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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3일 21시 01분 등록
워킹데드(Walking Dead)는 미국 AMC의 유명 드라마로 좀비(Zombie)와 싸우는 소수의 인간들의 삶이 주된 스토리다. 모두가 좀비인 세계에서 잘 살아갈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도 좀비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또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의 분투가 이어진다.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역시 이 세상을 구성하는 다수를 좀비라고 가정한다면 비정상적인 인간들과 정상적인 좀비들 사이의 사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밖으로 나가보면 거리에는 온통 좀비들 천지다.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스마트폰을 주시하며 인파 속의 수많은 한 점으로 매몰되어 가고 있다. 간혹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지만, 좀비들은 머리위에 GPS 안테나라도 달린 것처럼 자유자재로 거리를 활보한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나면 모두들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뻘쭘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관심없는 시시껄렁한 인터넷 연애기사라도 클릭해야 한다.

일터에서는 어떤가? 거리에 워킹데드(Walking Dead)들이 가득하다면 우리의 사무실에는 워킹데드(Working Dead)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들이 무심하게 반복하고 있는 그 무엇인가를 우리는 '일'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관심사는 과업으로서의 일과 과업이 아닌 일 - 다시 말해 퇴근후, 그리고 주말동안의 활동 그 두가지로 나뉜다. 워킹데드(Working Dead)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종의 죽음 상태로 존재하며, 오로지 주말에만 부활한다. 워킹데드에게는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특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활기는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본능을 제외한다면 모든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외부에서 제어받는 것이다. 그들은 연말성과급 내지는 월급여가 나오는 잠깐의 기간동안 인간과 유사한 행동패턴을 보이지만, 그 유지기간은 극도로 짧다. 그들은 지극히 수동적인 객체로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기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활기를 생성하지 못한다. 간혹 부장이나 상무 따위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흉폭하고 힘이 센 좀비들에게 치명상을 입고 반사 상태에 빠지지만, 구멍난 몸뚱아리에 술 몇잔 부어주면 아침마다 다시 어기적 어기적 걸어서 수많은 좀비떼들에 섞여 사무실로 향한다. 

또 하나 사무실에서 걸어다니는 좀비에게 발견되는 않는 인간적 특질 하나는 바로 '생각'이다. 좀비는 뇌가 파괴되면 죽지만, 실질적으로 뇌는 사고작용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존 방식'이라는 관성과 쾌락이라는 본능만이 좀비에게 존재한다. 맹목적으로 관성에 의해 걸어가다가 좀비의 특징대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면 소리가 난 곳으로 우르르 방향을 바꾼다. 그런 행동패턴을 좀비의 용어로 트렌드 내지는 유행이라고 불린다. 이 추운 겨울 좀비들의 트렌드는 롱패딩이다. 인간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롱패딩 하나는 걸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개발자 세계에도 좀비들이 존재한다. 개발자 좀비들의 대표적인 분비물은 데드 코드(Dead Code)다. 죽은 것이 살아 있는 것을 만들수 없듯이, 좀비들은 여기저기 설쳐대며 수많은 데드코드들을 만들어낸다. 데드코드란 말 그대로 죽은 코드다. 코드는 만들어지자마자 데드코드가 되지는 않는다. 좀비들이 데드코드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좀비들은 살아 있는 코드들을 데드코드로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마치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되듯이, 그들이 건드린 코드는 썩어가고 차츰차츰 죽어간다. 여기서 데드코드라는 개념을 단순히 소프트웨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코드를 의미하는 협소적인 뜻이 아닌 비정상적이거나 가독성이 확보되지 않은 코드까지 확장한다면 많은 개발자들이 좀비 개발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좀비 개발자들은 코드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좀비에게 꼭 물려야 좀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가 되듯이, 대다수의 개발자가 좀비인 개발조직에서는 정상인이 버텨낼수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는 제정신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공기중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듯이, 서서히 최후의 한 사람까지 좀비가 되고 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대다수의 좀비에 저항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용감한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런 인물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인간이 승리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인간이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좀비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직장과 개발조직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끝까지 사람으로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우두머리마저 좀비가 된 상태라면 울타리를 부수고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 

세상을 좀비천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원천차단이다. 좀비의 특성상 한번 불어나기 시작하면 인간의 힘으로 그 증가세를 막을수는 없다. 무리 중에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색출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자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음과 같은 초기 증세를 보인다.

  • 무력감을 느낀다. 이 무력감은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 코드 컴파일만 되면 구현이 끝난 것이고, 동작이 되면 검증이 완료되었다고 착각을 시작한다

  • Copy & Paste를 남발한다

  • 코드에 주석(Comment)를 달지 않는다. 코드 안에서 익명성을 좇기 시작한다.

  • 드문 사례이지만 소수의 악성 좀비들에게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하는 증상이 발생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아직 완벽하게 감염되지 않은 상태다. 뇌까지 바이러스가 파고들기전에 팔을 잘라내던지 다리를 잘라내던지 하는 증상치료를 하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완치를 하려면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코드(Clean Code)를 계속 접하게 해주어야 한다. 더러운 코드는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다. 깨끗한 코드에 계속 노출시킴으로써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일단 억제할 수 있다. 

그 다음은 프로세스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자발성이 많이 감소된 상태다. 강제로 프로세스를 통해 인간의 행동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코드 리뷰, 유닛 테스트, 주석 처리 등을 프로세스에 맞춰 강제하게 되면 처음에는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이게 되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는 호전될 수 있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부류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넌 경우다. 그런 경우 어쩔수 없다. 제거라는 단어가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들은 좀비다. 다른 인간들을 공격하기 전에 처단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자. 난 인간 개발자인가? 좀비 개발자인가? 자발적 직장인인가? 워킹데드인가? 모든 것은 시작하기에 앞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법이다. 생존전략을 결정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생존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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