. 저희 집... 아닙니다 .....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프로필 이미지
2020.06.17 15:22:49 *.247.149.23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잌ㅋㅋ

프로필 이미지
2020.06.21 19:13:08 *.105.8.109

자기 좋아하서 하는 것도 좋은데 좀더 몰입하면서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늘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죠 ㅎㅎㅎㅎ.

그래도 저희 때보다는 지금이 좋은 면도 많죠~~. 우리때는 너무 세상에 깜깜이였어요. 볼 것도 들을 것도 너무 없었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32 '나'에 대한 단상 [3] 불씨 2020.06.21 932
5131 1주1글챌린지_아이와함께하는삶_05 [8] 굿민 2020.06.21 901
5130 먹이 사슬을 뛰어넘는 우정 file [3] 정승훈 2020.06.18 936
5129 이토록 위험한 닭발 [3] 종종걸음 2020.06.15 914
5128 행복이 당신을 떠나갈 때 [11] 어니언 2020.06.15 922
5127 끝나지 않은 여행을 위해 [8] 희동이 2020.06.14 934
» 오쌤의 수업풍경- 공부보다는 다른 것을 하게 해주세요. [8] 지그미 오 2020.06.14 902
5125 1주1글챌린지_아이와함께하는삶_04 [3] 굿민 2020.06.14 966
5124 모든 나뭇조각은 진짜 [3] 불씨 2020.06.14 907
5123 판타지 그림책을 아시나요? file [5] 정승훈 2020.06.12 1052
5122 뭉근하게 오래, 비프스튜 [6] 종종걸음 2020.06.08 912
5121 망부석 [4] 희동이 2020.06.07 950
5120 나의 의도대로 사는 삶_월든 file [3] 어니언 2020.06.07 933
5119 오쌤의 수업풍경-꼬마 디다가 이긴 이유 [6] 지그미 오 2020.06.07 1029
5118 나에게 돌아가는 길 [2] 불씨 2020.06.07 964
5117 1주1글챌린지_아이와함께하는삶_03 [6] 굿민 2020.06.07 933
5116 슈렉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는 아름다움의 기준 file [4] 정승훈 2020.06.05 1058
5115 갈비탕으로 알아줘요 [7] 종종걸음 2020.05.31 938
5114 1주1글챌린지_아이와함께하는삶_02 [11] 굿민 2020.05.31 940
5113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독서시) [6] 어니언 2020.05.31 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