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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23시 44분 등록


2017 11월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연수생으로 가면 참 좋은데 이번엔 우연치 않게 내가 연수프로그램을 기획하고 20명의 연수생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연수였다. 평생 팔자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가이드이자 어린양들의 인솔자가 되고 말았다.

이번 연수 일정은 샌프란시스코로 입국해서 LA로 이동한 후 LA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9 11일의 일정이었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일정이지만 연수 중간 중간 일정을 보면 또 짧다면 짧은 일정이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요일 오후에 입국해서 수요일 아침에 다시 LA로 이동하는 일정이니 조금은 빡빡한 일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까지 온 많은 연수생들의 로망과 열망을 다 해소해 주기에는 공식적인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살인적인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체증으로 다른 일정 하나 끼워넣기가 만만치 않았다. 서울의 트래픽잼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역시 주변 인근 도시에서 아침에 실리콘밸리로 들어가는 출근 길은 우리나라 명절 고속도로 길을 연상 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날인 화요일 저녁, 연수 일정을 되도록 빨리 끝내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연수생들을 방생하였다. 자유시간을 준 것이다. 5시부터 시작된 자유시간이니 그렇게 긴 시간이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각자 마음 속에 품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버킷 리스트 중 꼭 이것만은!! 한 것을  1가지 정도는 할 수는 있는 그런 아주 소중한 토막 시간이었다. 20명의 연수생들은 각자의 버킷 리스트에 따라 무리를 지어서 흩어졌다. 스탠포드로 가는 한 무리의 연수생들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 케이블카를 타 보는 코스로 이동하는 연수생들이 있었다. 스텝들도 연수들의 동선에 따라 각자 흩어져서 조용히 연수생들을 도와 주었다. 나는 케이블카를 타고자 하는 연수생들을 이끌고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로 이동하였고, 먼저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항구인 피셔맨 워프에서 저녁을 한 후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케이블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시내 야경을 마음껏 즐기고 난 후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지하철 역으로 연수생들을 이끌고 갔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하였다. 지하철역 자동 판매기에서 표를 끊고 있는데 노숙자로 보이는 흑인이 다가오더니 도와주겠다고 한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다시 표를 끊기 위해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팔짱을 와락 끼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확 뿌리치고 왜 이러느냐?”고 화를 내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단지 도와주려고 했던 거 라면서 조용히 사라진다. 그런데 그 후에 표를 다시 빨리 끊고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핸드폰이 없어진 것이었다.


순간 넋이 나갔다. “~~!” 하는 짧은 탄성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내 뺕어지면서 조금 전 그 찰라의 순간이 360도 카메라로 훑어 보듯이 재 구성되었다. 그 중간에 당황하면서 핸드폰을 빠르게 빼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흑인과 대화에만 집중하는 내가 보인다. 그리고 머쓱한 표정을 짓는 흑인에게 잠시나마 미안한 마음을 갖는 내 어리석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리와인드 화면을 내 머리속에서 돌려 보고 현실로 돌아와서 재빠르게 그 흑인을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함께 있던 일행 4-5명은 하얗게 질린 내 모습을 보더니 왜 그러냐 고 묻는다. 그들 역시 흑인이 내 팔짱을 끼는 것을 뒤에서 보고서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핸드폰이 없어졌다고 하자 동시에 그 흑인이다!”란 말이 나오면서 역 곳곳을 뒤져서 같이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흑인은 온데 간데 없다.



