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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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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9일 09시 46분 등록

백자.JPG
<백자, 사진/양경수>

 

우리 집 좌변기다. 이 사진을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느 집에나 있는 좌변기 사진을 찍어놓고 무슨 작품이냐고 말할 수 있다. 이게 작품이면 누구든지 작가가 되겠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내가 바라는 바다.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 했는가’ 이다. 난 저 좌변기를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백자처럼 아름답게 바라보았다. 모양하며 빛깔이 딱 백자다. 매일 쭈그려 앉아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는 장소이니 나에겐 성소 같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 강아지가 놀고 있는 휴지 쪼가리를 물려 웃음을 넣었다. 성소이지만 편안한 곳이라는 의미다. 새로운 발견과 의미부여! 그것이 있으면 예술 작품이다. 내가 허풍떠는 게 아니다.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아래 사진을 보라.

뒤샹_스티글리츠.jpg

<샘 (Fountaine)>
1917,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사진/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작품제목 <샘>. 여기서 샘은 쌤이라고 읽으면 안 된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물이 솟아나는 샘물할 때 샘이다. 이 단어는 여성명사라는데 남성용 소변기에 이런 멋진 이름을 붙이다니 그 반짝이는 영감이 대단할 뿐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작품의 작가는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다. 그는 '이제 회화가 망했다'고 말하며 시중 가게에서 산 이 변기통에 'R Mutt'라고 서명을 해서 1917년 미국의 어느 미술전에 출품했다. R. Mutt 라는 이름도 제조업자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 한다. 그가 한 일이란 물건을 사서, 서명을 하고, 이게 예술이라고 주장한 것 뿐 이었다.

당시에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이 작품이 훗날 현대 예술인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작품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구동성으로 예술과 삶의 경계가 이 <샘>이란 작품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술이 일상적 삶으로 들어왔다. 새롭게 인식되는 것들은 어떤 것이든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는 모든 활동이 곧 예술이 된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 '삶의 예술'은 우리 시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뒤샹의 변기통 사건은 수많은 역사 속 장면들 중 내 마음 속으로 무찔러 들었다.

당시 출품이 거부된 이 작품을 근대 사진의 아버지이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가 주목했다. 그는 반출된 뒤샹의 변기를 자신의 화랑으로 가져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바로 위의 사진이다. 왜 스티글리치가 뒤샹의 변기에 주목했을까? 이유는 뒤샹의 행위가 사진의 특성과 놀랍게도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진은 미술의 밑그림을 그리는 자료에 불과했다.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있는 그대로 찍는 게 무슨 예술이냐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방식 자체가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대상은 신이나 자연, 인간이라는 제작자가 따로 있는 기성품이다. 게다가 사진은 즉흥적이고 우연히 마주치는 대상을 담는다. 그렇게 사진은 대상을 발견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뒤샹의 변기도 이미 존재하는 대상을 새롭게 발견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같은 개념이다. 더 나아가 예술의 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다르게 말하면 사진으로 찍는 모든 것들이 예술이 될 수 있고, 모든 사진가들은 예술가라는 얘기다.

그래서 평범했던 내가 확신을 가지고 예술가의 꿈을 품게 되었다. 이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전문 사진가만 작품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진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누구나 대상을 새롭게 발견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작가다. 아름다운 것을 쨍하게 찍는 것만이 작품이 아니다. 아름답건 추하건 평범하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새롭게 인식해서 찍는다면 작품이라 불릴 수 있다. 사진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개념이 그렇다.

그런데 조영남이 <현대인도 못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에서 문제제기했듯이 현대인도 못 알아 먹는 것이 무슨 '현대'미술인가? 아직도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유가 뭘까? 아마도 작가가 새롭게 발견한 의미가 잘 전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작가가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알아챌 수 없다는 얘기다.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작품을 해설하는 비평가들도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예술을 우습게 보는 자세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것처럼 우리 집 아이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지 작가가 발견한 생각을 나름대로 짐작해 보면 된다. 작가가 글이나 말을 통해 이미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혀놓았다면 더 쉽다. 그것에 공감하던가 아니면 나라면 다르게 하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보는 것이다. 예술이 참 쉬워졌다.

이렇게 예술의 높았던 벽이 무너지고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는 모든 활동이 예술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삶의 예술가'가 되어 문화를 누리고, 의식의 고양을 추구하는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현대인들이 자기계발을 추구하는 것이나, 심리학과 영성훈련의 저변이 확대되는 것들이 이런 시대 분위기를 증거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진과 글쓰기에 도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이기도 하다. 물론 이글을 읽는 '당신'도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결국 예술을 우습게보니까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당당하게 예술을 우습게 보자! 아이폰을 찍은 아래 사진도 감상해 보시라.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사진을 찍었을까? 이것도 작품이라 불릴 수 있을까?


