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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일 23시 56분 등록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는 전제가 너무나 강렬하고 확실해서 이 명제는 그 자체로 어떤 회의도 틈탈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 역시 내가 생각하는 주체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을 한 적이 없다. 객지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핵약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상하이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하루 하루 버티던 어느 주말로 기억된다. 짝퉁시장을 구경하러 갔는데 레스포삭 같은 다양한 색상의 가방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어느 가게에서 갑자기 쓰리세븐 빨간 책가방을 매고 등교를 하는 어린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말 그대로 과거의 내 모습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책가방의 강렬한 빨간 색상만큼 얼음물을 뒤집어 쓴 마냥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뭘 본거지? 잘못 본거겠지?’

 

그리고 다시 짝퉁가방들을 보고 있는데 역시 어릴 적 여러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휙휙 지나간다. 머리도 어지러웠다. ‘여권도 안가지고 나왔는데, 핸드폰도 없고, 이 시장바닥에서 쓰러지면 정말 큰 일이겠다싶어 서둘러 시장을 나왔다. 부작용으로 다양한 신체적인 통증을 겪는 것은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는데, 내 정신이 아닌 거 같은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었기에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실제로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상하이에서의 도전과 실험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사람이 죽기 전에 과거 영상이 지나간다던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나만의 환각,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기에 마음 속에만 묻어 놨었다. 그럼에도 머리 속에서 본 과거라는 낯선 경험과 그로 인한 두려움은 내내 개운하지 않게 남아 있었다. 후에 친분 있는 의사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결핵약 부작용으로 인해 시신경이나 뇌로 영양이 잘 공급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각정보는 뇌에서 처리가 되는데 그 때 여러 색상의 짝퉁가방이라는 과도한 시각정보가 기능이 떨어진 뇌에 자극을 주면서 그만 과부하가 걸려 뇌에 저장된 과거의 영상이나 가상의 시각정보가 출력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올해 초 친구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최근 2-3일의 기억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나중에 의식을 회복하고 전화로 울먹이며 한다는 말이, 병원에서 마주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미친 사람 취급 받을까봐 의사한테도 말하지 않은 것을 내게 털어놓는 거라며 울먹였다. 그것이 얼마나 소름 끼치고 공포스러운 경험인지 아는 나로서는 일단 친구를 안심시켰다. 나도 그런 적 있다고, 뇌가 다치면 그럴 수 있다고, 고칠 수 있고 회복될 수 있다고. 그 흔하지 않은 경험을 미리 겪은 내가 위안을 하니 친구의 두려움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던 것 같다. 그 친구 역시 공교롭게도 외지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다. 아마 내가 그럴 리 없다. 네가 헛 것을 봤을 것이다. 기운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반응했다면 친구의 좌절감은 매우 컸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동물의 카테고리 안에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이런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생각할 줄 안다는 점에서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무의식적으로나마 품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겸손이 아닌 오만함이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하기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는 전제에 그 누구도 반대의 손을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로 존재한다로 넘어가지 않는가.

 

신체적 통증으로 고통을 받아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고들 생각한다. 몸이 약했던 칸트는 아픈 느낌을 결단의 힘으로 정복하는 정신력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고 하지만 그 아픈 느낌은 정신적인 것이 아닌 신체적 통증에 한한 것이었을 것이다. 신체적 통증 못지않게 정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마주치는 무력감과 공포는 그 맥락이 다르다. 뇌가 나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뇌의 지배 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자괴감과 회의감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 과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인지, 나는 주체적으로생각하는 존재가 맞는 것인지, 그 전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엄습한다. 그 경험 이후 생각하는 존재,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고, 많이 위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올해 초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고 경험자로서 위로할 수 있었을 때, 내가 공감할 줄 아는 심장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경험치가 올라가면서 고통에의 공감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바로 그 점이 나를 인간적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할 줄 아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공감할 줄 아는 존재라는 것에서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화가 나면 얼굴이 벌게지면서 심장이 벌렁거리고, 추진력이 강해 무언가를 할 생각을 하면 신이 나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남이 알아주지 못하는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찌릿찌릿 아파온다. 내가 생각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다만 내 심장은 지금도 힘차게 뛴다. 고로 나는 살아 있다. 인간적 존재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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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4:27:40 *.146.87.18

어쩌면 누님의 남들 이상의 공감은 생에 대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는 인간의 본질이다' 문구가 머리를 스치네요! 

'머리'보다는 '심장'이 옳다는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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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3 18:26:49 *.226.22.184

살아있음은 기억의 연속인거 같아요. 기억되지 않으면  '살아있음과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도 생각듭니다.

같이 살아 있음을, 함께 웃었음을 기억해 보는 시간을 많이 가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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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11:43:37 *.164.247.177

물질이냐 정신이냐 이성이냐 의지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하는 철학자를 형이하학적인 저로서는 이해못하지만

때론 심장이, 때론 감정이, 때론 이성이, 때론 생각에 따라 그냥 살면 되지 않나요? 굳이 분석하고 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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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4 14:45:25 *.75.253.254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잘 것 없는지과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인지나는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맞는 것인지그 전제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엄습한다."


이 부분 많이 와 닿는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고 사고 하는 주체인지, 아니면 나는 어떤 주체를 담는 그릇 같은 것에 불과한 건지.. 그렇다면 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내 몸의 전부를 나로 봐야 하는지.. 목 위로 어디 쯤에서 생각이라는 걸 하는 정신(?)이 나인 건지.. 


이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서.. 갑자기 세상 제일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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