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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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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06시 39분 등록

#26.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둘러서 하는 말이다. 결국은 안하겠다는 말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때, 또는 상사가 지시를 했을 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본 적 있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순종적인 아들이었고 직장인이었기에 누군가가 얘기하면 절대 ‘NO’ 라고 얘기 해 본적이 거의 없다. 그렇게 40년간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누군가가 부탁을 하거나 얘기를 하면 거절을 잘 못하는 편이다. 웬만하면 내가 좀 손해보더라도 해주는 입장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일이 마음속에서 내가 왜 이 고생을…..’이라는 생각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곤 했다.

얼마전 <필경사 바틀비>라는 책을 읽었다. <모비딕>의 허먼 멜빌의 1853년 단편이다. 그 당시 타자기도 없던 시절이라 변호사 사무실의 모든 기록은 필경사라는 사람을 고용하던 시대였다. 변호사 사장은 일이 많아져 필경사 한 명을 더 고용한다. 필경사는 필사를 본업으로 하지만 변호사의 고용인으로 오늘날의 회사원처럼 그 밖에 다양한 지시를 수행하는 것이다. 출근 3일째 되는 날 변호사는 신입사원 바틀비를 불러 원본과 사본의 대조작업을 하자고 얘기했다. 그 순간 바틀비는 이 책의 유명한 대사인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do)”를 외친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이 말에 아연실색을 하고 만다. 이런  황당한 대꾸에 변호사는 기가 막히지만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고 만다. 이 대사를 접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고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65년 전에 출판되었다. 놀랍지 않나.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하나 있다. 한창 잘 나가던 대위 시절 소위들을 교육시킬 때이다. 소위 한명이 지시했던 업무를 하지 않아 단체 기합을 줄 때였다. 소위들을 집합 시켜놓고 왜 동기를 잘 안 챙기냐? 너희들만 잘하면 되는가?” 라고 일장 연설과 함께 기합을 주었다. 그때 갑자기 소위 한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대위님, 잘못은 저 친구가 했는데 왜 저희가 기합을 받아야 하나요? 이건 옳지 않습니다.” 그때 사실 나는 한 방 크게 먹었다. 그 친구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교육받은 방식대로 아무 생각 없이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래 전우는 그런 것이고 동기는 더 그런 것이다라는 등의 좋은 말로 얼렁뚱땅 그 자리를 모면했지만 그 친구의 말은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다.

누구나 직장생활을 웬만큼 하게 되면 본인 업무에 대해 어느정도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상사가 그 업무에 대해 지시를 하면 그게 말도 안되는 지시인지 아닌지를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나는 상사의 그런 말도 안되는 지시에도 그건 아닙니다를 얘기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검토해보겠습니다였다. 항상 이 말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되면 된다 안되면 안 된다라고 얘기하면 금방 끝날 것을 상사를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가져와서 몇 날 며칠을 안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찾아서 보고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한마디로 완전 비효율적인 삶을 산 것이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다. 조금만 더 상황을 확대시켜 보자. 요즘 이슈 중에 하나가 국방부의 댓글 사건이다. 그 사건의 핵심인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구속되었다.(지금은 풀려났다.) 나는 사건의 진실여부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뼛속까지 군인이라고 평가받았던 그가 이제는 이 사회에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사실이 밝혀져야 알겠지만 그가 그런 일을 했다면 분명 독자적인 결정은 아닐 것이다. 군인으로서 정치관여는 안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군인으로서 그 같은 결정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결국 상부의 지시없이는 수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의 전현직 전략사광관의 최근 발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 전략사령부는 7천여 기에 달하는 핵무기를 관장하는 조직이다. 만약 대통령이 불법적인 핵무기 발사 지시를 내리면 이에 저항(resist)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대통령의 발사 명령이 적법할 때만 이를 수행할 수 있다면서, 만일 명령의 적법성이 불확실한 경우에는 자신 같으면 명령 실행을 미루고 주변 참모에게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군인이면서 참 대조적인 모습이다.

군에 있을 때 내가 자주 생각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영화 <고지전>을 통해서 더욱 선명해진 일이다. 고지전에는 상관살해 장면이 나온다. 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상관을 살해한 이유를 보면 이해가 간다. 모두가 죽을 것이 뻔한 임무를 수행하려는 중대장을 총으로 쏴 죽인다. 사실 중대장은 아무 잘못이 없다. 중대장은 상부에서 나온 지시를 수행하려는 것 뿐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에 빠졌다. 200명에 가까운 부대원을 지휘하면서 상부에서 부당한, 어쩌면 죽을 것이 뻔한 지시가 나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나로서도 답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부당한 지시를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대인과의 관계에서 목격을 하거나 경험하게 된다. 이 부당한 지시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암묵적으로 순종을 강요해왔다. 이번 주 읽는 책 <그림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쩌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무의식의 그림자이자, 개인 무의식의 그림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얘기하듯이 그런 지시에 최소한 거부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런 무의식에 대한 의식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런 상황을 가정해서 가끔 항명하는 꿈을 꿔 보는 건 어떨까, 사소한 일에서부터 한번씩 거부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커피 한잔 부탁해?” 라는 지시에 '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라고 싸가지 없는 말을 속으로 되뇌기보다는 선배님, 제가 선배님 취향을 몰라서요. 그리고 커피는 셀프에요하고 상냥하게 얘기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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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1:38:02 *.18.187.152

세상에~!! 지금까지 읽은 기상씨 칼럼 중 제일 좋네요!  제목도 좋고, 단편소설, 본인경험, 영화, 한국과 미국의 현 상황, 이번 주 읽은 '그림자'까지 솜씨 좋게 버무렸네요. 이건 뭐 부대찌개같은 글인데. 이번 주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 분이 왔네. 이 정도 톤으로 꼭지글 모이면 꽤 괜찮은 책 나오겠어요. 부럽다 ㅠ_ㅠ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이거 유행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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