I_Eye.JPG

<I &Eye, 사진/양경수>

IP *.11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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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9 09:55:10 *.111.51.110
기획안을 새로 썼습니다.
이제와서 주제를 바꾸는것이 죄송스럽기도하고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쓰고 싶고, 쓸 수 있고, 써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니 답이 나오더군요.
초심으로 돌아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예전에 썼던 '사진과 함께하는 시간여행1,2' 과 닮은 이야기들이 될것 같습니다.
카페에 기획안을 올려습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가제목 : <생활사진가의 '사진으로 생각하기'>, <생활사진가의 사진철학>
   
주제  : 생활사진가에게도 나름의 철학은 있어야 한다. 일상을 예술로 살기위해서다. 그러나 철학은 너무 높고, 전문가들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사진으로 표현해봐야 한다. 또 그것을 우리의 언어로 풀어보고 마음으로 깨우쳐야 한다. 그러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 있다.

컨셉
생활사진가의 좌충우돌 철학하기
전문적일 수도 있는 사진에 관한 철학을 생활사진가의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낸다.
사진을 좋아하는 평범한 생활사진가가 사진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쉽게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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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2.19 09:57:08 *.35.244.10
모처럼 경수다운 글빨이 느껴지는 구나.
네 안 깊숙히 있는 너만의 분위기에 유머까지 담겨있는
거기에 내가 기대하는 '사실 이상의 사실적' 분위기까지...음~~ 굿!!

강아지의 편안함이라니...
쌤이라고 읽지 말라니...
오~~ 사랑스런 경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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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20 16:00:04 *.111.51.110
ㅋㅋ 어제는 잘 들어가셔지요?
러블리 훈싸노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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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2.19 10:20:09 *.32.193.170
백자에서 한번 빵 터지고.. ㅋㅋㅋㅋ.. 훈이오빠의 댓글 '오, 사랑스런 경수야'에서 다시 한번 빵 터지고.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

이번 글을 보니, 왠지..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요... 당장 아이폰을 들고 나가서 여기저기 아이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이.... ㅋㅋㅋ 사진 찍고 싶어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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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1.12.19 11:16:14 *.160.33.244
음, 좋아 .  참았다 쉬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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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20 16:01:04 *.111.51.110
좌변기를 보고 이런 댖글을 다는 사부님은 센스쟁이!
열심히 공부하며 사진도 찍으며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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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12.19 15:33:21 *.143.156.74
역시 고민만큼 깊어지는구나.
그런데 주제가 사샤의 책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책의 주제에서 여행이나 가족이 모두 사라졌구나.
나는 철학이나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조금 어렵다.
그리고 이 책 쓰려면 너 머리 엄청 빠질 것 같아.
생활에서 예술을 찾아내 사진 찍기 어려운거 아닌가?
좀 더 고민하면 더 나은 글이 나오겠지.
경수야, 화이팅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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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20 16:44:02 *.111.51.110
재동누님을 타겟으로 좀더 쉽게 써봐야 겠어요~
쉽게 쓰는 것이 제 목표기도 하니까요.
머리 빠져도 좋습니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즐겁게 할 수 있을것 같아요.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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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12.21 21:03:45 *.119.126.191
'사진과 함께 하는 시간여행'이  신호등 사진 있던 글 맞지요?
그 밖에도 아이와 장모님이 있던 풍경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생활사진가!
경수님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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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22 08:27:19 *.111.51.110
맞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쓰려고 했는데,
잠시 헤메게 되더라구요.
좋아하는 일이니 계속 할 수 있겠지요?
근데 창작의 샘물이 마를까봐 두려워지는 이 마음은 어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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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
2011.12.22 20:36:45 *.166.205.131
행동하지 않고, 연습하지 않는 자의 두려움이었군요~^^
선배님의 이 댖글에  별표 다섯개를 붙여놔야 겠어요~ㅋ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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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1.12.22 20:06:33 *.119.126.191
공연한 걱정이지요.^^

임계점을 지나가면 양은 질로 변한다.
우리가 믿을 것은 이 말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연습을 하다가 글감을 발견하게 되고, 기억창고의 문을 열게 되고 감정의 진솔한 뿌리를 보고, 인간의 삶과 정신을 전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다면 연습의 효과는 어마어마해 진다. 처음에는 고만고만해 보이던 연습에 불과한 것들이 결국에는 글의 단단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 빌 루어바흐, '내 삶의 글쓰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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