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불씨
  • 조회 수 1023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8년 11월 3일 17시 10분 등록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자고 일어나 화장실 거울에 비친 푸석푸석한 중년의 옆머리에 싸락눈이 내린 듯 하다. 까만 머리털 사이 듬성듬성 보이는 하얀 기운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다. 이젠 뽑는 것으로는 한계에 직면한 것 같다. 아들녀석에게 개당 50원씩 쳐주고 뽑게 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것 같은데, 아들녀석이 실망하지는 않을런지 모르겠다. 

불혹 - 공자와 그를 추앙하는 조선의 유가들 덕분에 일상어가 된 말이다. 군자가 나이 마흔이 되면 더이상 미혹됨이 없다는 것이 원래의 뜻이다. 보통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공자가 이루었던 불혹은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혹도 없이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고한 경지였는지 모른다. 허나 나이 마흔에 세상사에 미혹됨이 없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신영복 선생은 그의 책 <담론>에서 나이 마흔에 모든 의혹이 다 없어질만큼 현명한 사람은 없으며, 가망없는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 것을 불혹이라고 정의했다.

공자에게 나이 마흔은 세상풍파에 흔들림이 없는 시기지만, 대한민국 가장들에게 나이 마흔은 결단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시기다. 외적으로는 견고해보이지만, 내실은 스물스물 삶에 대한 온갖 의혹들이 꼬리를 무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리되지 않은 의혹들이 그대로 남아있지만, 안타깝게도 더이상 그 의혹들을 삶 속에서 실험한 시간이 없다.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아닌 다른 가능성에 결코 미혹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맞는 진짜 불혹의 의미다. 가족을 부양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일이 지상최고의 과제가 되어버린 중년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눈 돌릴 여력은 없다. 그들의 마음에 미혹됨이 없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미혹과 의혹을 원천 차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더이상 젊은 날에 꿈꾸었던 성공을 기대하지 않는다. 마흔이 되면 가치체계가 보다 현실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페르조나(persona)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가리키는 말로, 외적 인격 내지는 사회적 가면을 의미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중년의 심리를 다룰 때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보통의 마흔 초중반의 중년남성들은 집에서는 가장이고, 회사에서는 차장이나 부장쯤 된다. 그것들이 그들이 쓰고 있는 대표적인 페르조나들이다. 마흔 정도가 되면 페르조나는 붕괴하기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삶의 목표를 페르조나와 일치시켜 살아가다보면 자기의 본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페로조나와의 동일시가 심해지면 의식과 무의식의 단절과 해리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생겨나게 된다. 마흔이 되어서야 자신이 장기판의 졸卒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제대로 된 가치판단이 선행되지 않은 채 원하지 않는 일에 너무도 긴 시간을 숙명적으로 매달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불행은 자각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가 사라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니 삶을 딛고 서 있는 현재라는 지반 자체가 너무도 쉽게 흔들렸다. 불면증이 찾아왔다. 3년동안 불면의 밤은 낮시간의 무력감으로 대체되었고, 나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울어주는 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힘든 시기에 마흔을 맞이했던 나의 민낯은 서서히 드러났다. 내 얼굴을 뒤덮고 있던 강철같던 페르조나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내가 진정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절절히 알고 싶어졌다. 비록 종교는 없었지만 매일 밤, 그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채 맞은 새벽의 아침마다 신에게 기도했다. 신이 주신 이 방황의 시간을 가능한 짧게 끝내고 내가 살아야 하는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더불어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추스리기 위해 내가 했던 일은 매일 아침마다 예전에 읽었던 좋은 책들을 조금씩 다시 읽어 보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와 같은 가벼운 자기개발서부터,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까지 모두 내 마음의 안정제로 사용하고자 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책과의 독백이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마흔의 사춘기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비관적 태도를 난 그렇게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하루하루 햇빛을 쬐면서 많이 걸었고,긍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감사하는 삶이 선천적인 부정적 기질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아직 마흔초반의 나이, 내 마흔앓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조금씩 조금씩 불혹의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책은 도끼다>, <여덟단어>등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광고쟁이이자 작가 박웅현은 자신의 경우 불혹이 나이 오십에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 역시 나이 마흔에는 온갖 생각들로 가득찬 만혹의 시기를 보냈다. 만혹의 시기로부터 10년이 지난 나이 오십에 이제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그것은 다른 삶의 부정이 아닌, 그가 동경했던 타인들의 삶의 긍정임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긍정을 의미한다.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던 시기로부터 단순히 1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흔들림이 없는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본인에게 내던져진 삶의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 질문들에 대답하려는 힘겨운 투쟁이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삶의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을 써내려가고 있다. 대답을 하다 보면 다시 삶은 나에게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은 아마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완벽한 불혹의 경지라는 것은 없으며 그곳으로 향하는 수천 수만갈래의 길이 있다. 길은 다시 다른 갈래의 여러 길로 이어진다. 불혹이라고 쓰여 있는 넓다란 들판에 이르렀을 때 난 다시 나에게 물을 것이다. 이제껏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는지. 난 대답할 것이다. 걸어온 길이 내 길이었노라고, 그리고 가보지 않았던 길은 단지 풍경이었노라고, 그리하여 잠시 쉬어감을 마치고 다시 걸어갈 그 길이 어디로 향해 있던지 그 또한 단연코 나의 길이라고.

IP *.121.156.75

프로필 이미지
2018.11.08 08:36:08 *.111.17.254

저도 저 자신의 본 모습을 찾고 그것을 정진하기 위해 방황하면서 아침마다 변경연에 오고 있나 봅니다.

어여 빨리 불혹을 맞이하고 지천명에서 안착하고 싶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불혹을 거의 50세에 맞이하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8.11.11 10:30:16 *.121.156.75

우리 모두 같이 힘내서 무수한 고민과 번뇌를 삶의 시도로 전환하여 끝내 불혹을 이루어 보시죠! 파이팅입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