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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11시 57분 등록

()과 두려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 우리는 어떤 감정이 생길까? 아마 첫 번째 감정은 설레임일 것이다. 그러나 설레임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무언가가 희망적일 때 생기는 감정이다. 집에서 늘 엄마와 함께 지내다가 어린이집에 처음 갔을 때,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신입사원으로서의 첫 출근, 소개팅에서의 첫 만남 등에서 우리는 설레임이라는 감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레임과 더불어 우리는 새롭게 시작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낯선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해야 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들에서 오는 감정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설레임과 두려움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새로운 환경이 이제는 내 집처럽, 오래된 내 신발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적응의 문제가 아닐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프랭클 박사는 인간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할수 있다는 말로서 우리는 유추할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이와는 반대로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두려움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감당해야하는 일들 안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0대의 젊은 남자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두려움은 뭘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 등 그런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과 어쩌면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군대일 것이다. 그동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보는 영화나 매체에서 군인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의 모습이거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남자들로 비쳐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이 계절에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혹한의 겨울 속에서도 우락부락한 근육질 상의를 탈의한 상태에서 얼음물 속이나 바다, 눈 속에서 강한 훈련을 강한 남자들의 모습이다. 나도 해봤지만 진짜 춥다. 멋지게 보일뿐 나는 그냥 추웠다. 참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우리나라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 사실 그렇게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그런 영화나 드라마가 아님을. 그저 일상에 마주치는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고 감정을 상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그런 것이다.

 

군대역시 앞에서 말한 두려움을 느끼는 일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다. 지휘관 시절, 부대에는 거의 매달 신병들이 들어왔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신이 근무해야할 부대를 배치받고 지휘관에게 신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내 사무실에 들어온 신병들은 말 그대로 완전히 얼어 있다. 조금 더 심한 얘기를 하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다. 여기에는 자라온 배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신병이 대학 출신이든 고졸 출신이든, 집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백이면 백 전부 다 이런 식이다. 내가 아무리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따뜻한 차 한잔 같이 먹으면서 얘기해도 그들의 뻣뻣한 자세는 나아지지 않는다. 친구 동생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그들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하겠나. 이런 생활을 2년이나 해야 하고, 이 부대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잘 지낼수 있을까 등등 찰나에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어느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군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군대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동일하게 볼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군이라는 집단, 조직은 그동안 자신이 있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실수를 해도 용인되고 비교적 관대한 분위기속에 살아왔다면 군은 고유의 일사분란함과 죽을 것이 뻔하지만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죽을 것이 뻔하지만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적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런 곳이다. 그러기에 사회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요구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의 이런 태도는 언제까지 갈까? 3개월도 채 가지 못한다. 3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식으로 군대 들어오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군대를 나쁜 시선으로 보아도 군대 역시 인간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이고 전쟁을 준비하고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을 받는 곳이지만 살아갈만한 곳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기간이 2년이라는 것을. 어떤 일에 있어서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끝이 있다는 것은 곧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공포, 고통도 끊임없이 지속된다고 한다면 인간은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군대를 지옥으로 표현한다 할지라도 그 끝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견뎌낼수 있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북한의 군대는 복무기간이 10년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할수 있는지 그 끝을 볼 수 있었고 인간이하의 극한의 생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 마침내 생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용소와 군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그래도 공통되는 점들이 있다. 일단 제한적 자유, 갇힌 공간에서 자기 의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용소에 비하면 군대는 그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곳이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저자는 통일혁명당사건으로 억울하게 구속되어 사형은 면하였지만 무기형을 받고 감옥에서 20년간을 복역하게 된다. 감옥에서 가족들과의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군대의 2년과 감옥의 20년을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나는 감히 감옥이 아닌 자유로운 몸으로 살았지만 나의 20년과 선생님의 20년은 차마 비교를 하지 못할만큼 부끄러움을 느꼈다. 원래부터 높은 이성과 감정을 지닌 분이지만 그는 차디찬 감옥에서 우리 사회의 부적응자들로 구성된 거친 재소자들과의 삶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않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끊임없는 지적 성찰과 수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너무 극과 극으로 비교해서 그렇지만 군대에서의 2년이 감옥 및 수용소와의 삶을 비교할 수 있을까. 우리 힘들고 어렵지만 그 끝이 보이는 군대라는 사실을 언제나 자각해야 한다. 군대 물론 두려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곳도 살아보면 두려움으로만 가득찬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보다는 2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낼 수 있고 삶의 의미, 변화, 성장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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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15:46:40 *.100.195.104

"군대인문학" 주제는 확~ 땡깁니다.

참고로 얼마전 국방부에서 홍순성 "나는 1인기업가다"라는 책, 20,000부를 주문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좀 놀랐는데...  군대도 차츰차츰 인문학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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