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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4일 11시 41분 등록
흔들리며 피는 꽃이 있다고, 사랑까지 흔들며 해서는 안 되리라.

이희석이라는 사람 1

후배 녀석이랑 점심식사로 설농탕을 먹는다.
꼭 재떨이처럼 생긴 걸 주는데, 김치와 무를 담아 먹는 그릇이란다.
후배가 테이블마다 놓여 있는 작은 김치항아리와 무 항아리를 열어 적당량을 가위로 잘라 재떨이같은 그릇에 담았다. 양이 조금 많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설농탕이 나왔다. 설농탕과 함께 먹을 수 반찬은 김치 아니면 무 깍두기였다. 그런데 깍두기가 더 맛있다.
깍두기를 다 먹을 즈음, 그 녀석은 설농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는 식사를 천천히 하는 편이어서 아직 1/3 정도가 남았다. 재떨이 모양의 그 그릇에는 이제 김치만 남았다. 맛있는 깍두기는 항아리에 많이 있다. 덜어 먹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릇에 남아 있는 김치를 먹는다.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렇다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이 연간 8조원이다’ 라는 환경 친화적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김치가 남았으니 조금 맛이 없더라도 참고 김치를 먹어야 해’ 라고 인내하며 먹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남기는 것이 싫어서 먹었던 것뿐이다.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게 나였던 것이다.

(환경은 개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수질 오염을 제외한 환경 오염의 원인은 산업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이희석’을 설명하고자 여러 가지 얘기를 끌어들인 것이다. 주제가 이희석인 것이다.)

이희석이라는 사람 2
강남역 6번 출구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다.
이 곳에는 늘 학원 전단지를 나눠 주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계신다. 나는 그 분들이 나눠주는 전단지를 모두 받아든다.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 밀려나는 경우에는 할머니께서 주시는 전단지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살짝 되돌아가서 “할머니, 저도 한 장 주세요.”라고 말하여 받아온 적도 많다.
이내 나의 손에는 정철, 파고다 등의 영어학원 전단지가 한 뭉치 들어온다. 영어 학원을 다니려고 받아 든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전단지들은 내 가방에 잠시 머무르다가 집에 있는 재활용 박스로 옮겨질 운명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한 장이라도 더 받아가면 저 분들의 일이 조금 더 일찍 끝나지 않을까, 하는 다분히 유아적인 생각에서 받아든 것이다. 제작한 학원 측에 미안하기보다는 저 분들의 고단한 삶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분들의 삶이 실제로 고단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다분히 감상적인 성향의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그 한 장을 더 받아왔다고 하여 저 분들의 일이 얼마나 더 빨리 끝나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희석이라는 사람 3
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교대역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지나치는 계단을 오른다.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친다. 손 안에는 500원짜리 껌이 두어 개 있다. ‘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계시네’ 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할머니 껌 하나 주세요. 얼마예요?” 한다.
할머니께서는 껌을 내 가방 안에 쏙 넣어주셨고, 나는 1,000원 찾는다. 그런데 지갑 안에도 나의 주머니 안에도 단돈 1,000원이 없었다. 이미 껌은 내 가방 안에 있는데 어떡하나? 할머니께서는 “젊은 사람이 돈이 그렇게도 없어서 어쩌누? 그냥 가져 가.” 하신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제가 어떻게 그냥 가요.” 하면서 지갑 안을 계속 뒤지지만 결국 몇 백원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죄송한 마음으로 지갑에 있던 1달러를 드린다. “할머니 이 거라도 받으세요.” 하고 난 후, 할머니 곁에서 함께 껌을 팔았다. 10개를 사 오셨다는데 1시간 정도 지났는데도 아직 4개가 남았다. 내가 함께 있던 20분 동안에 할머니는 2개를 더 파셨고, 나머지 2개의 껌은 어떤 걸인에게 휙 던져 주시며 자리를 뜨셨다.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아지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길거리를 가다가 술 취해 쓰러진 남자가 있으면 깨워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태워주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갈까? 최근 2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는 이런 나를 두고 ‘오지랖넓은 이희석씨’ 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지금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슬퍼하려고 이 글을 쓴다. 아니, 슬픔을 달래려고 이 글을 쓴다. 글쓰기의 치유적 힘을 믿으며 말이다.