정신이 혼미하다. 집 나간 넋이 돌아오지 않는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잠깐 생각해 본다. 핸드폰의 남은 할부금은 둘째 치고 일단 연수기간 내 찍었던 사진이 너무나 아쉽고 또 아쉽다. 내 인생에서 다시 또 언제 샌프란시스코에 와 볼 수 있을까? 아까운 내 사진들~! 눈물이 나온다. 그리고 또 밀려오는 생각들, 아 연수생들 및 스텝들과 연락을 어떻게 하지? 한국에서 오는 전화들은? 나머지 연수 일정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핸드폰 분실로 인해서 해결되지 않을 일들이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심지어 차라리 지갑을 가져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현지 임시 폰을 만들기까지 약 4일이 걸렸고 그 동안 나는 같이 긴 스텝 옆에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과의 연락, 현지 스텝들간 커뮤니케이션, 연수생들과의 연락을 그 스텝 직원의 힘을 빌려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직원과는 가급적이면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연락이 두절된, 현대사회의 얽기고 얽힌 네트워크 속에서 홀로 고립된 윈시인 생활을 일주일 동안 겪고 나서 한국에 돌아온 후 임시로 핸드폰을 부활시켰다. 우선 다시 구입할 수 없으니 와이프가 지금 쓰고 있던 핸드폰 전에 썼던 아이폰을 가지고 유심칩만 다시 재 발급하여 개통하였다. 나에게 부여된 사회적 인식표, 내 사회적 네트워크에 재 연결시키기 위한 신분증이자 인식번호인 내 핸드폰 번호를 다시 살린 것이다. 그리고 연락처들을 다시 등록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복원했더니 내 핸드폰이 복원된 것이 아니라 내 아내의 핸드폰으로 복원된 것이다.


문제는 또 여기서부터 다시 발생한다.


내 아내의 핸드폰으로 복원되자 내가 다시 아내의 ID를 내 ID로 바꾸고 다시 연락처와 복원하니 아내의 연락처와 내 연락처가 뒤범벅이 된 것이다. 카카오톡에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쭈욱 친구로 뜬다. 그리고 최근 통화 목록에는 내가 걸지도 않은 전화번호들이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앗 이게 뭐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아내 핸드폰에 이상한 전화번호들이 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핸드폰에 무슨 짓을 했냐면서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 그래?”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2-3초간 아무 말도 못했다. 2-3초 동안 다시 내가 조금 전 했던 일들이 다시 리와인드 된다. 그런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내에겐이상하네 나도 그런데 아마 핸드폰을 잘 못 복원해서 그런 것 같아이렇게 대답하고는 순간 나는 무엇보다 내 연락처도 아내 핸드폰에 다 뒤 섞였을 생각을 하니 다시 정신이 혼미해 진다. “잠시만 내 핸드폰 속 주소록에 누가 있었지? 혹시 그때 그녀의 핸드폰 번호가 아직 있었던가?“부터 해서 오만가지 잡상이 뒤 엉킨 주소록 만큼이나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한다.


여기 저기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물어보는데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와이프는 아마 너한테 본인 팬티를 빌려준 것처럼 찝찝할꺼야 그런데 더 답답한 건 니가 그 팬티를 자꾸 계속 입고 있으려고 한다는 거지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래서 그 길로 핸드폰을 다시 구입해서 내 핸드폰으로 복원하고 나서야 일은 진정이 되었고 더 이상 두 사람의 핸드폰이 뒤 엉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태를 진정 시키고 나서 일련의 모든 일들을 재 구성해보니 핸드폰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개인적이며 은밀한 사생활을 포함하고 있는 나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핸드폰 번호는 주민등록번호 이상으로 사회적 네트워크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고 나를 규정하는 하나의 매개체였다. 핸드폰이 없으니 난 카카오톡에 접속하여 기존의 대화에 참여할 수도 없었고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핸드폰은 이제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없으면 안되는 필수품 중에 하나가 되었다. 팬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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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1:53:00 *.18.187.152

와 긴박감 있는 글인데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토막시간, 흑인, 그리고 뒤범벅된 핸드폰. 거기에서 이어진 속옷 단상. 재미 있게 읽히고 의미도 있네요. 그나저나 내 쿠폰은??? 못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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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08:49:35 *.129.240.30

아..그러고보니 쿠폰이랑 다 날라갔네요 그거 어디서 복원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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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3:35:58 *.106.204.231

이거 너무 적나라한데요. 강렬하기도 하고요.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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