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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7일 20시 48분 등록
 10년전쯤의 일로 기억된다.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뻐드렁니에 뚱뚱하고 덜떨어져 보이는 한 남자가 무대에 섰다. 휴대전화 외판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 남자는 어눌한 말투로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말한다. 관객들도, 심사위원들도 별 기대없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잠시후 두란도트의 '네순 도르마 Nessun dorma (공주는 잠못이루고)'의 전주가 흘러 나오고 남자의 낭랑한 음성이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의 탄성은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기적적인 환희로 바뀌게 된다.

 그는 2007년 브리튼즈 갓 텔런트( Britain's Got Talent)에서 우승한 이후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성악가 폴 포츠다. 그는 오디션에서 우승한 이후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사이먼 코웰과 계약하여 첫 앨범인 원 챈스(One Chance)를 발매하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노래일 뿐 외모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에 열등감 덩어리였던 폴포츠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날고 싶었지만 뒤뚱거리며 땅바닥을 걷기도 힘든 인생이었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그의 모습 어딘가 숨겨진 그의 날개는 언제나 날아오를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거센 맞바람이 부는 어느날 그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오직 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장한 채. 단 한번의 기회, 그는 뛰어 올랐고 바람은 그의 날개를 맞아들였다.

 알바트로스(신천옹)는 거대한 날개를 가졌다. 알바트로스는 이륙할 때만 날개짓을 할 뿐, 단 한번의 날개짓으로 며칠을 비행할 수 있다. 알바트로스는 번식하기 전까지는 육지에 착륙하지 않고 계속 하늘에 머무르는데 그 기간은 무려 10년에 달할 수도 있다. 비행하면서도 잠을 자고, 오직 하늘에서만 생활을 한다. 알바트로스는 거대한 날개를 가진 탓에 육지에서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새다. 알바트로스의 가치는 오직 하늘을 날 때 존재한다. 그 하늘로의 도약을 위해 알바트로스는 바람을 타야 한다. 거대한 날개에 바람이 실리는 순간 알바트로스는 날아오른다. 육지에서 걸리적거렸던 날개는 알바트로스를 하늘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

 폴포츠를 보며 문득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가 떠올랐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가장 많은 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비행기의 존재 이유는 하늘에 있다. 폴포츠 역시 그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날아올랐다. 그것이 운이건 운명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 그 어떤 말로도 그의 도전을 폄하할 수는 없다. 그는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했고 때마침 바람은 그를 향해 불어왔다. 그는 맞바람을 타고 자신의 날개를 펼친 것 뿐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무엇을 해낼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저자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말한다.

"산다는 것은 죽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절망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고, 시도해 본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모험은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것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흔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인생의 한 가운데에 서서, 언제 불어 올지 모르는 바람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너무 거친 폭풍우가 밀려와 내 날개는 연약함을 절감하며 부러질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날아오르기에 너무 미약한 바람에 비대해진 내 날개를 단 한번도 펼치지 못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 매일매일 내 날개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조용히 바람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 두 가지가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기회일터, F.M. 밀러가 말했듯이 우리는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때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알맞게 무르익는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지면 바로 박차고 나가 알바트로스처럼 날개를 펴고 날아 올라야 한다. 설령 그 비상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거친 폭풍 앞에 섰을 때 날 수 있단다 너를 던져라 널 흔들고 있는 바람 속으로
그 바람이 나를 펼친다 너무 커서 아팠던 날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파도 몰아치는 바다로 그저 내 날개를 펼치고 있다
바람아 더 불어라 더 거칠수록 나는 더 뜨겁게" 
- 이은미 <알바트로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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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8 06:45:08 *.48.44.227

읽는 나도 희망이 솟아오르는 힘찬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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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6:15:06 *.246.68.76
마지막 인용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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