이희석이라는 사람이 사랑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반대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며 애인과 함께 전화 통화하는 것은 아주 기쁘고 소중한 일상이다. 할머니 곁에서 잠시 동안 함께 껌을 판다는 것은 그 전화 통화를 잠시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살아지는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곳의 상황을 모르는 애인에게는 또 다른 문제다. 애인을 집까지 바래다주다가 술 취해 쓰러진 아저씨를 만나면, 나는 여자 친구를 꼬옥 안아주었다. 내 품에 안겨 있는 여자 친구의 양쪽 어깨를 잡고 살며시 잡고 나는 그렇게 그 날의 헤어짐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면 여자 친구는 이내 뾰로통한 표정으로 할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하고 혼자서 남은 길을 걸어간다. 마음은 여자 친구를 따라가고 있지만, 내게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괜히 여자 친구가 함께 있으면 이 일(술 취한 아저씨 바래다주기)을 완수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것이다. 여자친구가 말한 넓은 오지랖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오지랖 넓은 이희석씨’라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생생하다. 그녀의 미소가 여전히 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럴 때면, 나는 어느 새 훌쩍이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두 뺨에 흘러내린다.

그녀와 함께 지하철을 타려고 승차 대기선에 서서 기다린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기에 둘 다 조금 피곤했다. 지하철이 미끄러지듯이 들어와서 우리 앞에 섰다. 지하철 문의 가운데 방향으로 손님이 내려야 하니 승객들을 문의 양 옆으로 줄을 섰다. 우리 반대편에는 또 다른 커플이 있었다. 내리는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앉을 자리는 적었다. 우리는 내리시는 손님이 모두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 반대편에 있던 커플의 그 남자는 손님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열차에 탔다. 내리시는 손님을 조금 밀치며 무례하게 열차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그녀도 그 남자 친구를 뒤따랐다. 이 장면을 보며 속으로 ‘으이구... 조금만 더 질서를 지키시지’하고 말했다. 그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저 눈살이 찌푸려졌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앉고, 우리는 서서 갔다. 조금 뒤에 나는 옆에 있던 여자 친구가 서 있는 것이 안쓰러워 불쑥 이렇게 말했다. “저 남자 싸가지 없지. 어른들 내리시는데 말야.” 여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나에게는 무척 충격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래도 저 남자 덕분에 여자는 앉아서 가잖아.”
남자 덕분에 앉아 가는 여자와 나 때문에 서서 가는 여자.
그 두 여자는 그렇게 자신의 남자로 인해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자, 이쯤에서 한국의 현대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 ‘리영희’라는 사람과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불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토저’라는 사람을 잠깐 모셔본다. 리영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에 이어 2위에 오른 인물이다. (백낙청, 리영희, 최장집, 강준만 순이다.) 그의 주저 『전환 시대의 논리』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이어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국내저술 2위에 올랐다. (경향신문,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기사참조)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 교수를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순수 그 자체’ 등으로 표현하였다.

‘에이든 토저’는 ‘이 시대의 선지자’라고 불릴 정도로 교회의 부패한 현실을 끄집어내어 진리에 비추어 가야 할 길을 제시하였으며,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타협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두 범상치 않은 두 위인도 가족 앞에서는 참으로 볼품없는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먼저 리영희를 보자. 강준만 교수는 『리영희 한국현대사의 길잡이』라는 책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리영희 교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가족의 안정과 번영을 생각하자면, 그는 대단히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들이자 가장이었다. 그는 독선적이기까지 했다. 자기 혼자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라는 생활신조를 갖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서도 그걸 가족들에게까지 사실상 강요했다는 게 말이다.” (p.304)

강준만 교수는 가장으로서의 리영희를 묘사할 때 ‘독선’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이는 비약적인 주장이 아니다. 실제로 리영희 교수의 자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먼저 리영희 교수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딸 미정씨가 아버지가 손녀들에게 보내신 카드를 보여주며 속내를 드러내는 한 마디를 한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난 느껴요. 혼자 등불 하나 들고서 살아온 인생 말이죠. 하지만, 문제는 10살 된 자녀에게 할 말은 있을 텐데, 그냥 자기 생각하는 것 그대로 말했기 때문에 반감도 많았고 상처받은 게 참 많았죠. 하지만 제가 얼마 전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인터뷰하던 기자가 딸에게 되묻는다.
“사랑한다고 말하기까지 참 오래 걸리셨네요?“ 미정씨는 ”어 그럼요.“ 하며 눈물을 글썽인다.

