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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1일 09시 48분 등록


며칠 전에 경기도 여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 2명이 70여명의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전체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다수의 여학생들이 2년 넘게 지속적으로 추행을 당해왔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수의 피해자가 오랜 기간 동안 추행을 당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그동안 다른 교사 등 학교측이나 피해자의 부모 중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걸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지난 해에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담임 교사에게 추행당한 사실을 털어놨지만, 어떠한 대응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측이 은폐를 시도했던걸까? 경찰은 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여학생들은 피해 사실을 다른 교사나 부모에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교사들의 성추행 수위가 다소 애매모호 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두 교사는 학생들의 엉덩이 등을 쓰다듬거나 속옷을 만지는 등 장난이나 친근감의 표현으로 위장할 수 있는 정도의 추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또한 말 안 들으면 뽀뽀해 버린다는 등의 성희롱성 발언과 욕설을 했다는 진술도 있다고 한다.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불쾌하지만, 가해자가 장난이었다거나 친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더 이상 피해를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그냥 쿨하게넘어가야 할 것만 같은, 안 그러면 괜히 분위기 깨고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그런 성추행과 희롱들. 매우 죄질이 나쁘다고 본다.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과 사람이 있다. 내가 중학생이던 20여년 전. 그 때는 지금보다 성추행과 성희롱에 관한 개념이 더 없을 때라 장난과 추행, 희롱의 구분이 매우 어려웠었다.

20여 년 전 그는 중학생 어린 애들을 미술 시험 점수에 따라 몽둥이로 매질을 했고, 아이들의 얼굴을 만지거나 입술에 뽀뽀를 하는 등의 성추행을 일삼던 미술 교사였다.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이고 뭔가 비정상적인 것 같았지만 예술가 특유의 기행으로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고 정당화했었던 것 같다. 키가 작아 맨 앞 줄에 앉았던 나도 종종 추행의 타겟이 되곤 했다. 기분이 나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실 밖에서는 그를 멀리서만 봐도 도망다닐 정도였지만 그런 행동들이 해서는 안 될 성추행이라는 것도 몰랐었고, 다른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말할 생각은 더 못했었다. 아니 그의 말대로, 그가 만지는 건 정말 귀여워서 그러는 건 줄 알고 기분 나빠도 항의할 생각도 못 했었다. 그저 우리들끼리 저 XX 정신병자라고 욕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에 한 공중파 방송사의 예술 소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도 중학교 미술 교사의 소식을 들었다. 그 때와는 달리 엄청 잘 나가는 것 같다. 일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2의 백남준이라고도 불린단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학교를 그만 두고 독일에 가서 작품 활동과 전시회를 하면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뒤, 해외에서 더 잘나가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 뒤로도 해외에서 꾸준히 활동을 하고 일본에서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오랜만에 고국에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미술 선생님은 징그럽고 무서웠던, 미술 시간이 오는게 끔찍했던 사람이었는데, 흑백 사진 속의 그 사람은 딱 봐도 예술가처럼 보이고, 얼핏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냥 찌질한 중학교 미술 선생인 줄 알았는데 정말 천재성을 그런 기행으로 표출했던 건가? 아니 이제 어린 애들을 안 가르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저런 싸이코 같은 인간이 대단한 아티스트 행세를 하며 TV에도 나오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의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고 평소에는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그 때의 불쾌함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의 소식을 듣게 될 때마다 계속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다. 그가 죄값을 치렀거나 아니면 그 이후 잘 못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면 잊어버렸을까?

 

여주 고등학교의 피해 여학생들은 나처럼 오랜 시간동안 화를 안고 살지 않아도 되도록 가해 교사들이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IP *.222.2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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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10:44:06 *.124.22.184

제  식구 감싸기로 왠만해선 파직안되고 전근 처리하더라구요. 문제교사는 파직시켜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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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2:46:55 *.70.46.252
'욱'이 올라오네요.
이런 기억들은 빨리 잊혀지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오래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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