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윤정욱
  • 조회 수 90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7년 12월 11일 23시 32분 등록

[9차 오프 모임 후기]

 

2017-12-09

티올(윤정욱)

 

 어느 아프리카 원주민에게는 아주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기도만 하면 하늘에서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 비를 내리게 한 것일까? 그 마을을 찾은 사람들에 따르면, 그들은 바로 비가 올 때까지 끊임없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까지 제사를 지내다 보니 그들이 제사를 지내면 (언젠가는) 항상 비가 내렸던 것이다. 그들의 뚝심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그들의 뚝심을 간절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것이 우리의 오감을 유혹하는 요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일 끊임없이 노력하는 뚝심은 오히려 우리에게 낯설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올 봄 큰 목표 하나를 세웠다. 연구원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연구원 과정을 시작할 때는 큰 밭 하나를 통째로 갈아 농작물이 풍성한 곳으로 만들겠다 다짐도 했다. 물론 혼자서 일 하기는 힘드니, 든든한 일꾼으로 황소 한 마리도 함께 키울 생각이었다. 바로 좋은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도 황소를 곧잘 부리며, 조금씩 밭을 갈았다. 목표한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면 황소도 나도 기분이 좋았다. 둘이서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요령이 생겼다. 밭은 너무 넓었고, 애써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지난 주와 비슷한 성과가 나오는 듯 했다. 그러다 햇살 좋은 여름이 되자 한 낮에는 졸음이 밀려 왔다. 황소는 이미 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이 너무 지겨웠던 나는 황소를 깨울 생각은 못하고 그 옆에서 같이 누워서 잤다. 그러다 해가 지면 오늘 했어야 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도 세 끼 밥은 꼬박 챙겨 먹었다.

 

푸른 여름이 가고, 스산한 가을이 지나 곧 겨울이 다가왔다. 슬슬 조급한 마음이 밀려 왔다. 서울에서 장이 서길래 지금까지 기른 작물을 내다 팔려고 했더니, 작물들이 영 시원치 않았다. 급한 마음에 콩도 심어보고, 아니다 싶어서 팥도 심어보았다. 서울 장에 세 번이나 나갔는데 아무도 내가 키운 콩과 팥에는 관심이 없었다. 화가 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꾸벅꾸벅 졸고 있는 황소를 냅다 걷어 차버렸다. 음메에에 하고 죄 없는 황소는 소리를 지르며 구석에서 그렁그렁한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황소도 아팠고, 나도 아팠다.

 

이제 곧 한 겨울의 추위가 시작된다. 어쩌면 올 한 해는 서울 장에 가도 내다 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황소 탓이 아니다. 다 내 탓이다. 황소가 자고 싶어하면 같이 자고, 놀고 싶어하면 같이 놀고 싶어 했던 내 탓이다. 황소는 원래 어딘가에 매인 놈이 아니라, 원래 여기저기 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놀고 싶은 대로 놀고 싶어하는 놈이다. 멍에를 손에 쥔 내가 황소를 쥐고 흔들었어야 하는데, 황소가 흔드는 대로 흔들린 내 탓이다. 주객이 전도 된 것이다. 올 겨울 먹을 것은 적고 장에 내다 팔 작물은 적을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시 황소 놈을 살찌워야 한다. 두 눈 부릅뜨고 팔에 잔뜩 힘을 주어 다시 나의 황소를 쥐고 흔들어야 한다. 이 놈과 함께 다시 한번 힘차게 밭을 갈아야 한다. 매일 간절함이라는 여물을 먹이며 다시 한번 황소의 뿔을 흔들어야 한다.

 

주도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습관이라는 황소의 뿔을 잡고 나의 의지대로 흔들며 사는 것과 같다. 습관은 사람보다 힘이 세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그 뿔을 잡은 우리가 이러 저리 흔들릴 수도 있다. 습관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습관을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밭을 가는 궁극적인 이유도 그것인지 모른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스스로 간절했는지 돌이켜 본다. 장에 내다 팔 당장의 곡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잘 키웠는지가 중요하다. 속이 빈 쭉정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공같이 튀는 탄력을 다시 살기 위해 나는 좀 더 간절해 지기로 했다. 좀 더 세게 황소의 뿔을 당겨 잡기로 했다.

 

황소야, 황소야. 다시 한번 나랑 밭을 갈아보자.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거라

음메에에, 음메에에

IP *.226.208.108

프로필 이미지
2017.12.12 00:37:00 *.44.153.208

한 편의 우화 같다. 멋지네 갈 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듯.. 나야 말로 졸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만드는 ^^;;

프로필 이미지
2017.12.15 11:37:38 *.18.187.152

역시! 정욱은 각본이나 우화 형식에 강하다니까. 잘 살려봐요.

황소 뿔 너무 잡지 말고 등 위에서 피리 불며 즐기며.

정욱의 밭에는 토종작물만이 아닌 이국의 작물도 함께 키워 다채로운 다문화 밥상이 차려지겠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92 또 다시 칼럼 #24 소년법을 폐지하면...(첫 번째) file 정승훈 2018.11.04 900
5191 (보따리아 칼럼) 엄마는 외계인 [2] 보따리아 2017.09.10 901
5190 칼럼 #22 레이스 달린 덧신_윤정욱 [3] 윤정욱 2017.10.16 901
5189 벼룩으로 가는 3가지 방향에 관하여 [1] 송의섭 2017.10.16 901
5188 칼럼 #34 혹, 우리 아이가 가해자는 아닐까? (정승훈) file 정승훈 2018.02.03 901
5187 칼럼 #35 학교폭력 전문 상담가에게 듣는다 (정승훈) 정승훈 2018.02.11 901
5186 부트로더(Bootloader) [3] 불씨 2018.07.29 901
5185 마지막 말 한마디에 [3] 박혜홍 2018.09.03 901
5184 #19. 가을 추수 [4] ggumdream 2017.09.18 902
5183 9월 오프모임 후기- 가을을 타다 [1] ggumdream 2017.09.26 902
5182 칼럼 #22 나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다 마지막편 (정승훈) [1] 정승훈 2017.10.14 902
5181 칼럼 #23 또다시 학교폭력위원회 [1] 정승훈 2017.10.29 902
5180 이유없이 떠나야 겠습니다 file [1] 송의섭 2017.11.13 902
5179 #38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채널 갖기 (윤정욱) file 윤정욱 2018.03.12 902
5178 「신화와 인생」을 읽은 후, 이직에 관한 세가지 조언 [4] 송의섭 2017.05.15 903
5177 (보따리아 칼럼)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은? [4] 보따리아 2017.07.02 903
5176 #16 -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 제주 - 여행의 뒤에서(이정학) file [5] 모닝 2017.08.21 903
5175 #25. 군 문제 개선을 위한 제언 [1] ggumdream 2017.11.13 903
5174 #34 매일의 힘_이수정 [2] 알로하 2018.02.05 903
5173 #36_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 (콜린 퍼스와 동네 백수)_윤정욱 file 윤정욱 2018.02.19 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