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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4일 11시 53분 등록

#27. 여자 그리고 군대


나는 사랑이 문학작품이나 영화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인생 그 자체가 문학 같은 과정은 없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슬퍼졌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주류들의 사회적 배경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제 3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아닐까. 군인으로서 <태양의 후예>는 가장 인기없는 군인의 인기가 올라가는 건 기분이 좋았지만 너무나 현실과는 다른 모습에 괴리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 외 다른 것에는 한눈을 팔지 못했다. 그러나 자전거로 통학하며 마주치던 또래의 여학생들에게 눈길이 자꾸만 가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그녀들은 전혀 관심이 없지만 왠지 모두 나를 보는 것 같은 그 느낌. 그러나 공부해야 하는 시기라 하물며 여자는 공부의 훼방꾼이기에 여자친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건 변명이다. 나는 그때 너무나 수줍은 남학생이라 여자 앞에서 얘기를 한다는 자체가 너무 어려운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그것도 고 3시절에 첫 소개팅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처음 만날 때의 내 심장의 느낌은 아직 지울 수 없다. 그런 그녀와의 만남을 위해 나는 담임선생님께 아프다는 이유로 조퇴까지 했다.(나는 그때까지 꽤 모범생이라 이런 거짓말이 통했다.) 자습시간을 빼먹고 공원을 거닐며 나누었던 얘기와 지금의 그 묘한 썸타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리더는 당연히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식의 아주 답답한 분위기. 나는 그 때의 우리를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소나기의 사랑이라 생각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해준 형의 충격적인 한마디. 그녀의 나에 대한 평가는 남주기는 아깝고 내가 하기에는 부족한 남자였다. 그래도 난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부족한 남자라는 단어보다는 남주기는 아깝다라는 말에 의의를 두었으니 말이다. 결국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의 나라면 제법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 뒤 나는 사관학교를 갔다. 주위의 여자는 없었다. 여자친구를 사귀더라도 주말에 한번씩 보거나 여의치 않으면 한달에 한번 볼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어쩌면 내가 병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 이런 경험일 것이다. 다르다면 다를 수 있지만 어쩌면 더 힘든 4년을 그렇게 보냈다.


동기들은 여자친구들을 그렇게 잘 사귀고 다녔다. 하물며 나보다 모든 것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찌질이들도 여자친구가 있었다. 왜 나만 없을까?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다. 그 당시 우리들은 외박, 외출에 목숨을 걸었다. 지금의 병사들이 왜 그렇게 악을 쓰고 휴가나 외출을 나가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에야 굳이 그런 외출 외박을 나가봐야 돈만 쓰고 그 시간에 학교에 있으면서 책이나 읽지 생각을 하지 그 당시에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부대 경계를 기준으로 안과 밖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와도 같다고 해야할까.(그래서 나는 병사들에게 조금은 과할 정도로 휴가를 많이 보내줬다.)


그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는 우리들의 천국등의 하이틴 드라마였다. 남녀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생활과 그들의 연애이야기는 너무나 부러운 단골 소재였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머리짧고 시커먼 놈들이 가득한 우리 학교가 그렇게 답답할 수 없었다. 사관학교도 축제를 한다. 그때 당연히 여자친구들을 초대하는데 여자친구가 와야 외박을 나갈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없는 동기들은 남아서 축제 뒷처리와 온갖 청소 등의 허드렛일이 주어졌다. 나와 같이 다니던 놈들은 하나같이 여자가 없었다. 정말 구차하게 여자친구가 있는 동기들에게 구걸하다시피 해서 겨우 파트너를 구했다. 급조를 하다보니 당연히 내 취향의 여자는 아니었다. 그렇게 외박을 위해 정말 노력했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 사귀었다. 그 닫힌 공간에서 여자는 나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 구원 그 자체였다. 자주 만나질 못하니 그녀와의 데이트는 전화였다. 그러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가 전부였다. 어렵사리 전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뒤에서 눈치를 주는 선배때문에 마음대로 말도 못하고 그저 몇 마디 안부를 묻고는 아쉬움을 뒤로 하던 그런 추억들이 새록새록하다.


