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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1일 19시 23분 등록

연어의 꿈

 

살인적인 대구의 더위 속에서 뜨거운 삼계탕을 먹으며 나는 마음 속으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내 앞에는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스웨덴 청년이 고개 숙인 채 말 없이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 지 적당한 영어 표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 상황에서는 한국어가 통한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을 터였다. 그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우리는 그렇게 땀을 흘리며 침묵 속에 삼계탕을 먹었다. 얼굴 위로 흐르는 그의 땀을 훔쳐보며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싶어 마음이 먹먹했다. 불편한 침묵을 깨고 나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Call me Noona.” (날 누나라 불러)

 

2008년 찌는 듯한 여름, 대구의 어느 삼계탕 집이었다.

 

*

 

그와의 인연은 200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해외거주 한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해외 모 커뮤니티에 광고를 했던 적이 있다. 그 광고를 통해 어떤 스웨덴 사람이 한글 읽는 법을 문의했고 이메일로 1:1 교육을 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오래지 않아 그의 사정을 알게 된 바, 1981년생인 그는 1984년에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는데 부모님을 찾기 위해 언젠가 한국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2008년 그가 28세가 되던 해, 그는 자신이 태어난 한국땅을 처음으로 밟았고 SBS를 통해 부모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적으로는 24, 공간적으로는 스웨덴에서 한국까지 7,365km가 걸렸다. 그렇게 달려온 그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내가 나서기로 했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철수였다. 김철수.

 

문제는 철수의 입양절차가 진행되었던 곳이 대구에 있는 고아원이었다는 것이다. 때는 7월로 한참 더울 때였고 나는 열이 많은 체질이라 더위에 굉장히 취약했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섣부른 오지랖을 탓할 수밖에. 대구역에서 철수를 처음 만났다. 정신이 혼미해질 거 같은 폭염 속에서 고아원인 대성원을 찾아갔다. 멀리 스웨덴에서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28세의 청년. 그 청년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더듬어 가는 길이었다. 부디 너무 허름하지 않기를 빌었고, 나중에 듣기를 철수 역시 울지 말자, 절대 울지 말자, 나는 울지 않을 거야를 다짐하여 그 곳을 향했다고 한다.

 

다행히 대성원은 그럴듯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 곳에 있는 아이들도 밝아 보였다. 원장은 철수의 과거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철수는 발견 당시 대구 팔달시장 슈퍼마켓 앞에 있었다고 한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당시 23세였던 경북여객 안내양 이경자라는 분으로 철수 손을 이끌고 파출소로 가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당시 철수의 주머니 안에서 발견된 메모의 내용을 통역할 때 철수는 결국 울고 말았다. 메모의 내용을 듣는 순간, 노란 티셔츠를 입은 4살짜리 아이의 영상이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으리라.

 

이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 없는 자식이니 잘 부탁합니다.”

 

버스 안내양 이경자라는 분이라도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 파출소도 갔지만 22년의 세월은 그 흔적을 쓸어버렸다. 버스 안내양이라는 직업 자체가 이젠 없어졌으니. 찌는듯한 더위의 대구는 더위에 약한 나에게도, 스웨덴에서 온 철수에게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우리는 발로 뛰었고 나는 어설픈 영어로나마 철수에게 상황을 전해주고자 노력하였다. 당시의 철수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 부모는 물론 발견자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 거의 확실해 졌을 즈음 나는 허기를 느꼈다.

 

삼계탕 먹자. 한국에서는 이런 시즌엔 삼계탕 먹어.”

 

9년이 지나서야 철수가 말하길, 그렇게 더운 날에 뜨거운 삼계탕을 먹자는 제안이 놀라왔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하튼 그렇게 삼계탕을 먹으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SBS에서도 못한 걸 내가 뭐라고 도와주겠다고 해서 희망고문을 했을까. 나는 회사 휴가 내고 굳이 여기까지 와서 뭘 한 걸까. 앞으로는 이 놈의 오지랖 꾹꾹 밟아 버려야지. 혹시나 핏줄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희망으로 더위를 이겨냈지만 모든 것이 헛탕이었음이 확실해졌을 즈음에는 더위와 허기가 우리를 지치게 했다. 그 상황에서 뜨거운 삼계탕이 우리 앞에 놓였고 마음 속에서는 여러 대화가 오갔을지언정 겉으로는 아무 말 없이 삼계탕만 먹을 뿐이었다. 팽팽한 침묵 끝에 실망과 미안함, 착잡함 속에서 나는 겨우 입을 열었던 것이다.

