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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4일 21시 01분 등록
언성 히어로(Unsung Hero) 
- 정말 훌륭한 개발자에 대하여

 훌륭한 개발자란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술이라는 사소한(정말 기술은 사소한 부분이다) 분야로부터 시작하여 훌륭한 팀원, 조직원은 어떠해야 하는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결국 훌륭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인문학적 근본 질문으로 귀착되게 된다. 정답은 없으며 많은 정의와 편견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를 꼽자면, 훌륭한 개발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문제를 가능한 조기에 해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임금이 당시 최고의 명의였던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삼형제 가운데 누가 제일 잘 병을 치료하는가?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훌륭하고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저의 의술이 가장 비천합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편작이 대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큰 형님은 상대방이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을 보고 그에게 장차 병이 있을 것임을 압니다. 그리하여 그가 병이 생기기도 전에 원인을 제거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상대는 아파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게 되고 따라서 큰 형이 자기의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큰 형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형님은 상대방의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병의 근원을 알아내서 치료를 해줍니다. 그러므로 툴째형님의 환자들도 둘째형이 자신의 큰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병이 커지고 환자가 고통속에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 봅니다. 환자의 병이 심하므로 그의 맥을 짚어야 했으며 진기한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는 수술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의 그러한 행위를 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명의로 소문이 나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편작이 겸손해서 형들을 추켜올린 것인지, 진짜 편작의 형들이 편작보다 훌륭한 의사였는지는 이야기의 포인트가 아니다. 편작은 진정으로 훌륭한 의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굳이 편작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편작의 형들과 같은 의사들이 더 훌륭한 의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편작의 형제들에게 치료받았던 환자들은 누가 진정한 명의인지 몰랐다. 현실 세계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사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언성 히어로(Unsung Hero)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헌신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지구와 세계를 구하는 영웅들은 대개 외톨이들이다. 재난을 예감하고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악의 근원에 온 몸으로 맞서는 주인공의 활약을 아무도 몰라준다. 역경을 우연히 함께 하게된 동료들과 로맨스에 빠진 상대역만이(대체로 미모의 여성주인공)  뼈빠지게 고생한 주인공의 노력을 알 뿐이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블랙스완>의 작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또다른 저서 <안티프레질>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서 영웅이 된 역사적 인물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블랙스완'이란 역사상 이제껏 발생하지 않았던 - 발생하는 경우 극도의 혼란을 초래하는 - 사건을 말한다. 블랙 스완 세계에서 진정한 영웅은 재앙을 예방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실제 재앙은 지금까지도 발생한 적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으며, 재앙을 막아봤자 아무런 보상도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에서 재앙은 보통 쇼스탑퍼(Show Stopper)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이것은 심각한 소프트웨어 문제(Critical Bug)보다 더 긴급한 문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모든 프로세스는 정지된다. 이 문제를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에 프로젝트의 사활이 걸려 있기에 모든 부서의 눈이 한곳으로 집중된다. 문제를 유발한 원인이 무엇이든지간에 문제를 빠른 시간안에 해결한 개발자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진다. 훌륭한 개발자인지 아닌지 여부가 개발기간동안 이슈화된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해 나가느냐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여기에 속칭 마우스(Mouth) 개발자들은 한술 더 뜬다. 별것도 아닌 문제들을 이슈화시키며 요란법석을 떤다. 지가 만들어 놓은 버그 지가 고치는데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청산유수같이 컴퓨터나 알아먹을 기계어를 떠들어댄다. 신영복 선생의 말을 빌리면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수염을 그슬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 인심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으며,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모두가 알게 된다. 최소한 함께 개발을 진행한 프로젝트 팀원들은 정녕 누가 훌륭한 개발자인지 알고 있다. 정상적인 상사와 관리자라면 마우스 개발자와 진짜 개발자를 구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윗놈들 또한 많다. 무엇보다도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은 성과보다 문제를 해결한 성과를 높이 쳐주는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잠깐의 현실에 좌절하기에는 개발자의 삶은 충분히 길다. '소리없이 강한'  언성 히어로들은 언젠가는 그 진가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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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09:24:14 *.48.44.227

악화와 양화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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