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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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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09시 48분 등록


요 얼마 전, 여당 국회의원이 국내 공항에서 한 갑질이 요즘 세간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 일을 보면서 몇 년 전, 나의 부끄럽다 못해 추한 행동이 떠올랐다.

 

나이 먹고 조금씩 철이 들면서 나름대로 언행을 조심해 왔다.

게다가 말이 많은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더욱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학교에 재직 시에는 수업종의 첫 음이 울릴 때 제일 먼저 벌떡 일어나서 발걸음도 가볍게, 없는 허리를 꼿꼿이 세워 교실로 갔다.

학생들에게도 수업 중에는 늘 존댓말을 쓰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썼고, 나름 신독(愼獨)을 실천하여 아주 작은 거짓말조차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부정적인 말, 헐뜯는 말, 비난과 비웃기, 수군수군하는 말, 화내는 마음을 가질까봐 조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네 마음, 네 중심을 다 알고 있다고 하신 말씀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의 잘못된 언행은 이미 예전에 내가 했던 것으로 누구를 흉볼 일도 아니어서 오히려 그들의 모습에

비친 내 자신을 회개하기도 했다. 화낸 적이 언제였더라 하며 그렇게 저절로 마음이 편하게 된 것이다.

평안하뇨? 하시는 예수님의 물음에 예 그렇습니다’  말할 수 있겠다 생각했던 어느 날, 아직도 내 안에 헐크가 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시골 공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34일의 짧은 자유여행을 마치고 출국하려던 참인데 엑스레이에 뭐가 보였는지 배낭을 열자고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철저함과 성실함에 늘 감탄을 하는 나는 하이 도죠~’ 하면서 엷은 미소까지 띄고 가방을 건네주었다.

조용한 일본 숲길을 걸으려고 왔던 여행이어서 가진 물건도 없었고, 남편과 왔기에 화장품도 선블럭같은 것 몇 개 들고 왔을 뿐이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공손하게 내 배낭을 들여다 아니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말도 안 해주고 자꾸 더 뒤지는 것이었다.

작은 배낭이 다 뒤집어지고 빨지 않은 양말 한 짝이 튀어 나오기까지 했다.

(뭣 때문인지 말을 해 말을!)

성질 급한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니 내 나라에 내가 돌아가는데 당신들이 무슨 참견이예요?’ 하며 큰소리를 내다가 급기야는

그 추하고도 진한 욕을 뱉고야 말았다.

학교에서 남학생들에게 수없이 들으며 (근래에는 여학생들에게도 종종) 그런 말하지 말라고 지도까지 했던 그 추한 단어에 스스로 액센트까지 집어넣어 자가발전까지 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공항에 0파아하알~~ 하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

30여년을 갈고 닦은 저음의 분노에 찬 욕설이 작은 시골 공항을 뒤흔들었다.

그리곤 혼자 씩씩대느라 뒤에서 남편이 뒷정리를 조용히 하는 줄도 몰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고 남편의 얼굴이 벌개져 있었다.

 

당신 미국 공항에서 이러면 총 맞는다!’

 

나는 이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이 미국 공항에서 벌어지면 내가 순간적으로 어떻게 행동했을까?

실제 비슷한 일이 미국공항에서도  있긴 있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지문이 잘 안 찍혀서였나 공항직원이 나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저 쪽에 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나름 참고 꽤 오래 기다렸는데도 아무 조치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영작을 한 후 직원에게 다가갔다.

와이 아이 스테이 히어?’ 내 머리끝은 그의 배 쯤에 온 것 같았다. 그가 나를 힐끗 내려다 보더니 무표정하게 또 자기 일을 했다.

조금 기다리다보니 슬슬 화가 나는 증상이 생겼다. 숨이 차지는 것이었다.

나는 또 와이 아이 스테이 히어?’ 하며 그 다음엔 양쪽 눈썹 높이를 달리 해 보았다. 그랬더니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턱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만 속으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썬 오브 비치!’ 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대담하게 큰소리내고, 시시껍적한 화장품을 내팽개치는 난동수준의 짓을 할 수 있을까? 치사하게 미국이라고 겁먹고 시골공항이라고 우습게 봤나 내 마음이 궁금해졌다.

500엔 짜리 두 개를 사면 그들은 굳이 계산기로 500+500을 한다. 그 때 느꼈던 묘한 열받음은 무엇인가?

그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한다. 그 규정을 내가 어긴 것인데 왜 화를 내는가?

내 머리 속에 미국은 총을 쏘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의 규정을 존중하고 메뉴얼대로 행하는 그들의 일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규정이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도 수치스러움을 당한다.

그런데 신자라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복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내 마음의 헐크부터 내 마음의 적부터 싸워 이기지 않으면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13: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IP *.48.4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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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11:18:15 *.250.40.147

내안의 헐크 ㅎㅎㅎ 재미집니다. 저도 운전중 가슴철렁한 끼어들기를 당했을때, 상승된 분노게이지를 동력으로 저의 무의식은 상대편 차를 받아서 벼랑끝으로 밀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절제된 이성은 그냥 클락숀 한번 울리고 O파하할~하는 파공음 한번으로 상황을 종료시키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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