 

“Call me Noona.”

 

내가 철수의 가족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이 그에게도 전달되었던 것 같다.  

 

아니예요. 내가 자란 대성원을 본 것만으로도, 내가 발견된 슈퍼마켓을 간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어요. Taegu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항상 궁금했어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제가 7월에 발견되었으니 지금처럼 더울 때였나봐요.”

 

공교롭게도 그가 발견된 것도 7(1981), 발견된 장소로 간 것도 7(2008)이었다. 그렇게 나와 철수는 뜨거운 여름, 그의 뿌리를 찾아, 어린 시절을 찾아 함께 헤맨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

 

얼마 전(2017 119) 철수를 만났다. 20대의 철수는 흰 머리가 보이고 배가 나온 30대 후반의 사람 좋은 아저씨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그 사이 그는 한국어가 늘었고 한국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그는 매년 2회 봄, 가을 한국에 올 계획이란다.

 

스웨덴이 더 살기 좋을 텐데?”

 

하지만 거기서 나는 다른 세상 사람 같아서요. 한국에 오면 나같이 생긴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편하고 소속감을 느껴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언제야?”

 

지금은 한국남자가 인기가 많은 거 같은데 내가 자랄 때엔 동양남자는 인기가 없었거든요. 유럽인들에 비해 나는 키도 작고 눈도 작고. 그래서 자존감이 낮았어요. 스웨덴 여성과는 잘 맞지 않았구요. 언제부터인가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의 뿌리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어요. 부모님을 만난다면 왜 나를 버렸어요?’라고는 절대 묻지 않을 거예요. 물론 이젠 그렇게 물을 기회도 없지만. 어떤 분들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만 봐도 만족할 거 같아요. 내가 아직 30대인데 흰 머리가 생기는 걸 보면서 아빠나 엄마 중에 흰머리가 일찍 생겼나보다 그 흔적을 느껴요. 벌써부터 배가 나오는 걸 봐도 그렇구요

 

배 나오는 걸 유전으로 돌리지마. 운동을 해야지. 흰머리는 유전 맞겠지만.”

 

철수에게는 같은 입양아 출신 동생이 있다. 역시 한국에서 입양되었다고 한다. 철수의 엄마는 아이들을 입양하고자 한국에까지 왔고 당시의 한국은 데모가 심했음을 냄새로서(아마도 최루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동생은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뿌리를 찾고 싶다는 갈망도 없다고 한다. 모든 입양아가 뿌리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것은 아니니 철수의 경우는 남다른 것 같기도 하다.

 

자식이 없어 이국 땅에서 두 형제를 입양한 스웨덴 부모는 철수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이혼을 했고 현재 그의 양엄마는 재혼하여 철수와는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벌써 37세가 된 철수는 독립하여 혼자 살고 있고 동생과도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다시 외로워지는 입양아의 숙명이라고도 하겠다.

 

가족이 없어서 외롭겠네.”

 

그래서 나의가족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는 한국여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나와 비슷한 아이를 낳고 싶어요.”

 

한국음식은 뭐든 맛있다는 그는 불고기, 김치찌개는 물론이거니와 해삼, 멍게, 개불, 산낙지를 거쳐 보신탕까지도 먹었다고 한다. 거리낌 없는 그의 시도에서 단순히 음식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한국적인 모든 것을 흡수하고자 하는 욕심 또는 갈망을 느꼈다. 9년 전 그 뜨거운 대구의 폭염 속에서 나와 함께 묵묵히 삼계탕을 먹었을 때의 마음도 그랬겠지.

 

핏줄로서의 부모를 찾지는 못했지만 민족으로서의 한국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철수에게는 큰 위안인 거 같았다. 첫 방문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해보이는 철수의 얼굴. 한국사람처럼 보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뼛 속 깊이 한국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철수. 그러기 위해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문화를 익혀야 한다며 교보문고에 가서 한국어 교재와 이원복 교수의 <UNMASKED KOREAN>을 구매하는 철수. 자신의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꾸려 한국에 다시 접속하고자 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끝)


철수 메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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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1:50:10 *.75.253.245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이런건가 싶기도 했구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보따리 잘 들었어요^^


10년 전의 아득해 보였던 이야기가 10년 후의 지금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매력이, 마치 카메라의 줌을 당기는 것 처럼 후욱하고 들어와서 읽는 내내 얼떨떨했어요. (좋았다는 말을 참 돌려가면서 하게 되네요 ㅎㅎ)


잘 봤어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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