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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1일 08시 46분 등록

지난해부터 일 때문에 제주도를 들락날락 하던 중 틈틈이 제주도를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왜 제주도로 여행을 오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제주도를 그 전에 안 와 본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는 2 3일 짧은 일정에 정해진 코스를 돌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동남아를 가는 해외여행 비용 대비해서 훌륭한 관광지란 느낌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여행이 아니라 일 때문에 방문한 제주도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였다.

 

그때의 끌림으로 이번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두 아이와 함께 제주도 한달 살기에 도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하나 하나 준비해 가는데, 한달 살기는 말 그대로 살기였다. 한달이 어떻게 보면 짧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를 해 보니 여행과는 달랐다.

일단 준비해야 할 물품도 여행과는 달리 살기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추가되었다. 실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야 했다. 선풍기부터 요리를 하기 위한 식기세트 그리고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밀폐용기까지 그야말로 작은 이사를 방불케 하는 준비였다. 여행을 위한 숙소가 아니고 살기 위한 방을 얻어서 가는 것이기에 차이가 발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첫날 일정은 역시 이사 온 사람들의 행동과 비슷했다. 일단 집 근처의 지형을 익혀야 했다. 가장 가까운 마트 위치를 확인하고, 도서관을 찾아가보고, 버스 정류장을 체크하고 집까지의 걸음거리 시간을 재 보았다. 그 외 살아가는데 필요한 빵집, 편의점, 주유소 등의 위치를 파악하며 각 위치마다 집까지의 거리를 재보면서 마을을 한 바퀴 노는 것으로 첫날의 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달살기의 두 번째 날, 집에서 가까운 함덕 해변 아침 산책을 시작으로 잠깐 마트에 들려서 필요한 먹거리를 사고 오후에 함덕해변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잠깐 잠을 청하고는 저녁을 먹고 다시 함덕 해변으로 천천히 아이들과 나갔다. 해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놀이터에 들려서 새로운 친구 사귀기를 시도하였다. 놀이터에서 만난 함덕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통해서 많은 현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들이 함덕 해수욕장 근처에서 베이커리를 하는 아이는 정작 부모님들이 바빠서 방학 중엔 학원을 몇 개 다닌다고 했다. 아니 이럴 수가! 서울에서까지 찾아오는 함덕 해변을 눈 앞에 둔 아이가 정작 방학 때는 물놀이보단 학원을 몇 개 다닌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다시 보기를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와 두 번째 날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해변에서의 물놀이와 주변 산책을 반복하면서 한달 살기의 여유를 즐겼다.

 

네번째 날에는 눈 뜨기 전 새벽부터 잠결에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물놀이만을 고대하던 아이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비가 온 김에 주위의 숲 산책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주변에 유명하다는 비자림을 가보기로 했다. 비자림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멀리서 보는 제주바다가 평소보다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늘 순한 모습의 착한 아이 같은 제주바다만을 보다가 조금 화가 난 듯 쏘아 대는 바다를 보니 그 또한 색다른 제주 바다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하는 느낌과 바다는 역시 바다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비자림 숲은 비 오는 날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운치가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나뭇잎과 운무가 내리 듯 안개가 쌓여 있는 숲길은 왠지 아늑하기 까지 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숲길을 걷고 나왔다. 제주는 더운 날은 더운 날 대로 해변의 정취가 좋았고 비가 온 날은 비가 온 날 대로 숲 속의 아늑함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본 바다는 여전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물놀이는 힘들겠다고 설득했다. 아이들도 화가 난 듯 거칠게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빠의 말을 수긍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잠깐 함덕 해변을 둘러보고 가자는 아내의 말에 차를 잠깐 돌려서 함덕 해변으로 향했다. 그런데 함덕 해변에 도착해 보니 물놀이를 위한 모든 장비를 다 갖추고 바다를 향하는 한 가족들이 보였다. 순간 ! 오늘은 바다에 들어가면 위험할 텐데란 생각을 하면서 바닷가에 가보고 안 들어가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해변을 둘러보는데 자세히 보니 그런 가족들이 몇몇이 더 보이는 것이었다. 그 가족들도 물놀이를 위한 풀 세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똑 같았고 보채는 아이와 뭔가 조급한 듯한 아빠의 얼굴 빛도 엇 비슷해 보였다.

아마도 오늘 제주에 온 가족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2 3, 3 4일 일정으로 제주에 온 가족이라면 오늘 비 오는 제주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여름 제주는 우리 머릿속에 남태평양의 한 섬과도 같은 이미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비가 오는 제주라니, 그것도 이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제주를 휴가 떠나기 전 상상하면서 오는 여행객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 당황스럽고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깝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떻게서라도 바다에 들어가려고 저렇게 준비를 하고 지금 이 날씨에 바닷가에 나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여러 차례 제주를 여행으로 찾아왔던 나의 모습이 떠 올랐다. 공항에 도착해서 바쁘게 렌트를 하고 바로 관광지로 향한다. 그렇게 주요 포인트를 몇 개 찍고 나서 미리 검색해 놓은 맛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유명한 곳이기에 식사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거나 늦게 가야 한다. 그러니 가족들을 조금은 재촉해서 지금 떠나야 한다. 그렇게 차를 몰고 찾아간 맛집에서 30여분을 기다려서 음식 맛을 보고 만족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빨리 자리를 비워줘야 하기에 일어나서는 늦은 저녁 숙소로 향한다.

그래 나의 여행 역시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지금 비 오는 제주를 보면서 여름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하늘을 원망하고 있는 저 가족들은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다.

아니 사실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달 살기로 결심하고 오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나는 여기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오늘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즐겁고, 내일 다시 해가 뜨면 그때는 또 다시 바다로 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나 바닷가에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오늘이나 내일 뿐이라면 또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당연히 조급해지고 이 시간이 아쉬운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행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여행이란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열심히 산 일상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 또한 여행을 위해 드리는 돈도 돈이지만 그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맘이 급해지는 것 같다. 볼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니 오히려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 느리게 머물면서 여행에 대해서 하나 더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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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10:36:40 *.124.22.184

역시나 제주살기가 칼럼이군요. ㅎㅎㅎ

비오는 날 도서관 가보세요. 예전에 아는 분이 전면유리로 된 도서관에 비오는 날 갔는데 너무 좋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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