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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30일 17시 00분 등록
에볼루션(Evolution)  
변화가 아닌 진화

 십여년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야, 너 거의 안 변했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야." 
마흔살이 넘어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기분좋은 일이다. 물론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허언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 진짜 그런가 하는 흐뭇한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정작 그렇게 말한 친구는 혼자 세월의 무게를 다 짊어진 듯 하다. 벌써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히고, 흰 머리가 잔뜩이다. 인위적인 노력으로 외모의 변화를 늦추는 것보다 나이에 맞게 정상적인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물건을 가만히 놔둔다 해도 변화는 일어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은 변한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 무질서도다. 음식은 오래 놔두면 상하고, 평범한 사람은 밥먹고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으면 살이 찐다. 이렇듯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지구의 자전을 느끼지 못하듯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는 순방향으로의 변화의 흐름에 무감각한 것 뿐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역방향으로의 의도적 전환을 우리는 '변화'라는 단어로 인식한다. 그 '변화'의 관념은 지금의 자기 자신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낸다. 나 자신이 극복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이제 변화라고 하면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변화라는 것에 단점의 극복을 떠올리게 된다. 부정적인 성격은 그 자체가 결함이므로, 부정적인 성격을 극복해서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꿔야 한다고 많은 위인들과 사상가들이 떠들어댔고, 우리 역시 철썩같이 이를 믿고 본인의 부정적인 단점들을 극복하지 못함에 좌절했던 게 사실이다.

 진정한 변화는 가장 자기다움을 찾아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단점을 보완하는데 쏟아부었던 정력을 장점을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 이는 단점이라는 역방향으로 변화가 아닌 장점이라는 순방향으로 변화다. 물론 장점을 상쇄하는 치명적인 단점은 어느정도 보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변한다. 본인의 장점이라는 순방향으로의 의식적인 변화가 곧 진화(Evolution)다.

 진화론에 있어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의 용불용설이 주장하는 바는 자주 사용하는 기관이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 발전하며,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된다는 것이다. 기린이 높은 곳에 있는 잎파리를 먹기 위해서 목을 늘이다보니 목이 점점 길어졌다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획득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된다는 용불용설은 오류가 있으며 생존에 적합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자연선택설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종의 관점에서 용불용설은 잘못된 진화론이지만, 한 개체나 개인에 있어 용불용설은 진화론의 정설이다. 개체가 단점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방법은 장점의 강화 외엔 없다.

 우리는 가끔 장애인의 위대한 도전을 목격하곤 한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수영대회에 출전하여 감동적인 역주를 펼친다. 2013년 9월 21일 뉴욕 허드슨강에서 펼쳐진 리틀 레드 라잇 하우스 수영대회에서 '로봇다리' 김세진군(당시 17세)은 전체선수 280명중 21위, 18세 이하에서는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발과 한쪽 손의 손가락 3개가 없는 장애를 가진 세진이는 이날 마지막 피니시라인에 골인할 때는 의족이 없어서 기어서 결승점을 끊어야 했다. 그 사이 일반선수 10여명이 그를 앞질러서 결승점에 들어왔다. 정상적으로 달릴 수만 있었다면 10위 내 입상도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결승점을 코 앞에 두고 세진이가 힘겹게 기어오는 모습을 본 어머니와 코치진은 끝내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치명적인 결함을 극복한 기적의 드라마에 찬사가 이어졌다. 세진이는 없는 두 다리를 이용해서 수영을 하지 않았다. 세진이는 남아 있는 두 팔을 사용하여 불굴의 역주를 펼쳐 보였다. 남아 있는 두 팔은 수영이라는 것에 있어 세진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의 역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변화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단점을 그 대상으로 할 수도 있으나 진화는 언제나 장점만을 기반으로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진화를 통해 살아남았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모방해야 할 자연의 섭리는 진화의 프로세스다. 때론 변하지 않고 현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한 진화의 모습이기도 하다. 철갑상어와 같은 고대어들은 수천만년전에 진화를 끝낸 모습으로 자연계에 존재한다. 이것이 고대어가 수천만년동안 진화한 방식이다. 불필요한 변화를 억제함으로써 순방향으로의 진화를 이루어낸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변화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진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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