실제로 리영희 교수는 2남 1녀가 장성할 때까지 어렵기만 한 아버지였다.
리영희의 또 다른 딸 민정씨의 말이다.
“사람들이 오면 (나더러) 피아노를 치는 거예요. 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 그럼 우리 식구 생활비를 가지고 너가 피아노를 샀기 때문에 너는 식구들이 원할 때에는 피아노를 쳐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때는 그런 아버지에게 선생님이라고 했던 적 있어요.”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리영희 교수가 작은 목소리로 “그럴 수 있을꺼야.”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그가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리영희 교수는 이렇게 안타까운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돼서 제일 서글프기도 하고 참회되는 것이 가족에 대해서 좋은 아버지로, 좋은 남편으로 살지 못했다는 거야. 가족주의, 가족중심적, 비사회적. 사회를 배타한 자기의 이기적인 것에 대하여 반감이 많았던 거지. 사실은 그러면 안 되는데 말야. 예수도 사랑은 자기 가까이에서부터 출발한다고 그러고 공자도 그러는데 내가 너무 경직했어. 그거는 후회 많이 하죠.”

이번에는 기자가 “사모님께서는 섭섭하지 않으셔요?” 라고 물었다. 다음의 대화를 보라.
사모님 : “많이 섭섭했죠. 지금도 내 생일은 몰라요.”
리영희 : 알지...
가족들이 웃으면서 일제히 “그럼 어디 맞춰 보세요.” 한다.
리영희 : “(웃으며) 주민등록증에 보면 있어.”

많은 지식인들에게 사상의 은인이었던 그가 가족들에게는 이렇게 무심하고 독선적이기까지 한 아버지요 남편이었던 것이다.

에이든 토저는 어떤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그의 메시지만 잘 알려져 있었다. 그의 생애와 언행에 대한 얘기는 접할 수가 없었는데, 2007년 3월에 『하나님이 평생 쓰신 사람』이라는 토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책의 첫부분에는 역시 왜 토저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토저 찬양론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물론 토저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도 결점은 있었다. 본래 은둔자의 성격을 타고난 그가 바쁜 스케쥴에 쫓기다보니 아내 에이다와 가족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가정 밖의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지대한 공헌을 했던 두 사람, 리영희와 에이든 토저는 가정 안에서는 무심하고 영향력이 없는 가장이었다. 나는 리영희와 토저의 영향력을 사모하고 존경하지만, 가정에서의 모습만큼은 닮고 싶지 않다. 남자가 큰 뜻을 품으면 대부분 가족들은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물론 많은 대의를 성취한 남자들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일과 가정, 모두 너무나 소중한 것이니만큼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 하나를 놓치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나의 여자 친구에게 가정은 절대적 가치, 그 자체였다.

나의 여자 친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다른 가정들이 보다 행복하고 온전하여지도록 상담하고 섬기는 가정사역자를 꿈꾸는 여성이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가정의 안정과 행복이 중요하다. 다른 대부분의 가치는 그에게 의미가 없다. 그녀와 처음 교제할 때, 그녀는 내가 가정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많이 얘기해 주어 교제하는 동안 나는 정말 많이 가정적인 남자로 변화되었고, 여자 친구도 나의 변화와 성숙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는 죽어도 리영희 교수와 그리고 에이든 토저와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타고난 성품과 기질이 가정적인 남자보다는 못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의 장점은 따로 있는데, 자꾸만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헤어지자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매번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많았고, 조금 더 노력하고 성장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균형의 면에서는 토저와 리영희 교수보다 훨씬 잘 이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나보다 훨씬 가정적인 성향의 남자가 더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헤어진 이유다. 아직도 사랑하면서도 헤어진 이유다. 사랑한다면 왜 헤어지냐고 따질 사람이 분명 있을 줄 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매번 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나와는 달랐다.

