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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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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7일 11시 14분 등록

새해 읽은 첫 책은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이 책 저자들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인용하여 몇 번씩 강조하고 있다. 당연하다.

새해에는 하루하루 시간을 아껴 책을 읽으리라.

그러나 작은 계획조차 그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5분 뒤의 일도 모른다.

왜냐 하니 연말에 새해 새 날을 맞기 위해 세운 이런 저런 결심은 딸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부터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갓 세 돌이 된 외손자가 독감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격리를 위해 둘째를 우리 집에 1주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가 살림으로 가득 찬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와 돌이 안 된 아가를 떨궈 놓고 갔다.

1231일 아침이었다. 문득 내가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가를 돌보면서 책 읽고 글 쓸 수 있을까? 소설가 조성기씨 글이 떠올랐다.

죽음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일상이었습니다. 아버지노릇, 남편노릇, 인간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일상으로 그리는 이야기, 그게 생인가 봅니다



    

1231일은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날이다. 그날만큼은 온 집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고요한 아침 시간에 성경읽기와 글쓰기가 올해는 추가 되었다. 그러나 아가를 돌보느라 시작도 못했다.

느닷없이 엄마와 떨어진 아가는 엄마를 찾느라고 울고, 젖 생각이 나는지 울고, 배고픈지 울고, 울다가는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10.5Kg인 아가를 들었다, 놓았다, 업었다 하면서 이유식도 만들어 먹였다.

오랜 시간을 걸려 이유식을 먹은 아가는 곳곳을 헤집고 돌아다니느라 온 집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이 되어버렸다.

아가가 낮잠을 자거나 밤에 재운 후 급히 책을 읽었다.

 

사랑이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아가와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

맑은 눈동자와 단풍잎 같은 손과 분홍잇몸에 하얀 젖니를 볼 때 이것이 행복이다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이 마주치면 소리 내어 웃는 아가를 볼 때 내 마음에 충만한 기쁨이 왔다.

이렇게 몇 일 간의 행복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왔다.

아가가 가고 나니 이제야 온 몸이 아프다. 어깨가 칼로 벤 듯 아프다.

살쪘어도 아프지 않았던 두 무릎이 시큰거리고 손목도 쿡쿡 쑤신다.

지금도 온 몸이 박하사탕처럼 화하다.

 

옛날에는 대가족 속에서 육아를 하니 덜 힘들고 가족 간에 행복한 추억이 많았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가정의 육아보다는 각종 시설을 찾아다니다보니 오히려 가족 간의 행복과 추억도 많이 사라졌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우리 두 애들을 키워주셨던 엄마 생각이 나서 이모께 전화드렸다.

외삼촌은 찾아뵈었다. 92세가 되셨음에도 주름도 별로 없고 그대로시다. 총명도 그대로시다.

유머와 위트도 여전하셔서 몇 번 폭소를 터뜨렸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말씀해 주시며 벌써 다 읽었다그러시길래 달라고 했더니 거절하셨다.

다행이다.

방 가득 책이 쌓여 있는데도 작은 책 하나 안 주시는걸 보니 무척 정정하신 것이다.

그만큼 생에의 의욕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시아버님께서는 책을 이제 못 읽겠다 하시며 책들을 내게 주신지 얼마 안 되서 돌아가셨던 일을 떠올린다.

 

강릉에 사시는 큰댁 큰오빠께 안부를 전하니 무척 기뻐하시며 네가 최고라고 하신다.

친척 간 전화한통, 안부 묻는 것, 사정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남을 유쾌하게 하는 것이며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진리는 멀리 있어서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남이 기쁘면 내가 기쁘다.

자주 남을 기쁘게 하는, 작은 사랑부터 실천하는 2019년이 되자.

 

6번의 항암주사와 유방암 수술을 무사히 끝낸 친구가 밴드친구들을 만나자고 한다.

병 중이었지만 밴드를 했기에 연습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며 올해는 더 연습을 하자고 힘을 낸다.

갖가지 계획과 연습, 만남에 대한 기쁨으로 다들 들떴다. 올해 연말, 몇 군데에서 벌써 초청을 받은 상태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눈을 질끈 감고 몰입을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런데 합주연습도 시간을 많이 요한다. 둘 다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산의 모 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도 서울로 와 합주를 하겠다는데 친구들에게 이제 못하겠다는 얘기를 할 수 없다.



친구들이 밴드를 원하기 때문이다. 능력도 안되면서 애기 보며 책 읽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닥쳤다.


친구들과 얘기하면서도 내 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글로 가득했다.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찬미하고 풍자하며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때문에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며 큰 도를 듣지 못하여,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시를 글로 바꿔볼 수 있겠다.)


그래도 한번 해보리라. 시간을 쪼개 보리라. 좀 늦어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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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9 15:20:36 *.130.115.78

해홍샘의 화이팅,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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