그녀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 세상이 끝인 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받지도 않는 전화를 하는 것이었고 기껏해야 주말에 나가게 되면 그녀의 집과 주위를 하릴없이 배회하다가 학교에 복귀하곤 했다. 심지어 탈영까지 생각해보았지만 실제로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음이 나오는 행동이지만 말이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해서 너무 힘이 듭니다. 휴가 좀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고 하는 병사들이 사무실을 더러 찾아오곤 했다.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눈에 담긴 그 절절함을 애틋하게 여기면서 꼭 복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과 불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 보내주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올 때는 한결같이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했던 모양이다.

 

군대에서 여자는 신과 같은 존재다. 여자가 있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다. , 학벌 이런거 필요없다. 그리고 그에게 오는 편지는 더욱 그랬다. 왠지 가까이 지내면 여자친구를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희망 때문에 가까이 하고 싶진 않았지만 가까이 지냈던 기억도 난다. 오죽하면 군대 가기 전 준비물이 여자친구, 누나, 여동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거나 그녀가 기다려주기를 원한다. 나는 군대때문에 굳이 관계를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군대의 기간은 여자친구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그녀가 기다려준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이전에는 몰랐던 여자에 대한 생각을 주변을 돌아보면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눈에서 멀어지면 정리되는 관계가 있고 그렇지 않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관계가 달라졌다고 해서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장은 힘이 들고 죽을 것 같지만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을 뿐더러 고통에 비교적 잘 견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군대시절을 포함해 젊었을 때 사귀었던 여자와 결혼을 한 동기나 친구들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웃기지 않나. 그 당시에는 안 보면 죽을 것 같았고 세상에 무엇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사실 모든 남자와 여자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그 시절의 사랑은 그런거야 라고 얘기를 해도 젊은이들은 듣지 않는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으니 꼰대들의 말은 일단 부정하는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이 지긋한 노인분들이 나 어렸을때는 이랬다는 식으로 일장연설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얘기한다. “됐고요? 그래서요?” 라고 반문한다. 이처럼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있으면 거의가 다 자기들에게도 어린 시절이란게 존재했음을 짜증이 날 정도로 들먹이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얘기하곤 한다. ‘그것도 다 한때야라고. 언젠가는 그런 사소한 것에서 벗어나게 될 거야. 현실이 뭔지, 인생으로부터 깨우치게 될 테니까. 그러나 젊은이들은 소싯적의 한 순간이라도 그들에게 자기와 같은 때가 있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 백기를 들고 투항해 버린 연장자들보다 자기들이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있음을 믿고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녀관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조언도 불필요한지 모른다. 오로지 자기의 경험만이 답일 것이다.


남과 여, 어쩌면 이번주 책인 <무경계>에서 얘기하는 대극의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페르소나 수준의 스펙트럼에서 대부분의 남녀가 살기 때문이다. 그 스펙트럼에서 남과 여는 대극 중의 대극일 수도 있다. 남과 여 관계에서 선과 악, 고통과 행복이 나오니까 말이다. 그러나 스펙트럼을 돌아볼 수 있는 수준이 되거나 다음 스펙트럼의 수준으로 성장하게 된다면 비로소 깨닫게 되지 않을까. 남과 여는 대극이 아니라 상생의 존재임을.




IP *.106.20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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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1:56:28 *.18.187.152

이거 조회수 100 넘을 거 예언함. 제목도 완전! 기상씨 요새 그 분 왔군요. 글에 콜라겐 충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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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7:14:36 *.129.240.30

아... 약간 키스씬이 빠진게 살짝 아쉽네요 ^^;;  정말 읽다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군대에서 밤새 몰래 편지 읽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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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12:19:32 *.193.46.176

위의 글을 읽고 ......


이런 글귀가 있군요. 

됐고요그래서요?” 라고 반문한다.


영어로 이걸 표현해 보면, 

" I don't care. "  " so What " 과 비슷하다고나 할가요 ?.


나는 나의 자녀들이 사춘기 때 저 말을 쓰면 엄청 화를 내고 못 쓰게 했었는데 ....

차라리 욕을 하는게 낮지 않느냐고도 했었답니다.


이래서 꼰대 소릴 듣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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