아직도 그녀가 그리운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녀는 떠났다. 언젠가 그녀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나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적어주며 나의 한결같은 마음을 표현하고, 다시 잘 해 보자는 편지를 적어 보냈다. 이 시를 적은 편지를 전한 후에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였고, 우리는 다시 만남을 가졌고 한 동안 아주 행복하게 잘 지냈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보다 덜 흔들리는 사랑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의 이 물음 앞에 나는 눈물만 흘리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힘들어하는, 이제 그만 놓아달라는, 그녀의 말에 끝까지 안 된다며 붙잡았는데, 이제는 내가 그녀를 놓아준다.
그녀에게 들려주려고 했다가 눈물이 흘러 차마 전하지 못한 시 한 편,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을 읽어본다.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곷 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드로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가
그대 등 뒤에 있다.

꽃이 흔들리며 핀다고 하여 사랑까지 흔들며 해서는 안 되리라. 물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마는 지나친 흔들림이라면 떠남과 보냄, 그리고 침묵의 과정을 통해 그가 덜 흔들리는 길을 함께 찾아주고 그 길을 마련해 주는 것도 사랑이다, 라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고 설득해본다.

이제 내 곁을 떠나간 그녀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강은교 시인이 가르쳐 준 사랑법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그녀와 나는 눈부신 오월의 둘째 날에 이별했다. 흘러간 유행가 노랫말처럼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을 했고, 그래서 나는 오월의 이 찬란한 햇살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햇살이 눈부실 때마다 나는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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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4 11:45:14 *.75.15.205
살다보면 2주동안 호텔에 투숙하고 손잡고 가서 도장도 찍는다.
그래도 때로는 미워하고 서럽고 그렇다.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으니... 이별식도 하고 싶었는데 한국적 정서는 아닌 거 같아... 한국적 정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라지. 그래도 그리워하기도 할 걸... 희석이는 이쁘기만 하네. 깨끗하고. 오물과 푸른물의 교체. 푸른 것을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건가? 희석인 변.경에 와서 역사를 많이 이루네...
그래도 너의 하느님은 항상 너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말길...사랑해요. 아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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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4 14:19:45 *.249.167.156
많이 아팠겠구나. 그것도 모르고 모임 장소 잡으라고 귀찮게 했네. 저녁 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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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5.14 14:28:44 *.218.204.98
희석아, 짧게 써라. (사부님 버전)

음.. 내가 말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희석아
때가 있는것이다. 사람이 있는 것이고, 뜻이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더라. (아무 도움이 안되는구나..)

힘 내었으면 좋겠네. 슬픔이 오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너는 아무리 모진 바람에도 쓰러질 사람은 아니다.
오늘 밤에 갈테니 쏘주나 한잔 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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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4 17:47:59 *.99.241.60
그래도 가끔 흔들리고 싶을때는 흔들려도 된다.(결혼전에는...)
흔들리면서 뿌리와 줄기 상태를 알수 있고,
평생을 살 꽃을 알수도 있다.

한번밖에 없는 기회가 바로 사랑하는사람과 가족을 이루는 것이고
두번 세번의 기회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가끔 그러날에 소주라도 한잔 했으면 한다고
전화라도 주면 얼마나 기특할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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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4 21:45:38 *.72.153.12
희석씨는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이랑 무척 닮았네.
그사람은 우는 아이는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물을 두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사람은 노인들이 물건을 들고가면 항상 들어주었다.
그사람은 군대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란 호칭 대신에 '어머니'란 호칭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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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15 02:00:21 *.48.43.83
헤어진 사랑에게 예의 지키기. 또 다시 오는 사랑 앞에서 겸손하기. 내가 했던 사랑 성대하게 의식 치루면서 잘 보내주기.
잘 안될 땐, 같은 성씨 누나한테 전화하기, 그래서 소주도 사달라고 그러기.
(근데 희석아, 가만보이 니가 나의 할아버지 뻘이다. 우짜믄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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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05.15 07:21:38 *.128.229.73
리희석에게.

희석아. 사랑처럼 치열한 것은 없다. 한 눈 팔지 마라. 그녀만 보도록 해라. 술취해 쓰러진 아저씨에게 눈길 건네지 마라. 글쓰는 사람에게는 그때 그 글을 쓰는 것이 행동이듯, 사랑을 할 때는 그 때 그 사랑을 위해 다 거는 것이 사랑이다. 다시는 좋은 여자를 놓치지 마라. 그리고 다시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서 정리하기를 그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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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5.15 18:56:40 *.134.133.173
여러분~ 사실 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을 주는 격려를 해 주시니 어찌나 감사한지요.

