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ggumdream
  • 조회 수 913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7년 12월 25일 09시 24분 등록

#29. 입대의 두려움


구부려!

“???????.”

구부려란 말 안들려. 총원 구부려!

무슨 말이지? 우린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할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대열 중의 한명이 상체를 허리 아래로 말 그대로 구부렸다. 지금도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

조교는 그제서야 이 말을 못알아듣는 걸 알고는 이내 엎드려 뻗쳐하고 소리 질렀다. 그제서야 우리는 엎드려뻗쳐를 했다. 이것이 나의 사관학교 입학했을 때 훈련소의 기억나는 첫 장면이다. 사관학교에서 구부려는 곧 엎드려 뼏쳐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사관학교를 가기로 결정하고 합격통지를 받은 후 입학을 할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누구도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일반대학처럼 똑같이 공부하고 약간의 군사훈련을 하는지만 알았다. 대학과 다르게 우리는 1월에 입학을 했다. 대학교 합격 뒤에 기다리는 그런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입소를 했다. 1994. 1. 15. 날짜도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만큼 기억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부는 진해로 갔다. 그때의 감정을 100% 소환하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던 날 무지하게 추웠던 기억이 나고 내가 살던 경주보다 더 시골스러운 진해의 모습이 생각난다.

많은 훈련소의 장면처럼 우리는 입학신고를 한 뒤 차례차례 머리를 밀었다. 그 시절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에 비치는 빡빡이 머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라도 길러보았다면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에 눈물이라도 나련만 그런 감정을 느낄 틈도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입고 온 사복들을 고이 접어서 박스에 넣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호명

, 특별대대 2중대 1소대 김기상 생도

이것이 이제 나를 대신하는 명칭이었다. 태어나서 나는 내 이름을 그렇게 많이 외쳤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호명!”

, 특별~~~김기상 생도

목소리 봐라, 지금 나랑 장난하나, 다시 호명!”

뭐 이런 식으로 목이 쉴 때까지 나는 반복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목소리가 유독 가늘고 작았기 때문에 조교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곤 했다. 차가운 바닷가에서 그렇게 혹독하게 신고식을 하고 첫날밤 2층 침대의 2층에 누웠다. 짙은 카키색의 모포를 그때 처음 봤고 난생 처음으로 이불을 각지게 깔았고, 누워서도 이불의 각이 흐트러짐이 없게 했다. 지옥같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 첫날은 뭔가 아주 홀린 듯 정신없이 흘러갔다. 25명의 동기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불이 꺼진 뒤 비상등만이 비치던 그날 밤. 나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감이 왔다. ‘, 이건 아닌데. 내가 생각한건 이게 아닌데. 어쩌지?’ 앞으로의 5주간의 생활과 그 이후 생도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두려움을 이래저래 느껴왔지만 이만큼은 아니었다. 그때 느낀 두려움의 감정은 내 육체와 정신을 모조리 지배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아직 내 머리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마 일반 병사들의 훈련소 입대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이 두려움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면 첫번째로 지금까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유로움 자체였다. 누가 내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는데 이 곳은 내 행동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고 그것이 바로 어떤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 등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군대에서의 모든 행위의 결과는 칭찬을 받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질책이나 벌을 받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  또한, 이런 일련의 생활들이 물론 끝이 있는 것이지만 그 끝은 너무나 멀리 있고 오늘도 내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아마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듯이 느끼는 원인도 다양할 것이다. 그럼 이런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항상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내가 과연 제대로 쓰고 있는건가? 의구심도 들지만 이것도 글이라고 썼냐는 그런 평가가 두려운 것이다. 이 훈련소 과정만 끝나고 자대를 배치받으면 두려움은 없어질까?     병장이 되면 두려움은 없을까? 아니다. 매번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 다른 두려움으로 매일매일을 보내게 된다. 다만 이 두려움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것은 말이 쉽지 참 어려운 것이다사랑이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듯이 감정 또한 그런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감정 수업을, 감정 연습을 한다면 나아지지 않을까?

IP *.106.204.231

프로필 이미지
2017.12.26 11:02:44 *.18.187.152

끝까지 읽게 되는 서두의 힘이 좋은데?

글에 군기가 빠져서 말랑말랑~~ 나같은 민간인이 읽기엔 좋다.  

아래 기사 보니까 '병영 및 교도소 등 문학향유 소외지역에 대한 문학체험 기회 확대를 위한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라는 말이 있어 기상씨 생각 나더라구요. 정말이지 잘만 쓰면 기상씨 책이 유용하게 잘 쓰일 듯. 그 날까지 화이팅!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421&aid=000310709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32 [칼럼 #39] 사회복지사로부터 듣는 보호관찰소의 실태 (정승훈) 정승훈 2018.03.18 910
5131 이해와 오해 [3] 박혜홍 2018.07.09 910
5130 11월 오프수업 후기 정승훈 2018.11.19 910
5129 오쌤의 수업풍경- 상처는 자기가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3] 지그미 오 2020.07.20 910
5128 칼럼 #18 약속_윤정욱 [3] 윤정욱 2017.09.11 911
5127 #19 - 소원을 말해봐(이정학) [5] 모닝 2017.09.18 911
5126 <뚱냥이칼럼 #24> 뚱냥이 에세이-'담다' 등 2편 [1] 뚱냥이 2017.11.13 911
5125 칼럼 #26) 추억을 곱씹으며 힘을 내야지 file [3] 윤정욱 2017.11.26 911
5124 10월 오프 수업 후기 정승훈 2018.10.23 911
5123 #5 나의 이름은..._이수정 [5] 알로하 2017.05.15 912
5122 나쁜 상사에게서 배웁니다 [5] 송의섭 2017.07.24 912
5121 [칼럼 #14] 연극과 화해하기 (정승훈) [2] 정승훈 2017.08.05 912
5120 #15 - 목적지만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가는 길이 목적인 여행 [5] 모닝 2017.08.14 912
5119 #17. 주택이 주는 즐거움 file [6] ggumdream 2017.09.04 912
5118 <뚱냥이칼럼 #18> 뚱냥이 에세이 - '한 걸음 더' 외 1편 [2] 뚱냥이 2017.09.11 912
5117 <뚱냥이칼럼 #19> 뚱냥이 에세이 - '마당 넓은 집' 외 1편 [4] 뚱냥이 2017.09.18 912
5116 9월 오프모임 후기_이수정 알로하 2017.09.26 912
5115 #22 - 치료약이 없는 바이러스 file [2] 모닝 2017.10.16 912
5114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912
5113 이름 남기기 박혜홍 2018.10.08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