사부님. 술취해 쓰러진 아저씨게에 눈길 건넸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마구 스쳐지나갑니다. 이제는 사랑을 만나,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온 마음을 다해 그녀만 보렵니다. 다 거는 사랑! 이번 이별을 통해 그 사랑을 배운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데, 자꾸만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애써 지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부러 다른 몰입할 꺼리를 찾습니다. 그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슬픔이 늘 바짝 뒤쫓아오곤 합니다. 그래도 강건하게 서겠습니다. 엄살 따위가 내 감정에 끼어들 틈이 없도록 말이지요.

나의 손녀에게 ^^
고마워요. 누나. 5가지를 잘 실천하겠습니다. 5가지 모두 어쩜 이렇게 명언을 하셨습니까? 이미 내 곁에 없는 헤어진 사랑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음을 저도 알 것 같아요. 같은 성씨 손녀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정화누나.
그 사람은 어케 됐어요? 지금도 진행되는 그리움인가요?

영훈형. 만나면 눈물 흘릴까봐 기특한 희석이가 못 되었네요. ^^ 하지만, 눈물 좀 흘리면 어떻습니까? 그죠? 그래요. 고마워요. 영훈형~

옹박, 한참 웃었다. ^^

도윤형.
윤트리오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거라도 해야지요. ^^ 농담이구요.(농담이 넘 썰렁하다구요? 그렇네요.) 암튼, 북리뷰팀의 장소 알아보기는 계속 제가 할께요.

마지막으로 써니누나.
아~ 누나는 어찌 이리 편하게 대해주시는지요..
근데, 나는 외국인인가? 그 사람이 그냥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누나는 이별식 안 했어요? 우리는 했어요. 헤어지기 바로 전날에 캐러비안 베이에 가서 정말 신나게 놀다 왔지요. 놀 때는 좋았는데,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100일 휴가 복귀하는 것 같이 두렵고 힘들었어요. 깜깜한 밤이 되니 정말 싫더라구요. 가슴이 답답하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 헤어지기 전날을 생각하며 웃을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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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6 09:35:53 *.75.15.205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 그가 항상 내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에게 내가 없다고 느낄 때, 저 사람에게 도통 아무리 봐도 내가 없다고 느낄때 곁에 있어도 외롭단다. 너를 출세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고 네가 잘 되는게 배아픈 것도 아니고 당신이 나만을 생각해 줘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을 알지만, 그리도 슬픈 것은 나를 당신에게서 신앙처럼 콕 박혀 줬으면하는 어리석은 바람을 걷을 수 없다고 느낄 때 이별을 하는게 아닐까. 더 큰 바다로 가는 걸꺼야. 우리 그러자, OK? 사랑해~ 아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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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8 [8]써니는 엔트로피! (우리는 30년 후를 확인한다) [10] 써니 2007.05.11 3798
5047 [칼럼010]세관직원과 밀수 [5] 素田최영훈 2007.05.12 3850
5046 (1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 香仁 이은남 2007.05.12 4734
5045 유년의 집짓기 놀이에 붙이는 글 [3] 최정희 2007.05.13 3917
5044 [칼럼 10] 강한 자가 외롭다 [10] 海瀞 오윤 2007.05.13 3752
5043 (10) 황야가 개척자에게 가르쳐 준 것 [7] 박승오 2007.05.14 3559
5042 [010] 가자, 태안반도로! [7] 香山 신종윤 2007.05.14 3311
» 흔들리며 피는 꽃이 있다고, 사랑까지 흔들며 해서는 안 되리라. [9] 현운 이희석 2007.05.14 4200
5040 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딸 [7] 교정 한정화 2007.05.14 3661
5039 [칼럼010] 이 곳에 위치함의 의미 [7] 好瀞 민선 2007.05.14 3832
5038 (10) 일상의 풍경들 [12] 時田 김도윤 2007.05.19 3557
5037 (11) 대화 _ 책, 풍경, 마음 사이의... [5] 時田 김도윤 2007.05.25 3443
5036 [칼럼11] 영웅이 되자. [2] 余海 송창용 2007.05.25 3345
5035 [칼럼11] 경복궁에서 만난 역사속의 영웅들 [3] 素田최영훈 2007.05.27 3866
5034 [칼럼011] 미켈란젤로와 베토벤 [5] 好瀞 민선 2007.05.28 3407
5033 (11)수면의 유혹 [3] 香仁 이은남 2007.05.28 3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